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로 금융회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월가 최고경영자(CEO)들의 ‘고액 보수’가 도마 위에 올랐다. 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어 주주와 고객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정작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할 CEO들은 엄청난 금액의 연봉에다 회사를 떠나면서까지 거액의 퇴직금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에서까지 손실 난 금융회사 CEO들의 과도한 연봉과 투자은행들의 보상 체계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서 업계 내에도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미국 하원의 ‘감시 및 정부개혁위원회’는 지난 7일 임원 보수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안젤로 모질로 컨트리와이드 CEO, 찰스 프린스 전 씨티그룹 회장, 스탠 오닐 전 메릴린치 CEO 3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회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으로 엄청난 손실을 봤는데 이들이 거액의 보수를 받은 것이 문제가 없는지 따지기 위해서였다. 미 의회는 지난해 초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과 증권사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188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하면서부터 금융회사 경영진의 급여 보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이들 3곳의 금융회사는 지난해 3~4분기에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등으로 2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다. 그런데도 이와 상관없이 이들 전·현직 CEO들은 막대한 보수를 챙겼다. 안젤로 모질로 CEO는 지난해 스톡옵션 행사를 통해 1억2000만 달러(약 1150억 원)를 현금화했다. 당시 컨트리와이드는 자사주 매입 기간이었고 모질로의 주식 매각 이후 컨트리와이드 주가는 90% 이상 떨어졌다. 오닐 전 CEO는 10월에 퇴임하면서 퇴직 보너스 등으로 1억6100만 달러를 받았다. 작년 11월 씨티그룹을 떠난 프린스 전 회장도 주식 스톡옵션 보너스 등 3950만 달러를 받아갔다.그러나 청문회장에 선 전·현직 CEO들은 서브프라임 사태는 유감이지만 자신들이 받은 급여 보상은 경영 성과를 정당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컨트리와이드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모질로 회장은 1982년 이후 작년 4월까지 주가가 2만3000%나 올랐다면서 “회사가 잘 해왔듯이 나 역시 잘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오닐 전 CEO는 “메릴린치 경영진에 대한 보상은 엄격하고 독립적인 절차를 통해 결정되며 금융권 전반의 급여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프린스 전 회장 역시 “씨티그룹은 경영진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자신은 사임함으로써 책임을 졌다는 태도를 보였다.이에 대해 헨리 왁스먼 청문회 의장(민주당·캘리포니아 주)은 “2개의 다른 경제적 현실이 존재하는 것 같다”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경제 문제에 노심초사하는 반면 최고 경영진은 별개의 규범에 따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개탄했다.청문회에 참석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금의 보상 체계는 올라가기만 할뿐 내려갈 줄 모른다”고 주장했다.투자은행들의 과도한 보상 체계가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를 부추겨 금융 위기를 촉발했다는 비판이 커지자 업계 내에서도 현행 보상 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은행들 간 국제 연합체인 국제금융연합회(IIF)는 성과를 내면 보상을 해주지만 손실을 냈을 경우 이에 따른 책임을 확실히 지게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성과가 가시화될 때까지 보너스 지급을 연기하거나, 회사에 손실을 입힌 사람은 다음 보너스 지급 전까지 반드시 손실을 만회해야 하며 손실을 만회하지 못할 경우 보너스 지급을 받을 수 없도록 한다는 것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적용 가능성은 미지수다. 거액을 주고서라도 서로 인재를 끌어오려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일률적인 보상 기준을 개별 투자은행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투자은행 보수 체계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금융 업계 CEO들의 연봉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경영진 보수에 대한 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만 해도 월가 CEO들의 연봉은 일반 근로자들의 40배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600배에 이른다. 특히 이사회 보상위원회에서 CEO들의 보수를 책정할 때 컨설턴트의 의견을 많이 참고하는데 이들 컨설턴트들은 CEO가 임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봐주면서 과도한 연봉을 책정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박성완·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