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국정원

청와대에서 ‘이명박호’를 곁에서 보좌할 참모들은 40~50대 젊은 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내각 수장들이 6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내각 위에 군림하기보다 청와대와 내각의 연결고리 역할에 충실하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다. 전문성을 갖춘 교수 및 관료 출신들이 적절히 융합돼 있다.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석실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새 정부의 모토가 경제 살리기인데다 한때 사라졌던 조직을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수장인 김중수 경제수석은 원칙과 시장 자율을 중시한다. 거시경제학, 노동, 주택, 교육 등 분야에서 대가로 불린다. 시장 자율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 코드’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국정 운영 전반을 디자인하는 국정수석실의 존재감도 남다르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과제인 규제, 외자 유치, 공공 개혁 등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다.그런 만큼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중 핵심 브레인으로 꼽힌다. 특히 이 대통령이 허물없이 대하는 인사 중 한 명이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까지 불린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과제인 규제, 외자 유치, 공공 개혁 등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다.정무수석실도 새 정부에서 부활했다. 박재완 정무수석은 행시 출신으로 공직 생활을 한 후 교수(성균관대)를 거친 정책 전문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부혁신규제개혁 TF팀장을 맡아 정부 조직 개편 작업을 주도했다. 관심 분야는 예산 조세 행정 정치 개혁 등 전방위적이다.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민정수석 자리 역시 중요도 면에서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이종찬 민정수석의 행동반경 역시 주목의 대상이다. 고검장 출신인 그는 검찰 특수수사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율곡비리, 12·12 쿠데타, 5·18 민주화 운동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맡아 명성을 날렸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상임특보를 맡아 BBK사건에 대한 해결사 역할을 했다.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은 미국통이다. 미국 내 학자, 고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 동아시아연구원(EAI)을 창립, 원장을 맡아 우리 정부의 외교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조언했다.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 왔다. 서울복지재단 대표를 맡아 1년 동안 사회봉사를 시간으로 기록하는 10만 시간 나누미 시계를 도입해 주목을 받았던 복지 전문가다. 그는 복지시설 관리에도 시장원리를 중시, 각종 복지 시설을 평가해 차등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다.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 전문가다.인수위 시절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의 뼈대를 만든 주인공이다. 당초 총선 출마 의지가 강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주저앉히며 청와대로 데려왔다. 대학 입시를 3단계로 나눠 대학 자율로 선발하고, 자율형 사립고 등 특수고 300개를 전국에 설립하며, 영어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프로젝트 입안을 주도했다.이동관 대변인은 탁월한 순발력과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춰 ‘타고난 대변인’이란 소리를 듣는다. 수많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 내고 전달해 주는 능력이 돋보인다. 알맹이 없는 내용도 그의 입을 거쳐 ‘의미 있는’ 기사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많았다.요즘 청와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 가운데 하나가 기획조정비서관 자리다. 말 그대로 국정에 대한 일을 기획하고 청와대 내 업무를 조정하는 자리다. 일각에서는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을 ‘왕비서관’이라고 부른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을 하다가 서울시 정무국장을 맡으며 MB 캠프에 본격 합류했다. 대선 승리 이후엔 정부 요직 인선이 깊숙이 관여했다. 이 때문에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히는데 대해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김백준 총무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집사로 불린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상대 2년 선배. 1976년 외환은행에 다니다 현대종합금융으로 스카우트되면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이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 그를 동아시아연구원장을 시키면서 본격 대선 가도에 합류했다. 이 대통령의 안국포럼 시절부터 사무실 살림살이와 대통령 주변을 관리해 왔다. 자신의 존재를 좀체 나타내지 않는 ‘그림자 내조’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김희중 제1부속실장은 10년간 이명박 대통령의 수행비서를 지내며 동고동락해 온 핵심 측근이다. 1997년 이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 대통령이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도 곁을 지키며 개인 비서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때는 4년간 의전비서관으로 임기를 함께했다.홍보기획비서관 자리도 눈여겨봐야 한다. 언뜻 보기에는 홍보 관련 업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반도대운하와 관련이 깊다.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다. 경선과 대선 기간 한반도대운하추진본부 부본부장, 특위부위원장으로 운하 추진의 당위성을 홍보해 왔다.또 다른 비서관 가운데는 재정경제 1, 2비서관과 산업비서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의 한가운데에 서있기 때문이다. 각 경제 관련 정부 부처와 호흡을 맞추며 경제 살리기의 전위대 역할을 해야 한다.김동연 재정경제1비서관은 재정 정책 전문가다. 기획예산처 초대 재정 전략 기획관으로 중장기 국가 비전인 2030 발표를 주도했다. 그는 정책을 단순히 나열해선 안 되며 실제 작동이 잘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한다.김준경 재정경제2비서관은 거시경제와 금융 분야 전문가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1995년부터 KDI에서 거시·금융 분야를 연구해 왔다. 투자 산업 구조조정 분야가 주전공이다.김동선 산업비서관은 1982년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 수출과 통상 분야에서 주로 일을 했다. 제네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미국 특허청에서 연수하며 지식재산권 분야의 전문지식을 습득했고 참여정부 때믄 주중 대사관 참사관을 지내기도 했다.국정원에서 기획조정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전체 조직의 틀을 만들고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 국정원의 최우선 과제인 구조조정 역시 기조실의 몫이다. 김주성 기획조정실장은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정보기관 핵심 보직을 맡아 화제가 됐다. 그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통한다. 코오롱그룹에서 35년간 근무하면서 2004년 그룹 부회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회장 비서실장, 기획조정실장, 구조조정본부 사장 등을 지내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거쳤다. 회관 및 산하 예술 단체의 노사 화합을 일궈냈으며 무료 공연 확대 등을 추진, 경영과 공익적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전옥현 1차장은 대표적 해외 정보 전문가다. 미국 외교·경제 분석관을 시작으로 주유엔 대표부 공사, 해외 정보 국장 등을 지내면서 글로벌한 마인드를 갖췄다는 평가다.홍영식·한국경제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