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내 모습이 낯설군요. 남보다 늦은 나이로 조직 사회에 첫발을, 그것도 CEO라는 직함으로 내딛게 됐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마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2008년 3월 7일자로 예당아트TV의 대표이사가 된 가수 최성수 씨의 소감이다. 최성수 대표는 주주총회 후 정식 발령이 나기 한 달 전부터 업무 파악과 인수 인계를 위해 출근하고 있었다. 그 짧은 동안에 새 프로그램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새 대표를 맞이한 직원들과 격의 없는 회식 자리도 가졌다.“대중 가수가 예술 채널의 대표를 맡는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죠. 신선하다는 분들도 있고, 과연 제대로 해낼까 하는 분들도 있고요. 예전부터 대중음악의 고급화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 왔고 현대 미술에도 흥미가 있었습니다.”예당아트TV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초대, 100인의 예술가’, ‘제3지대 메이드 인 아트’ 등 공연 예술과 교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채널이다. 문화 예술에 대한 지식과 재미가 적절히 조화된 프로그램들이 알만한 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지만, 다른 오락 채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률은 낮은 편이다.우선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야 대중 음악인 최성수와 순수 문화 예술 채널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파격적 인사에 대한 주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들이 잠잠해질 듯하다.“대중 예술의 반대말이 고급 예술이 될 수는 없겠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전에 몰랐던 미술이나 음악을 알고 난 느낌이 자신의 생활을 한 단계 나아지게 했다면 고급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만큼 느낀 참 좋은 것들을 모은 공통분모가 고급 예술이 아닐까요.”예당아트TV는 문화 예술 공익 채널로서의 뚜렷한 색채를 이어갈 계획이다. 한 번 듣고 본 후 무심코 흘려보낼 수 있는 채널들은 차고 넘친다. 대신 최성수 대표는 ‘고상함을 즐겨라’는 모토를 제시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직원들에게는 문화를 이끌어가는 TV에서 일하는 자기 자신을 아티스트로 여기라는 이야기를 전달했다.최 대표가 새롭게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테너 임웅균 교수의 토크쇼와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 씨의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강좌다. 이 둘을 예당아트TV가 자체 제작한 간판 프로그램으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이 외에도 CEO와 직장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와인과 관련한 교양 프로그램도 추진 중이다. 또한 그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트렌드를 포착해 미술품 경매 프로그램도 내놓을 예정이다.이 중에서도 조영남 씨와 최 대표의 인연은 깊다. 두 사람은 해외 공연 중에 같은 숙소에 묵는 일이 많았고 최 대표는 조영남 씨를 따라 LA 보스턴 뉴욕의 미술관을 다니며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고 한다. 그런 조 씨가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에서 ‘집주인 최성수가 가리키기 전까지는 미국 미니멀리즘의 대표 도널드 저드의 작품인지 몰랐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시대 흐름을 관통하는 현대미술 작품을 모으고 있는 최 대표는 숨겨진 컬렉터이기도 하다.“조영남 선배는 제가 늦은 나이에 버클리음대에 유학을 떠나겠다고 할 때도 괜찮은 결심을 했다며 격려해 줬지요. 조 선배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예당은 ‘예술과 당신’의 준말이라면서 잘 이끌어 보라고 응원해 줬습니다.”CEO가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아침형 인간’으로 생활하게 된 점이다. 이전에는 밤 공연장에 서거나 작곡을 하며 보냈다면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크고 작은 미팅에 참석하고 업무를 돌봐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정식 발령 이후에 몸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건강검진을 받았다.“기타를 열심히 치던 손도 오래 연습을 쉬면 굳은살이 사라지고 타고난 가수의 목도 자주 부르지 않으면 꽉 잠기게 됩니다. 대표이사 취임을 계기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꼼꼼하게 체크하게 됐습니다.”스케줄 다음으로 남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그동안 유명 연예인으로서 어디에 가든지 말 한마디라도 아끼며 지내왔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점잔만 빼서도 안 되는 위치가 됐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예의를 지키는 것은 기본이지만, 때로는 친근하게 다가서고 때로는 강하게 대처하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직원들과 있을 때 제가 가만히 있으니까 분위기가 가라앉더라고요. 괜히 제가 더 나서서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게 됩니다.”최 대표는 짧은 CEO 경험을 통해 가수가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신 한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노력해 준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모르고 살았다. 가수일 때는 수동적으로 있어도 일이 진행됐지만 이제는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보스는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되지만 리더는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이제 제가 상대방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역할을 하게 됐네요. 직원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예당아트TV를 통해 미술과 공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스타들을 키워보고 싶습니다.”‘최성수 예당아트TV 대표이사 취임’이라는 언론의 발표 후에 예당아트TV 시청률이 꽤 올랐다. 최 대표는 최성수와 예당아트의 인지도가 역전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최성수를 더 많이 알고 있지만 나중에는 예당아트TV를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예당아트TV를 알릴 수 있다는 마음에 신이 난다고 했다.“당분간은 대표이사로서 맡은 업무에 집중을 할 겁니다. 평생을 열심히 하겠으니 잘 봐달라고 부탁드려 왔는데, 이번에도 또 잘 봐달라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저를 아는 모든 분들에게 힘이 되고 그 분들이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겠습니다.”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