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이 아시아를 주시하고 있다. 과거엔 그저 유망한 이머징 마켓, 새로운 수익원으로만 봤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세계 금융시장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땐 구원투수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최근 들어 힘이 빠진 모습이지만 일시적 현상이란 것에는 이견이 없다.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다. 아시아가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을 향해 비상의 날개를 펴고 있다.아시아 자본시장이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 잠이었다. 사실 한 번도 깨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인구와 시장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 신흥국들이 경제 발전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산업 발전에 따라 자본시장의 성장도 본격화됐다. 뇌관에 불을 붙인 것은 역시 중국이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세계 경제의 또 다른 핵으로 급부상한 중국에 세계의 돈이 몰리면서 중국 자본시장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속도로 급부상했다.중국의 자본시장은 2005년 이후 급속히 발전했다. 후진적이던 시장이 불과 2년 만인 2007년 세계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자본시장으로 변모했다. 이 기간 동안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0배 이상 불어났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20%에 불과하던 시가총액은 150% 초과하게 됐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중국 국민들과 해외 자본 유입이 급물살을 탔다.어디 중국뿐인가. 싱가포르 홍콩 등 기존 선진 자본시장의 약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신흥국들의 자본시장도 빠르게 활성화됐다. 친디아, 포스트 브릭스, 프런티어 마켓 등 투자 시장에 생겨난 신조어들이 한결같이 아시아를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투자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최대 요인은 무엇보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이 지역의 경제 발전이다. 중국은 연간 11%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도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 세계 경제 위축으로 성장 동력인 수출이 다소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물가 상승 우려가 깊어지고 있지만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성장 중심 정책으로 올해도 견조한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5% 성장한 베트남은 올해 8% 내외의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해외 직접 투자(2001년 22억 달러에서 2007년 179억 달러)와 수출(2006~07년 연간 22% 증가)이 증가하고 있다.태국은 신정부의 성장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4.8%보다 다소 높은 5~6%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수출 부진, 인플레 등으로 지난해만은 못해도 올해 5% 후반대의 고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주목할 점은 아시아 신흥국들이 1, 2차 산업의 발전에 만족하지 않고 금융 산업에서 새로운 발전의 모멘텀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금융의 허브로 자리 매김하고 있고 중국은 동북아, 베트남은 동남아의 금융 맹주로 발돋움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 기존의 금융 선진 시장은 글로벌 금융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다.특히 세계 금융시장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시아 각국의 ‘국부 펀드’다.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환을 밑천 삼아 거대한 국부 펀드를 조성,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중국 싱가포르 홍콩 한국 등이 대표적인 아시아권 국부 펀드로 꼽힌다.중국의 국부 펀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외환 보유액을 기반으로 급속히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현재 중국의 국부 펀드는 3200억 달러 규모를 자랑하는데 중국 정부는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2010년까지 8000억 달러 규모로 키우겠다는 것. 이를 통해 세계 경제에서 차이나머니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차이나머니의 위력은 이미 이번 금융 불안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규모 손실을 낸 미국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와 블랙스톤에 각각 50억 달러와 30억 달러를 투자하며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최근엔 BP, 토털 등 세계 에너지 시장 메이저들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아시아 국부 펀드의 활동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나서고 있는 것에서도 점점 강해지고 있는 아시아 국부 펀드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하지만 열풍이라 표현하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상승세를 타던 중국의 주가는 지난해 말부터 급전직하했다. 지난해 고점에 비해 40% 이상 움츠러들었다. 올해 초와 비교해도 30% 넘게 가라앉았다. 한번 시들기 시작한 주식시장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주식 거래세를 인하하는 등 주가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투자 심리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사실 현재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투자자들이 불안은 너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가가 너무 많이 빠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의 진앙인 미국의 주가가 10% 떨어지는데 그친 반면 중국의 주가 하락은 ‘폭락’이라고 할만하다. 이 정도 위축된 시장에 다시 혈색이 돌게 하려면 어지간한 요법이 아니고는 소용이 없다.중국 경제의 최강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성장세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지난 수년간 이어오던 10% 이상의 GDP 성장률이 올해 브레이크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심지어 6% 이하로 곤두박질칠 것이란 견해도 나오고 있다. 