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넘치는 ‘오일머니’가 아시아로 흘러들고 있다. 고유가 덕분에 석유를 팔아서 번 ‘오일머니’가 풍부해진 데다 미국 유럽 등에선 ‘테러와의 연계’를 의심하며 중동으로부터의 자금 유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그동안 주로 미국과 유럽 지역에만 관심을 가졌던 중동 투자자들이 점차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일례로 싱가포르에 있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V 샹카 기업금융 및 프라이빗뱅킹 책임자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중동 지역 사업에 할애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이 회사엔 중동 지역 인수·합병(M&A)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담당하는 직원이 없었지만 지금은 50명으로 구성된 팀이 중동 지역 곳곳에서 ‘건수’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 투자자들이 아시아의 거대 신흥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지난 4월 8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알 푸타임 그룹이 싱가포르 소매점 로빈슨의 지분 88%를 4억4000만 달러에 사들이는 거래에 자문을 맡았다. 또 작년엔 사우디텔레콤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통신 업체에 총 30억 달러를 투자하는 일도 자문했다. 현재는 두바이 국영 투자회사 ‘두바이월드’ 소속 사모 펀드인 이스티스마르가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에 투자할 1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 펀드를 조성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샹카 책임자는 “지금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두바이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마크툼’ 재단의 아시라프 제이운 특수 프로젝트 담당이사는 “지금까지 아랍 투자자들은 중국 인도 등 ‘동쪽’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쪽’을 쳐다봤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며 “지금 중동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관심은 엄청나다”고 말했다.중동 투자자들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오일머니’ 유입에 대한 서양 국가들의 반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바이 공공정책학교의 나빌 알리 알유수프 총장은 “중동 투자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투자하려고 할 때 힘든 점은 ‘테러리즘’과 연계됐을지 모른다는 의혹의 눈길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바이포트월드는 2006년 미국 항만에 투자하려 했다가 의회의 압력으로 철회하기도 했다.아직까지는 중국이나 인도에 투자된 중동 자금의 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인도는 지난해 총 250억 달러의 해외 직접 투자를 유치했는데 이 중 중동에서 들어온 투자금은 50억 달러도 안 된다. 그러나 올해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하면서 투자액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맥킨지컨설팅은 중동 국가들의 ‘오일머니’가 2020년께엔 9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 경영대학원의 아닐 굽타 교수는 “중동 내에선 이 많은 돈을 흡수할 방법이 없다”며 “상당 부분이 인도에 투자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도의 경우 정부가 열악한 사회간접자본(SOC)을 개선하기 위해 향후 5년간 5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어서 외부로부터의 자금 유입이 절실한 상황이다.중국은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원유와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도 중동 지역 투자자들과 다양한 협력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3월 말엔 중국을 방문한 두바이 통치자 겸 UAE 총리인 셰이크 모하메드가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 양국 간 경제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4월 14일엔 두바이 국부 펀드인 두바이인터내셔널캐피털(DIC)과 홍콩 투자회사인 퍼스트이스턴인베스트먼트그룹(FEIG)이 중국 기업들에 투자하기 위한 1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중동 투자자들이 중국에 투자할 경우 이미 많은 투자 경험이 축적된 서양 국가나 이슬람교도가 많고 이전부터 교류가 활발했던 인도에 비해 많은 장벽에 부닥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홍콩 개발 업체 항룽부동산의 로니찬 회장은 “아직은 중동 투자자들의 중국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지만 비즈니스가 확대될수록 ‘학습 곡선’은 가팔라질 것”이라고 말했다.박성완·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