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의 성공 비결은
대부분의 일본 신문은 최근 독자가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독자가 늘고 경상이익도 꾸준히 높여가는 신문이 있다. 일본 기업 경영기획 간부의 92.8%, 개인 투자가의 73.4%가 읽고 독자의 절반 이상이 대졸 학력인 신문, 바로 일본의 간판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日經)이다.니혼게이자이는 발행 부수(조간 기준)가 2005년 말 303만 부에서 올 2월 305만 부로 늘었다. 일본 최대 신문인 요미우리가 같은 기간 중 1003만 부에서 1002만 부, 아사히가 815만 부에서 802만 부, 마이니치가 395만 부에서 388만 부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또 2002년 경상이익이 200억 엔(약 2000억 원)대였던 요미우리 아사히 니혼게이자이 중 유일하게 니혼게이자이만 2006년 이후 400억 엔대로 신장했다. 나머지 신문은 여전히 200억 엔대에 머물러 있다.니혼게이자이의 성공은 단독 독자(닛케이만 읽는 독자) 비율에서도 확인된다. 이 신문의 단독 독자 비율은 1991년 34.9%에서 2006년 65.9%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예전에는 일본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읽는 신문은 아사히, 또는 요미우리였고 니혼게이자이는 아버지가 출근하면서 읽는 신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로지 니혼게이자이만 읽는 독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니혼게이자이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의 경제 주간지 도요게이자이가 최신호에서 닛케이의 성공을 집중 분석했다. 도요게이자이는 닛케이의 풍부한 정보량, 무료 인터넷 서비스의 제한, 기업 데이터 등 정보 제공 사업 등 세 가지를 성공 비결로 들었다.◇ 닛케이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신문의 정보량이 다른 신문에 비해 많다는 점이다. 닛케이는 작년 7~12월 중 하루 평균 44.9페이지(조간)를 발행했다. 요미우리 40.7페이지, 아사히 40.3페이지, 마이니치 31.8페이지를 압도한다. 이 때문에 구독료도 비싸다. 닛케이의 월 구독료는 4383엔(약 4만300원)으로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 3대 종합지(각각 3925엔)보다 12% 정도 비싸다.닛케이는 경제·산업 기사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기사도 충실히 다룬다. 특히 1면의 경우 사진이나 그래프를 작게 써 다른 신문에 비해 기사 1~2건을 더 싣는다.두 번째는 닛케이 기사의 70%는 인터넷 무료 웹사이트에 띄우지 않는다는 것. 현재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기사는 신문에 게재된 기사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인터넷에도 신문 기사의 앞부분만 올린다. 신문의 3면(종합면) 기사는 아예 제목조차 올리지 않는다. 닛케이 기사는 반드시 신문을 사야만 볼 수 있다. 다른 신문이 신문 기사를 거의 그대로 인터넷에 올리는 것과 대비된다.이 때문에 기업의 샐러리맨들이 거래처 관련 기사나 경제 돌아가는 정보를 보기 위해선 닛케이를 반드시 사서 읽어야 한다. 닛케이 독자들은 다른 신문의 정보를 구하기 위해 야후나 구글 등 검색 사이트에 들어간다.과거엔 아사히를 읽는 사람, 요미우리를 읽는 사람, 마이니치를 읽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나 철학 등 독특한 컬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종합지들의 이러한 차별성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일본인 사이에 ‘닛케이를 읽는 사람’과 ‘닛케이를 읽지 않는 사람’만 존재할 뿐이라고 도요게이자이는 지적했다.마지막 비결은 니혼게이자이가 신문뿐만 아니라 기업 데이터 제공 등 정보 서비스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는 것. 닛케이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기업의 재무 정보와 신용 평가 정보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인터넷에서 유료로 팔고 있다.‘닛케이를 읽는 사람’은 회사에서도 닛케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신규 영업처의 신용 정보를 체크할 때는 회사가 가입해 있는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인 ‘닛케이 텔레콤’에 들어가 상대방의 최신 재무 자료를 얻는다. 