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선발과 AC(평가센터) 기법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는 사람의 중요성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초일류 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강자들은 이른바 인재 전쟁에 뛰어든 지 오래다. 보다 정확히 지적하면 그들이 찾는 사람은 ‘적합한 인재(Right people)’다. 당연히 사람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인재의 평가와 선발 기법은 정교해진다. 과연 어떻게 하면 모든 조직이 자신들에게 최적의 인재를 선발하고 키워낼 수 있을까. 연재를 시작하는 AC(Assessment Center: 평가센터) 방식이 초일류 기업에서 채택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다.“엉덩이가 펑퍼짐해서 애는 잘 낳겠지만, 발목이 가늘어 힘든 부엌일은 어렵겠군.”역사상 가장 엄격했던 인재의 선발 과정은 사대부 집안의 며느리 간택이었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신체 조건은 물론 집안 환경까지 꼼꼼히 따져 며느리를 들인다.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했을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듯 집안에 사람 하나가 잘못 들어오면 패가망신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먼 옛날을 회상하지 않더라도 최근의 숭례문 방화 사건은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가 ‘문제 인물’을 미연에 검증하고 걸러내는 능력을 상실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엄청난 리스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도산 직전의 일본 닛산자동차에 사장으로 부임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카를로스 곤(현 르노닛산자동차 회장)이나 한 차례의 본선 승리도 없던 우리나라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전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의 경우는 ‘적합한 인재’의 선발이 얼마나 조직과 공동체에 큰 성과를 가져다주는가를 확인해 준다.결국 초일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체계적인 인재 경영 시스템을 갖추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적합한 인재를 선발 육성하고 조직 가치에 반하는 문제 직원을 사전에 배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론을 가져야 한다.취업 경쟁률 100 대 1, 그중에서도 대졸 이상 고학력자들의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취업 경쟁률이 심화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수많은 지원자들 중 우리 회사에 잘 맞고 바로 현장 투입이 가능한 우수한 핵심 인재를 선별해 내야 하는 부담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실제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은 높은 취업 경쟁률 속에서 선발한 ‘뛰어난(?)’ 신입 사원들을 바로 실무에 투입하지 못하고 재교육을 위해 평균 29.6개월 동안 1인당 1억 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그들 중 약 30%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 배치를 이유로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조기 퇴사해 회사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줄 뿐만 아니라 기존 직원들의 사기나 기업 명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기존 사원들의 경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대부분의 인사 담당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지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과 시간 투자에 비해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현장 적용과 성과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교육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승진 평가에서 주요 평가 요소로 고려되는 고과 평가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수행성과를 반영한 것일 뿐이며 승진 이후 달라질 미래의 직무와 책임 하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하는 것은 역부족이다.지식 경영 시대를 맞이해 우수한 인적 자원(HR)을 선발(Selection)하고 유지(Retention)하며 육성(Development)하는 것이 그 기업의 미래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적 요소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기업의 리더와 관리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본 개념이다.이미 앞서가는 기업에서는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등 기존의 선발 요소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이고 타당한 방식으로 미래 핵심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 기법을 연구 도입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서 중심이 되는 키워드는 역량(Competency)이다. 역랑은 특정 직무와 관련해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행동 특성’이라고 정의된다. 즉, 이력서상으로 나타나는 우수한 인재(Best People)보다 자사에서의 해당 직무 혹은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 기술 능력과 조직의 인재상, 미래 가치, 조직 문화에 적합한 인성과 적성 등을 갖춘 인재를 선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고(高)성과자의 특성과 자사의 인재상이나 미래 가치 등을 반영한 역량 모델(Competency Model)을 도출, 인사 시스템에 활용하는 것이다. 사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어려울 뿐, 인사 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문제를 요약하자면 아주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우리 회사가 원하는 ‘적합한 인재’를 어떻게 선발할 수 있는가.이직하지 않고 오랫동안 근무할 사람을 어떻게 선별해 낼 수 있는가.누구를 어떤 부서로 배치해야 최고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가.현재까지보다 앞으로 승진해서 일 잘할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성과 향상과 즉각적인 업무 적용을 위해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AC(평가센터) 기법은 이 같은 물음에 적절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실상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지는 솔루션이다. 많은 초일류 기업들이 인재 선발과 육성을 위해 AC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평가센터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시스템이자 하나의 평가 기법으로, ‘훈련 받은 다수의 평가자가 복수의 평가 기법과 도구들을 사용해 피평가자의 여러 평가 요소들을 측정하는 평가 기법’으로 정의할 수 있다.좁은 의미로는 실제 직무 상황과 유사한 가상의 문제 상황에서 피평가자의 행동, 말 등의 반응을 관찰·기록해 평가하는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사용한 평가 기법으로 한정될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시뮬레이션과 인·적성 검사, 면접 등 사용 가능한 다수의 평가 도구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평가 시스템이다. 또한 평가센터는 그 목적에 따라 역량의 진단이나 평가가 목적이라면 평가센터로, 역량의 개발이나 교육이 목적이라면 개발센터(development center)로 구분되지만 크게는 평가센터로 불린다.평가센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기법은 실제 피평가자, 혹은 피교육생이 목표로 하는 미래의(승진 후의) 직무, 직급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업무처리 상황, 인터뷰 상황, 내·외부 고객 면담 상황, 발표 또는 토의 상황 등을 실제와 유사한 환경에서 제시하고 그 상황 속 문제 해결 과정에서 피평가자(피교육생)가 보이는 행동이나 말, 표정, 손짓 등의 반응과 과제 처리 결과를 종합해 평가하는 방법론이다. 이때 각 피평가자에 대한 평가는 다수의 시뮬레이션에서 훈련 받은 복수의 전문 평가자들에 의해 이뤄지며 모든 평가가 종료된 뒤 평가자 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평가센터는 GE 마이크로소프트 IBM 소니 코카콜라 등 해외 선진 기업에서 산업과 업종에 관계없이 기업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으며 개괄적으로는 포천 500대 기업 중 400개 이상, 우수 품질 관리 기업 중 70%가 도입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영국의 경우는 약 48%의 기업이 평가센터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조직 내 공정한 평가와 소수의 핵심 인재 확보 및 육성의 필요성이 폭넓게 인식되면서 점차 그 중요성이나 효과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평가센터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조직 내에 뿌리내리기 위한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공 부문의 경우에도 도입 및 활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평가센터는 다양한 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HR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수년 내에 국내에서도 인재 경영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란 예상을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다.앞으로 많은 인사 담당자들의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평가센터에 대한 설명과 활용 및 도입 방법, 그리고 적용 기업 사례 등을 알아보기로 한다.국방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코리아리서치&컨설팅 전문위원. 한국경영컨설팅학회 이사. 포스코경영연구소 인재평가부문 자문위원(현). L&I 컨설팅 AC본부장(현).이규환·엘앤아이컨설팅 AC사업본부장©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