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금리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위원 인선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다시 한 번 격돌할 전망이다. 이달 초 강만수 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은 총재가 전격 회동하고 양 기관 사이의 해묵은 불신과 앙금을 모두 털어버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정책 공조’를 강조하는 재정부와 ‘독립성 보장’에 방점을 찍고 있는 한은 사이의 철학 차이가 금통위원 인선 문제로 또 한 번 불거지게 생겼다.다음 달 20일로 강문수(재정부 장관 추천 몫) 이덕훈(한은 총재 추천 몫) 이성남(금융위원장 추천 몫) 등 금통위원 3명의 임기가 끝난다. 한은법 시행령에는 ‘금통위원의 임가가 만료되기 30일 전까지 한은 총재는 해당 위원의 추천기관에 대해 위원 후보자의 추천을 요청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이성태 총재는 이에 따라 지난주 재정부 금융위 등에 위원 추천을 요청했고 각 기관은 3월 말 또는 4월 초쯤 후보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통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절차가 마무리되는데 늦어도 앞 사람이 물러나기 전(4월 20일)까지는 이런 작업이 모두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금통위원 후보 선정을 앞두고 한은의 위상에 대해 미묘한 입장차를 보여 온 재정부와 한은 사이에 또 다시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모습이다. 금통위는 모두 7명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이번에 이 중 3명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것인데 어떤 인물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금통위 내의 세력 구도가 상당히 다르게 바뀌게 되고 한은의 위상 문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재정부 몫과 금융위 몫에는 정부의 뜻을 금통위에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 추천될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한은 총재의 추천권 행사 여부다.강만수 장관이 이끄는 재정부는 “한은의 ‘중립성’과 ‘자주성’을 존중하지만 정부의 전체 경제 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재정부와 공조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은은 “어떤 경우에도 ‘독립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립성 또는 자주성(재정부)’과 ‘독립성(한은)’이라는 표현 사이의 뉘앙스 차이만큼 이번 금통위원 인선에 있어 한은 총재의 독자적인 추천권 행사에 대한 시각차가 엿보이는 상황이다.이번에 임기가 끝나는 3명의 금통위원 이외에 나머지 4명 중 한은 소속의 당연직 금통위원(이 총재와 이승일 한은 부총재)을 빼면 심훈 위원(은행연합회장 추천)과 박봉흠 위원(대한상의 회장 추천)이 남는다. 그런데 심 위원은 한은에서 34년간 일한 ‘한은맨’으로 분류된다. 이번에 이 총재가 한은 몫의 추천권을 온전히 행사해 ‘친(親) 한은 인물’을 앉히게 되면 다음 금통위 구성 역시 지금처럼 4대 3으로 한은 쪽이 우위에 서게 된다.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측은 이처럼 한은이 금통위 과반수를 차지하는 상황을 잠자코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어차피 금통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기에 정부가 청와대와 협의해 한은의 독주를 견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전 조율을 통해 한은 추천 몫을 ‘사실상’ 정부에 우호적인 인물로 선정한다는 시나리오다. 과거에도 각각의 추천기관이 어느 정도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갖고 추천하는 것이 관행이기도 하다.평소 이 총재의 스타일로 볼 때 외압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은 출신 또는 한은에 우호적인 사람을 추천하는 ‘강수’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 정책의 ‘총사령관’으로 대접받고 있는 강 재정장관이 총력을 기울여 이를 저지할 것으로 보여 추천이 실제 임명까지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청와대 역시 ‘폴리시 믹스(policy mix)’를 위해 재정부가 금통위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한은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 나름대로 재정부의 입김을 배제할 수 있는 금통위 라인업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경제 위기가 현실화될수록 경기를 띄우려는 재정부와 통화가치를 지키려는 한은은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각각 자신들과 뜻을 같이할 금통위원이 선임되도록 하기 위한 재정부와 한은 사이의 양보할 수 없는 ‘힘겨루기’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