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5위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몰락했다. 베어스턴스와 JP모건체이스는 지난 17일 “JP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매각 가격은 주당 2달러로 총 2억3600만 달러다. 베어스턴스 주가 30.85달러(시가총액 40억 달러)의 17분의 1에 불과한 수준에 팔려간 것이다. 맨해튼에 있는 본사 건물(약 12억 달러)의 5분의 1을 겨우 넘는 헐값이기도 하다. 소위 ‘땡처리’된 셈이다.베어스턴스의 역사는 미국 투자은행 발전사의 압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베어스턴스는 1923년 조셉 베어와 로버트 스턴스, 해럴드 메이어 등 3명이 주식 거래 부티크로 설립한 회사다. 창립 이후 자본시장의 위기에 베팅하며 급성장했다. 1930년대 대공황 직후 불어 닥친 1940년대 인수·합병(M&A) 열풍기에 뉴욕서브웨이 주식과 뉴욕 발행 지방채 등을 사들여 큰돈을 벌며 두각을 나타냈다. 1975년 뉴욕시가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과감하게 1000만 달러를 투자해 뉴욕시가 발행한 증권을 사들이며 리스크 테이커(Risk-taker)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초기엔 원금의 대부분을 날렸지만 결국 뉴욕시가 살아나며 거액을 남겼다. 1985년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며 주식을 상장한 최초의 월가 금융사 중 하나로 기록됐다.2000년대 들어선 모기지 담보부 채권 발행 시장의 주간사 실적 2위에 오를 정도로 적극적으로 채권 영업을 해 한때 큰 수익을 거머쥐기도 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경제 잡지 포천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에 연속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엔 서브프라임 사태란 재앙의 불씨를 내부에 키우고 있는지 몰랐다.지난해 6월 모기지 관련 채권에 투자했던 베어스턴스 계열 헤지 펀드가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부터 베어스턴스는 월가의 문제아로 전락했다. 지난해 4분기 중에만 8억50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결국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JP모건에 팔려가는 신세가 됐다.이번 베어스턴스 사태의 ‘백기사’로 나선 것은 역시 JP모건이었다.베어스턴스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베어스턴스 긴급 자금을 JP모건체이스은행을 통해 지원하기로 했다. 베어스턴스는 상업은행이 아니므로 FRB로부터 직접 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FRB는 JP모건에 도움을 청했다. JP모건체이스가 재할인 창구를 통해 FRB로부터 돈을 빌려 베어스턴스에 다시 지원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어 JP모건은 아예 베어스턴스를 인수해 버렸다. 이로써 JP모건은 작년 말 현재 총자산 1조9574억 달러로 뱅크오브아메리카(1조7157억 달러)를 제치고 씨티그룹에 이어 자산 기준 미국 2위 은행으로 부상하게 됐다.JP모건은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20세기 초 FRB가 없었던 시절, JP모건은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다. 당시 JP모건 은행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미 정부가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대 주고, 금본위 시절 부족한 금을 구해다 주기도 했다. 1907년 미국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이 집단 파산에 직면하자 은행가들을 맨해튼의 저택에 불러 모아 구제 금융을 주선, 위기를 진화한 것도 JP모건의 창립자인 존 피어폰트 모건이었다.JP모건이 떠맡아 왔던 중앙은행 역할은 FRB가 설립된 1913년에야 끝이 났다. 우연히도 같은 해 피어폰트 모건이 사망했다. JP모건은 2000년 체이스와 합병해 JP모건체이스가 됐다.FRB가 베어스턴스 사태 해결에 JP모건을 끌어들인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또 JP모건의 서브프라임 부실 관련 상각 규모가 30억 달러 수준으로 다른 은행에 비해 훨씬 적다는 점도 JP모건이 선택된 이유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월가의 승자와 패자를 가른 셈이다.유병연·한국경제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