동시에 과거 1년간 그 회사와 관련된 신문 기사와 잡지 기사도 검색한다.정보 관련 사업이야말로 다른 신문에는 없는 닛케이만의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기업 신용 정보를 제공하는 ‘닛케이 텔레콤’과 금융 정보를 전하는 ‘퀵(QUICK)’, 기업 재무 데이터인 ‘니즈(NEEDS)’ 등이 닛케이의 새로운 수익원이다. 지난해 신문 광고가 5.2% 감소해 닛케이도 영업이익이 신문 부문에선 절반으로 줄었다.하지만 정보 서비스 부문에선 이익이 크게 늘어 그룹 전체로는 20% 정도 이익이 감소하는 데 그쳤다. 반면 신문·출판 부문이 전체 영업이익의 90%를 차지하는 아사히는 광고 감소로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아사히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사도 거의 비슷한 수익 구조다.◇ 닛케이의 오늘을 설명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30여 년 전 닛케이 경영을 맡았던 엔조지 지로 사장이다. 엔조지 사장의 당시 경영 전략은 지금 닛케이 성공의 초석이 됐다.30여 년 전부터 일본 신문 업계를 지배해 온 비즈니스 모델은 ‘무타이 모델’이다. 요미우리를 일본 내 부수 1위의 신문으로 만든 ‘판매의 신’ 무타이 미쓰오 요미우리 사장이 확립한 사업 모델이다. 전국 각지에 신문 인쇄 공장을 설치하고, 동시에 강력한 전용 판매망을 조직하는 게 핵심이다. 판매점은 일정 지역 안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면 높일수록 ‘지라시(판촉물)’ 등의 부가 서비스로 이익을 늘릴 수 있는 모델이다.판매점이 부수를 늘리면 본사로 들어오는 구독료 수입이 늘고 광고료 수입도 늘어난다. 판매점과 본사가 윈-윈(win-win)하는 절묘한 모델이다. 이런 방식이 세계 유례가 없는 발행 부수 1000만 부의 거대 신문사 요미우리를 만들어 냈다. 아사히와 마이니치도 이 모델을 따랐다.그러나 닛케이만은 이 모델을 뒤쫓지 않았다. 닛케이는 인쇄소와 판매망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지방 신문사의 인쇄소와 판매망을 아웃소싱한다. 예컨대 일본 중부의 나고야 지역에서 닛케이를 판매하는 곳은 지역에 근거를 둔 주니치신문이다. 인쇄는 동부 지역의 경우 홋카이도신문 니가타신문 등에서 한다. 서쪽에선 니시니혼신문 미나미니혼신문 등에 위탁하고 있다.지방 신문 입장에서 아사히와 요미우리는 자신들의 시장을 빼앗는 적이다. 하지만 경제지인 닛케이는 적이 아니기 때문에 제휴가 쉬웠다. 닛케이가 전국 7000여 개의 판매점 중 직영하는 곳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170여 곳에 불과하다.무타이 씨가 요미우리 사장이 된 1970년 당시 닛케이의 사장은 엔조지 지로 씨였다. 엔조지 사장은 ‘경제에 관한한 종합정보 기관을 지향한다’는 회사 비전을 설정했다. 무타이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엔조지 모델’을 만든 것이다.닛케이는 ‘종합 정보 기관’을 목표로 내걸고 신문 이외의 미디어 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현재 정보 관련 부문에서 돈을 버는 DB 사업, QUICK 등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바로 엔조지 사장이다.무타이 모델은 신문 부수가 포화 상태에 달하고 독자가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선 빛이 바랬다. 자체 인쇄·판매망을 가진 거대 장치 산업은 규모 유지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방식을 유지하려면 판매점은 무리하게 본사로 부터 많은 신문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때문에 실제 독자의 손에 들어가는 신문과 발행 부수 사이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발행 부수로 요미우리 1000만 부, 아사히 800만 부, 마이니치 390만 부라고 하지만 실제 독자는 이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닛케이 300만 부는 실제 부수와의 차이가 5%도 안 된다.지난 3월 31일 닛케이의 기타 쓰네오 신임 사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전 사원을 모아 놓고 회사 목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닛케이는 국내 경제 뉴스에선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말고 기사와 지면의 질 향상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또 해외에서, 특히 아시아에서 정보 발신과 비즈니스 전개를 적극 해나가고 싶다.” 닛케이는 이제 ‘일본의 신문사’가 아니라 ‘세계의 경제 미디어’를 지향하겠다는 포부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