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기업 삼성생명의 비결

“삼성생명이란 울타리에서만 활동하기엔 아까운 인재들이 너무 많아요.”권병구 삼성생명 퇴직연금연구소 소장(법인영업본부 상무 겸임)은 대뜸 삼성생명의 ‘맨 파워’를 자랑했다. 최근 설립한 퇴직연금연구소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동문서답은 물론 아니다.“퇴직연금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해 나갈 계획입니다. 삼성생명의 전문 인력을 활용해 퇴직연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해 나갈 예정입니다. 퇴직연금 제도가 다소 서둘러 도입되는 통에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잖습니까. 시장 예측, 정책 건의, 선진 제도 연구,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을 진행할 방침입니다.”바람직한 사회적 공감대를 추구하는 권 소장의 눈에 최근의 업계 경쟁 환경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게 변화하고 있다. 낮은 수수료와 높은 수익률로 고객을 유치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객과 업계는 물론 해당 기업에도 모두 마이너스일 뿐이라고 권 소장은 잘라 말한다.“수익률은 물론 중요합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확정기여형 비율이 갈수록 높아졌고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삼성생명도 자산 운용 컨설팅 역량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현 상황에서 과거 수익률을 무기로 영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최근 은행과 증권사들이 퇴직연금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몇몇 대형사만 살아남을 것으로 권 소장은 예상한다. 고비용 저마진 사업이어서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경쟁에서 탈락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긴장의 끈은 놓지 않는 모습이다.“갈 길이 멉니다. 삼성생명이 1위라곤 하지만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요. 적립금이 2조 원은 돼야 BEP(손익분기점)를 맞출 수 있습니다. 올해 목표를 적립금 2조 원으로 설정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시장 환경이 만만치 않아 걱정입니다.”권 소장은 2008년을 ‘정중동’의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이 갑작스레 활성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2009년 이후를 준비하는 금융사들엔 분주한 시간이 되리란 예상이다. 삼성생명엔 ‘전문 역량 강화’라는 숙제가 있다. 지금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한 단계 더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이 성숙해질수록 전문 역량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때문에 전문 역량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설명이다.퇴직금에 관한 한 삼성생명은 자타 공인 최강자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엔 퇴직보험 시장의 최대 사업자였다. 전체 시장점유율은 30% 정도였다. 퇴직보험 시장에선 그 위세가 더욱 당당하다. 보험사뿐만 아니라 은행과 증권사 등 다양한 사업자와 경쟁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31%(2008년 1월 말 기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보험업계만 따지만 점유율은 무려 61%에 달하고 생명보험업계로 범위를 좁히면 70%를 넘나든다. ‘퇴직연금 시장의 막강 파워’라고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삼성생명이 이렇게까지 독보적인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변화가 극심한 금융업계에서 숱한 위기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물론 성장을 거듭해 왔으니 ‘안심하고 은퇴 자금을 맡길 수 있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가입자들을 유치하는 일등 공신이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외환위기 시절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금융회사인 데다 총자산 100조 원, 자기자본 9조 원의 탄탄한 재무 구조를 갖추고 있다.권병구 삼성생명 퇴직연금연구소장(상무)은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보면 금융업의 변동성을 실감할 수 있다”며 “은퇴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퇴직연금은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금융회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며 삼성생명은 그에 적합한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가입자들이 단순히 ‘망하지 않을 것 같아서’ 삼성생명을 선택한 것은 물론 아니다. 퇴직연금 역시 투자이므로 최대한의 수익을 내주는 금융사를 고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선 효율적인 시스템과 고도의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다. 삼성생명은 이 부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퇴직연금이 도입되기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온 결과다.먼저 전문 인력은 질과 양 모두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라고 회사 측은 자신한다. 해외에서 10~30년 동안 퇴직연금 설계 및 컨설팅, 연금계리 업무를 담당했던 핵심 인력을 영입해 전문가 그룹과 서비스 조직, 영업 조직을 꾸렸다. 전문가 그룹은 7명의 해외 인력과 20명의 퇴직연금 전문 컨설턴트, 6명의 연금계리 전문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퇴직연금연구소도 설립해 한 차원 높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시스템도 최고 수준이다. 2000년 이후 삼성SDS와 함께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해 2005년에 다른 금융회사와 호환되는 퇴직연금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이르렀다. 여기에 투자된 돈만 100억 원에 이른다.이러한 안정성과 전문성은 대기업과 공기업 유치로 이어졌다. 현재 퇴직연금을 도입한 종업원 500명 이상인 146개의 대형 사업장 가운데 48곳(33%)이 삼성생명을 택했다. 공기업의 경우엔 한국조폐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14곳(29%)이 삼성생명에 노후를 맡겼다. 이러한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말에 삼성테스코가 삼성생명을 파트너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회사 측은 “삼성생명은 처음부터 단기적인 고수익보다는 퇴직연금 제도의 기본적인 취지에 걸맞은 제도 설계를 중심으로 가입을 유도해 왔다”며 “삼성테스코의 경우엔 삼성생명이 제안한 설계를 바탕으로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까지 가입하는 획기적인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이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삼성테스코의 퇴직연금 제도는 업계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차별화된 서비스도 삼성생명의 자랑거리로 꼽힌다. ‘애프터서비스’가 확실하다는 평가다. 제도 설계, 자산 배분, 자산 운용, 가입자 교육, 업무 처리 등 퇴직연금에 관계된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매년 30여 가지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정도의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회사는 국내에선 삼성생명뿐이다.퇴직연금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생긴 현상 가운데 하나는 ‘과열 경쟁’이다. 신규 진출하는 사업자들이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워 고객 유치에 나선 것이다. 삼성생명에 비해 20~30%가량 수수료가 싼 곳도 적지 않다. 또 목표 수익률도 과도하게 높여 제시하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수수료도 적은데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사업자들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고급 서비스와 안정성이 무기인 삼성생명으로선 곤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퇴직연금의 취지를 지킨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혼탁해지고 있는 시장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선도기업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수수료나 수익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파해 나가겠다는 것. 먼저 수수료. 퇴직연금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수수료를 유지하지 않으면 가입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할 여력이 사라진다. 가입만 시켜 놓고 ‘나 몰라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수익률도 그렇다. 저마다 높은 수익을 약속하지만 꾸준히 고수익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고수익을 내려면 고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고수익이 아니라 고손실이 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들의 몫이 된다. 이는 노후 자금이라는 퇴직연금의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권 소장은 “퇴직연금의 성패는 어떤 제도를 도입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기업의 인력 구조, 노사 제도, 재정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설계를 할 수 있는 사업자를 택해야지 단순히 수수료가 싸거나 과거 수익률만 보고 판단하면 ‘소탐대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삼성생명은 영업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수수료 경쟁에는 뛰어들지 않을 방침이다. 그보다는 보다 차별화된 서비스와 제도 설계 경쟁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엔 그동안 퇴직연금 도입이 미진했던 일반 대기업을 집중 공략해 사업 기반을 확고히 다질 계획이다. 지난 1월 말 8440억 원이던 적립금을 올해 2조 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