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행 하동군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경상남도 하동은 매화로 유명한 광양과 이웃하며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룬다.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도 유명한 화개장터는 일찍이 삼남(경남 전남 전북)의 사람들이 모여든 중심지다.한반도 남단에서 가장 높고 장대한 지리산, 새하얀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진 섬진강, 그리고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은 쌀 딸기 수박 배 등의 농산물을 살찌게 했다. 또 매화 벚꽃 소나무 대나무가 어우러진 풍광은 그야말로 일품이다.지난해 하동의 1인당 지역소득(GRDP, 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 지역내총생산)은 시골의 작은 지자체로는 놀랍게도 2만 달러에 이르렀다. 더구나 이 소득은 공장 등 별다른 산업시설 없이 자연 그 자체의 생산력으로 이룬 것이다. 소설 ‘토지’가 아무렇게나 이곳을 무대로 삼은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최근 하동은 천혜의 자연과 지리적 이점을 살려 현대적인 풍요의 땅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04년 지정된 경제자유구역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북부의 아름다운 자연은 관광지로, 중부의 비옥한 땅은 농특산물 생산지로, 바다를 접한 남부는 해양 휴양지와 첨단 산업 지역으로 변모한다. 2016년 하동은 인구 12만 명의 시(市)가 되고 1인당 소득은 3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유행 군수를 만나 ‘지방 지자체의 벤치마킹 모델’로 꼽히고 있는 하동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총괄적으로 말하면 깨끗한 환경과 천혜의 경관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섬진강과 녹차 배 재첩 등의 농특산물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과 한려해상국립공원 등 두 개의 국립공원을 가진 것도 자랑입니다.지금까지 공장을 유치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취임 후에는 지리산이 있는 북부 산악 권역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 하고 남부로 유치하고 있습니다. 기수지역(바다와 담수의 경계 지역)에서 나는 재첩도 전국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하동의 자랑거리입니다.사시사철 농특산물이 끊이지 않고 생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농수산물 생산으로만 연간 3400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죠. 구체적으로 보면 벼 400억 원, 녹차 650억 원, 딸기 230억 원, 수박 100억 원, 축산 850억 원 등입니다. 이런 고수익 농촌이 전국에 별로 없어요. 아마 일조량이 풍부하고 다량의 용수공급이 가능하고 토양이 비옥해 작목들이 필요로 하는 성분들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가져다주는 수입도 크죠.하동이 특허를 가진 솔잎한우는 소나무 아랫 부분의 포자를 배양해 사료에 첨가한 것으로 공급이 적어 서울의 고급 백화점에서만 소량으로 팔려나가고 있어요. 3년 동안 소비자 단체가 평가하는 최우수 또는 우수 품질을 받았죠. 또 맛있는 재첩이 대량으로 잡히는 곳은 섬진강 하구뿐입니다. 강원도에서도 일부 잡히지만 맛이 전혀 다릅니다.‘천부농 만부촌(千富農 萬富村)’이라는 농업 진흥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시작했는데 2013년까지 연소득 1억 원이 넘는 농가 1000호, 4500만 원이 넘는 농가 1만 호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천부농 만부촌이라는 표현은 상표등록까지 할 정도로 하동만의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옛날만 해도 관광이라고 하면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먹고 노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가족과 연인들끼리 휴식을 취하고 체험하는 것을 원해요. 하동은 이처럼 머무르면서 체험하기에 좋은 휴양 관광지입니다. 섬진강만 해도 8경, 10경으로 불리는 경치가 있고 야생 차밭도 좋고 쌍계사 칠불사, 청학동, 평사리 최참판댁(소설 ‘토지’의 무대), 금오산 일출, 천연기념물인 하동 송림 등 외지인들이 반할만한 풍광을 가지고 있죠. 이런 자연에 반해 이곳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화개 악양 청암 지역은 별다른 개발 계획도 없지만 집값이 오를 정도입니다.경제자유구역은 2004년 지정됐고, 올해 부터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진입로 공사가 시작됐고 올 한 해 동안 환경영향평가 실시 등 행정 절차를 밟아 내년 1월 바다를 매립할 예정입니다. 매립지에는 선박을 제조하는 조선 단지를 유치하고 그 외 구역은 관광위락단지 위주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들어오기로 했는데 요트 LNG 전용 운반선, 위그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제조하는 조선소가 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하동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 산악권은 휴양·체험 관광지로, 중간 지역은 교육·주거·농특산물 생산 중심지로, 남부·해안 일대는 해양 체험 관광과 첨단 산업단지로 발전할 것입니다. 1인당 소득도 3만 달러로 올라갈 것입니다.하동은 828년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 사신이었던 대련공이 차(茶)씨를 가져와 심었던 시배지(始培地)로, 당시 왕명으로 쌍계사 일대에 처음 심었고 차 재배에 더없이 좋은 곳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타 지역의 차 밭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에서 나는 ‘재배차’지만 하동은 자연과 어우러진 ‘야생차’입니다. 이 때문에 좀 비싼 것이 흠이지만 요즘에는 ‘비싸야 하동차’라며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 차가 인삼이면 하동 차는 산삼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전국에 4명의 녹차 명인(名人)이 있는데 그중 3명이 하동에 있을 정도로 전문가 사이에서는 하동차를 으뜸으로 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3년 공사 끝에 녹차연구소가 문을 열어 생산되는 모든 차에 대해 농약 안전 검사 등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고 녹차 가공 식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목적으로 연구소를 낸 것은 하동이 처음입니다.작년 국·도정 시책 평가에서 56개 부문에 걸쳐 최우수 또는 우수상에 선정되면서 상금·사업비로 102억 원을 받았습니다. 올해 하동군세(稅)가 135억 원으로 주행세, 담배소비세 등을 제외하고 군민이 직접 내는 세금은 72억 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죠. 다른 시도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입니다.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공무원들이 열정을 갖고 일한 결과라고 봅니다. 다만 만 큰 상을 받을수록 겸손해져야 한다는 뜻에서 자축연도 하지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 축하해 주는 것으로 끝냈어요.옛날로 치면 청렴상, 청백리상쯤 되는데요, 국제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 한국지부가가 정하는 상입니다. 지자체장에게 상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선거 비리, 공천 비리 등으로 4분의 1~3분의 1이 비리에 연루되다 보니 수상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렇지만 잘하는 지자체에도 주어 격려하자는 의미에서 우리가 받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 혼자에게 준 것이 아니라 공무원, 군민 전체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솔선수범한 것 밖에 없어요.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받은 것이 아닐까요. 이번 임기에서는 그것을 본격화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또 취임 후 6년 동안 하동 홍보에 노력한 성과가 눈으로 나타나고 있죠. 하동이 알려지면서 농특산물 주문과 관광객이 늘어났습니다. 인구 5만5000명의 작은 군이지만 하동에는 전국의 택배 회사들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그만큼 배달할 물건들이 많기 때문이지요.자명종을 4시 20분에 맞춰 놓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간단히 세수한 뒤 하동공원이나 무동산, 송림 등으로 운동을 하러 갑니다. 조용한 새벽 기운 아래 가족과 직장, 군민이 모두 편안하고 발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끝난 뒤 대중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고 이발소에 들르죠. 대중탕은 다섯 군데를 날마다 돌아가며 가지요. 목욕탕과 이발소에서는 주로 군민들의 얘기를 듣습니다. 출근하면 개인 시간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바빠집니다. 술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9시까지는 집에 들어가려고 해요. 보통 11시에 잠자리에 듭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