치솟는 물가, 위안화 절상에 따른 수출 경쟁력 하락, 잦아지고 있는 시위와 사회 불안, 정부의 긴축 정책 등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모든 불안의 이유들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데에 있다.하지만 이렇게 중국이 무너지리라고 예상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은 이미 세계 경제의 핵으로 부상했으며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현재의 위축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이르면 올 하반기에 이전의 강력하고 뜨거운 성장의 불길이 일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1분기 10.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14분기 연속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가며 여전히 높은 성장성을 과시하고 있다.한국은행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 자산시장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밝혔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수개월간의 조정기를 거쳐 일단 과열 국면을 지난 것이 첫째 이유다. 유동성 측면에서도 자본시장의 회복을 점칠 수 있다.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예금으로 몰렸던 자금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탓에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반등의 조짐을 보일 경우 예금 자금의 재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주식시장이 된서리를 맞은 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아시아 각국의 주식시장이 올해 들어 일제히 난타당했다. 세계 금융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중국과 베트남 주가가 반 토막이 났고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미국 경제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들도 10~20 % 하락했다.이들 국가의 주식시장이 단기간에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계 경기의 위축과 인플레이션, 경기 과열에 따른 각국 정부의 긴축 정책 등으로 한동안 지지부진한 모습을 탈피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그렇다고 아시아 자본시장이 이대로 내리막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은 매우 드물다. 성장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건강하기 때문에 이번 위기가 진정되는 대로 또 다시 견조한 성장을 이어갈 것이란 얘기다.특히 아시아 주식시장은 그동안의 조정으로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세계 증시가 안정을 되찾은 후 반등할 가능성이 그 어느 지역보다 높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투자은행, 아시아 진출 러시아시아 자본시장이 급성장하면서 UBS, 골드만삭스 JP모건, 노무라증권, 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이 지역 영업 확대를 통해 신규 수익원 창출과 시장 확대를 노린다는 계산이다. 진출 방식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프라이빗뱅킹이 첫 번째고,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등 기업 금융이 두 번째다.프라이빗뱅킹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는 이 지역 부유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 아시아 신흥시장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부유층은 전년에 비해 8.3% 늘어난 260만 명에 달하고 총 자산은 8조4000억 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이 지역 경제가 성장할수록 부유층의 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 틀림없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31만 가구로 추산되는 유동자산 100만 달러 이상 부유층이 2011년 약 61만 가구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프라이빗뱅킹 시장 진출에 따라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는 곳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2000년 ‘고객비밀유지법’ 등을 제정하는 등 프라이빗뱅킹 시장 활성화를 통해 제도 정비를 해오는 등 글로벌 투자은행의 투자를 유도했다. 지난해 말 싱가포르에서 운용되는 프라이빗뱅킹 자산은 전년 대비 30% 정도 성장해 약 300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프라이빗뱅킹 자산의 5%가량에 해당하는데 향후 2~3년간 싱가포르는 이 부문에서 연평균 25~30%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기업 금융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글로벌 투자은행만도 12개에 이른다. 수입도 짭짤하다.지난해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은 약 117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증권과 상품, 파생상품 관련 수입을 더하면 총 수입은 300억 달러에 달하고 기업 금융 전체의 총 수익은 1500억 달러로 추정된다.한국의 금융 기업들도 아시아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가 적극적인 영역 확대에 나서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 사무소나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증권사는 2007년 3월 18곳에서 2008년 3월 37곳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특히 베트남은 2007년 3곳에서 2008년 13곳으로 증가해 이 지역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진출 사례만 증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출 형태도 갈수록 적극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엔 단순히 증권 중개 업무를 주로 했지만 이제는 투자은행 업무로 확대하고 있다.사무소를 운영하던 것에 불과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현지법인을 설립하거나 현지 금융 회사와 제휴해 합작법인을 세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아시아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한국의 금융 기업이 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현지 기업들에 비해 금융 노하우가 뛰어난 것이 첫째 이유고 정서적·지리적으로 가까워 자본과 경험이 앞선 선진국의 글로벌 투자은행과도 승부를 겨뤄볼 만하다는 얘기다.협찬: 미래에셋증권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