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측면에서 본 경기 진단
연초 세계 주식시장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충격과 금융 회사의 부실, 그리고 신용 경색 현상이 심화되며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경기 침체가 세계 경제로 확산되는 ‘동반 침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머징 경제의 견조한 성장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발 빠른 유동성 공급으로 경기 침체 및 유동성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다시 확대되고 있다. 이번에는 유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혹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연초 미국이 신용 경색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금리를 인하한 덕분에 유동성 위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달러 약세 심화와 유가 급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미국의 신용 경색 문제가 한국의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던 반면 유가 상승은 전 세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어 직간접적인 영향은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직 미국 경제가 신용 경색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유가 충격이 더해지고 있어 올해 중반 빠른 경기 회복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한국 경제는 유가 상승의 충격이 훨씬 크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각종 물가 상승률이 급등하면서 지난 2005년의 고점 수준을 모두 상회하고 있으며 심리적인 측면이나 소비 여력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 상승을 신규 고용이나 소득 증가로 상쇄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높은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이 고용을 적극적으로 늘릴 가능성은 낮다.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지난 5월에 전년 동월 대비 4.9% 상승해 5%대에 육박하고 있고 5월까지 올해 신규로 늘어난 일자리 수는 1만3000개에 그치고 있다. 중산층 이하 계층일수록 인플레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고소득층이 주도하는 소비는 여전히 팽창 일로에 있어 전체 소비가 큰 폭으로 둔화될 조짐은 없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인플레 압력이 높게 유지될 것으로 보여 지난해에 비해 소비 증가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유가 급등이 지속됨에 따라 한국 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부작용은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되 있다는 점이다. 무역수지는 한 나라의 채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이므로 기업 이익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한국 무역수지 흑자폭이 빠르게 쌓여가는 국면에서 기업 이익은 호조를 보였고 무역수지가 악화될 때 이익 증가 속도가 둔화되는 특징을 보였다. 아직까지 한국의 기업 이익은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원자재나 유가 상승분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경우 이익 악화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유가가 상승하더라도 수출이 함께 증가해 한국의 무역수지는 흑자 기조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경기 부진으로 인해 세계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데다 유가가 급등해 한국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적자가 심화될 경우 외환보유액 규모도 줄어들게 된다. 특히 최근 외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표면적으로 한국의 대외 부문의 건전성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유가 급등은 한국 수출 자체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유가가 이머징 시장의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쪽에서의 이머징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머징 국가에 대한 수출 호조로 미국 경제 부진과 고유가 충격을 극복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는 이머징 수요 둔화가 치명적일 수 있다.결국 올해 중반 이후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유가의 향방과 인플레이션 환경 속에서 이머징 경제의 수요 확대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가가 추가 급등할 경우 가계와 기업 부문의 타격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각국 정부의 금리 인상 강도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물가 급등과 금리 인상에 직면한 세계 수요가 동시다발적으로 악화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일단 하반기 중 유가는 추가 급등하기보다는 조정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유가는 크게 수요와 공급, 그리고 유동성을 중심으로 한 투기적 자금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공급 능력의 제한은 2002년 이후 유가 상승 추세를 이끌었던 구조적 변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유가 급등을 이끌만한 새로운 변수는 아니다. 연초 이후 유가는 제한적 공급 능력으로 인한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과도한 상승을 보였다는 판단이다.최근 유가 급등은 수급 요인보다는 미국의 금리 인하와 달러 약세 심화 과정에서 진행된 유동성 흐름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의 금리 인하가 멈추고 달러 약세 속도가 완화될 경우 유가는 급등세를 멈추고 본래의 추세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허리케인이 있는 여름까지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이후에는 안정됐다는 계절적 특성도 유가 급등 지속보다는 상승세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특히 신용 경색 현상이 완화되면서 안전 자산과 실물 자산으로 집중됐던 자금들의 일부가 위험 자산으로 이동하면서 원유 시장의 투기적 자금들도 이탈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요국의 금리 정책이 유동성 흡수 쪽으로 바뀌고 있고, 유가 급등에도 유류 보조금으로 인해 강한 원유 수요를 보였던 아시아 국가들이 이제는 유류 보조금을 폐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결국 유가 급등에 따라 빠르게 악화됐던 한국의 물가와 내수 경기, 무역수지도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갈 가능성이 높다.한편 물가 수준이 높아질 때 수요가 뒷받침될 경우에는 호황의 지속 혹은 긍정적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수요가 큰 폭으로 위축될 때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해석되게 된다. 최근까지의 이머징 수요를 점검해 보면 위축 조짐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미국 소비는 부진하지만 이는 물가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 부동산 경기 침체 및 가계의 부채 부담 때문으로 보는 게 맞다.물가가 계속 오를 경우 내수 기반이 취약하고, 유가에 대한 충격이 큰 지역으로부터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성장이 위축될 것이다. 물가가 성장을 앞지르면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보이는 일부 이머징 국가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 인도 등 주요 이머징 국가의 수요는 아직까지 견실하다. 자동차 및 주요 정보기술(IT) 소비 제품에 대한 수요도 확대일로에 있다. 물가 상승에 따른 수요 위축과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의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보다는 물가 관리 능력이 약하고 내수 기반이 약한 일부 이머징 국가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유가 급등세가 진정될 경우 각국의 인플레 부담은 3분기를 고비로 점차 완화되고 이와 함께 긴축 강화와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부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경기 회복 속도도 신용 경색 문제와 부동산 침체에서 벗어나면서 4분기 중에는 다소 탄력을 보일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주요국의 긴축 정책은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이나 유가가 다소 안정될 경우 긴축 시점이 앞당겨지거나 인상폭이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하반기에 인플레 문제가 다소 진정된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 경제는 장기 호황의 후유증으로 인플레 환경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수요가 강하게 뒷받침되는지의 여부가 이번 인플레이션이 주식시장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궁극적으로 금리 인상을 초래하고, 이에 따라 세계 수요 위축이 나타나겠지만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인플레이션에 적응하며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유선·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 economist@bestez.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