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의 파장으로 세계 경기가 둔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의 고공 행진이 멈추지 않고 있다. 고유가 현상의 장기화에는 달러화의 약세나 지정학적 리스크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세계 원유 수요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문제는 이와 같은 석유 수요의 확대가 장기화될 경우 한정된 자원에 불과한 석유 자원의 부족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신규 유전 발견량은 이미 1960년대에 꼭짓점을 쳤다. 또 장기적으로 신규 유전의 발견량이 감소해 왔으며 최근에는 연간 세계 석유 생산 증가량을 밑돌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앞으로 세계 전체의 확인된 원유 매장량과 세계 원유 생산량의 비율인 가채연수(석유를 채굴할 수 있는 기간이며 2006년 기준으로 39.5년)가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석유 자원이 남아 있어도 석유 생산량이 세계 수요의 확대 추세를 뒷받침할 만큼 계속 증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사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의 잉여 생산 능력은 1990년대에 세계 수요의 10% 정도에서 현재 3%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단 1개의 중요한 산유국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해도 공급 차질과 함께 국제 유가가 급등하기 쉬운 위험한 상황이 2003년 이후 개선되지 않고 있다.이와 같이 석유 매장량이 남아 있어도 신규 유전의 발견 부진과 기존 유전의 노후화로 인해 세계 원유 생산량의 증가가 어려워지거나 급격히 줄어들게 되는 시점을 피크 오일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지질학자들은 미국 유전, 북해 유전 등의 생산량이 피크 오일을 경과한 후에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에 주목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 제2위의 유전인 쿠웨이트의 부루간(Burugan) 유전이 이미 피크 오일을 지난 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생산량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가와르(Ghawar) 유전의 피크 오일 도달 시점이 우려되고 있다. 가와르 유전은 매일 700만 배럴이 넘는 해수를 주입해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며 피크 오일이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세계 지질 학회 논문 등에서 거듭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세계 전체 석유 산업의 피크 오일에 관해서 비관론자들은 2010년대 초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정보청(EIA)도 이르면 2026년, 늦어도 2047년에는 피크 오일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피크 오일이 수년 후에 올 것인지, 10년이나 20년 후에 올 것인지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10년 이내에 중국과 인도 등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지 않는다면 세계 석유 수급은 상당히 타이트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석유 자원의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선행적이고 전략적인 에너지 대책이 강화돼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은 시장 메커니즘만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면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에너지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에너지 문제를 시장에 맡기는 경향이 강한 일본도 경제산업성의 산하 기관 등에서 피크 오일의 도래를 전제로 한 국가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우리나라도 이들 국가와 같이 다양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 에너지 사용을 줄여나가면서 복합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해외 유전의 확보 및 개발과 함께 태양전지 등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동시에 확대돼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핵융합과 같이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는 높은 에너지 효율을 가진 신에너지 기술 개발 노력도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이지평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약력: 1963년 도쿄 출생. 85년 호세이대 경제학과 졸업. 88년 고려대 경제학 석사. 88년 LG경제연구원 입사. 경제연구실 수석연구위원 및 재팬 인사이트 편집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