변곡점 맞은 경제
미국 경기가 마침내 변곡점을 맞았다. 작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이 불거진 이후 처음이다. 결론은 ‘일단 안심’이다. 더 정확히는 ‘휴, 한숨 돌렸다’다.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질곡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분명 일정한 전환점을 돌았다. 다름 아닌 1분기 경제성장률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 정책 기조 변경을 보면 그렇다.1분기 성장률은 0.6%로 나타났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란 예상을 비켜났다. 물론 내용이 좋은 것은 아니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의 말대로 “기술적으론 침체가 아닐지 몰라도 심리적으로 침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면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FRB가 통화 정책 기조를 중립으로 전환하겠다고 시사한 것도 일단은 긍정적이다. 물론 경기에 대해 ‘안심’ 판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유가 및 곡물가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증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도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 위기가 정점을 지났다는 것에 FRB도 동의했다는데 이론은 없어 보인다.경기 침체(recession)란 보통 2분기 연속해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걸 말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미 경제가 1분기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해 2분기까지 후퇴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해 왔다.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아니다. 지난 1분기 성장률(연율 환산 기준)은 0.6%를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물론 내용은 좋지 않다. 경기가 나빠 물건이 팔리지 않다 보니 재고가 늘어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달러화 약세로 호조를 보이는 수출이 5.5% 증가한 것도 플러스 성장에 기여했다. 여기에 연방정부의 재정 지출이 늘어난 것도 주된 요인이다.미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70%를 차지한다는 소비는 좋지 않다. 고작 1% 증가하는데 그쳤다. 경기 침체기였던 지난 2001년 2분기 이후 최악이다. 똑같은 0.6% 성장률을 기록했던 작년 4분기 소비가 2.3%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내용적으로는 형편없다. 기업 투자도 2.5%나 줄었다. 내구재 주문도 역시 6.1% 감소해 내용적으로 보면 침체나 다름없다. 주거용 건설 투자는 27% 감소했다. 이는 지난 1981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이 같은 감소 폭은 GDP 성장률을 1.23%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론 경기 침체’란 해석이 우세하다. 더욱이 2분기 상황은 말이 아니다.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소비의 바로미터라고 하는 휘발유 값이 갤런당 3.5달러를 넘었다. 휘발유 값이 3달러를 넘으면 소비가 급격히 준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다. 곡물가 폭등으로 음식 값도 뛰어 오르고 있다.따라서 2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다. USA투데이가 52명의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0.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마이너스 폭이 더 커질 공산이 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대한 전망은 ‘극단적 비관론’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USA투데이 조사로는 3분기 성장률은 2.3%, 4분기 성장률은 2.0%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급속한 회복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침체의 위험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FRB는 작년 9월부터 줄곧 공격적인 통화 완화 정책을 펴왔다. 지난 4월 30일까지 무려 8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5.25%에서 2.0%로 3.25%포인트나 떨어뜨렸다. 어떡하든 신용 위기를 완화하고 경기 침체를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배어 있다.이런 기조는 지난 4월 30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계기로 변화되고 있다. 다름 아닌 ‘중립’으로의 전환이다. 쉽게 말해 당분간 금리 인하 행진을 멈추고 경제 상황을 지켜본 뒤 추가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FRB의 뜻이다.FOMC의 통화 정책 성명서에 나타난 FRB의 경기 진단은 “경기 하강 위험은 줄었으나 성장을 제약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것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상승해 왔으나 앞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진단에 따라 나온 결론이 통화 정책의 중립 전환이다.즉, “금융시장은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신용 경색과 주택 시장 위축은 앞으로 몇 분기 동안 경제 성장을 제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내림으로써 추가 금리 인하 여지를 열어 놓았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표현도 여차하면 다시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반면 “경기 하강 위험이 남아 있다”는 문구를 삭제하는 대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상승했다”는 표현을 새로 추가함으로써 더 이상 금리 인하는 곤란하다는 시각을 나타냈다. 결론은 ‘당분간 금리 인하를 중단하되 여차하면 다시 내릴 수도 있다’로 요약된다.FRB가 이처럼 중립적인 통화 정책으로 선회한 것은 지난 3월 베어스턴스 사태 이후 신용 위기가 완화될 조짐이 역력한데다 그동안의 금리 인하와 경기 부양책 등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1분기 GDP 성장률이 0.6%에 그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 침체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분석이 작용했다.전문가들은 FRB의 이런 태도로 미뤄볼 때 당분간 금리가 동결된 채 추가 인하 여부는 경제지표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가 생각만큼 회복되는지 여부에 따라 금리 정책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리먼브러더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에단 해리스는 “FRB는 일단 11월까지는 금리를 동결할 전망”이라며 “그때 상황을 봐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FRB가 금리 인하를 결정한 지난 4월 30일 상승세를 타던 뉴욕 증시는 하락세로 반전됐다. FRB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이유에서다. 추가 금리 인하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이전과 비교하면 금석지감이다. 반대로 그만큼 상황이 좋아졌다는 얘기도 된다. 아니면 금리 인하 중단을 통해 유가 및 곡물가 상승세를 멈추게 해야 할 정도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각하다는 얘기도 된다.어찌됐건 1분기 플러스 성장률과 통화 정책의 중립 전환은 증시에 나쁠 게 없다. 신용 위기가 해소되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데다 경기도 가벼운 침체에서 곧바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더욱이 통화 정책의 중립 전환으로 증시 주변 사정은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 이미 안전자산인 국채에 들어 있던 자금이 증시로 이동을 시작했다. 달러화 하락이 멈추고 유가 및 상품가도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 여기에 유입됐던 자금도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잘하면 이 돈이 증시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돈이 증시로 몰리면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물론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주가 상승은 순간일 수 있다. 일부에서 ‘경기의 반짝 회복 후 다시 침체(더블딥: double deep)’를 전망하거나 ‘다른 때보다 길고 심각한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여전한 점을 감안하면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화 정책의 중립 전환을 계기로 뉴욕 증시는 하방경직성을 더욱 굳히게 됐다는데 이견이 없다. 드디어 증시도 길고 긴 터널의 종착점에 이르고 있다는 얘기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