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 탄생 10주년

10년 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집 안에 있는 커다란 오디오나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를 사용해야 했다. 이 중 소니가 자사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에 붙인 상표인 ‘워크맨(Walkman)’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워크맨’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을 비롯해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전자제품 중 으뜸이 워크맨이었고 소니, 파나소닉(Panasonic), 아이와(Aiwa)에서 나온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는 졸업이나 입학 선물의 대명사가 됐다.당시 국산 제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마이마이’, LG전자 ‘아하’, 대우전자 ‘요요’ 등 국내 가전 3사도 일본 업체에 대항해 제품을 내놨지만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물론 당시 있었던 일본 가전제품 프리미엄도 작용했지만 이미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워크맨은 일본이 종주국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정확히 10년 전인 1998년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 전시회에서 한국의 중소기업이 워크맨을 대신할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다. 그 제품의 이름은 ‘MP3 플레이어’로 카세트테이프와 콤팩트디스크(CD), 미니디스크(MD)를 제치고 향후 전 세계 상업 음악 시장에 혁명을 가져다줄 제품이었다. 새한정보시스템(이후 엠피맨으로 사명 변경)이 만든 MP3 플레이어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지금은 MP3 파일이나 MP3 플레이어가 대중화됐지만 당시 만 해도 MP3 음악은 고성능 PC에서나 재생이 가능했다. PC에서 MP3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돈을 주고 따로 구입해야 했으며 MP3 파일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당시 휴대용 오디오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업체들은 CD 플레이어와 MD에 주력한 만큼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워크맨’의 뒤를 이을 차세대 규격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소니와 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은 디지털오디오테이프(DAT:Digital Audio Tape)와 디지털 콤팩트카세트(DCC:Digital Compact Cassette) 등 새로운 규격을 내놓기도 했지만 카세트테이프와 같이 기계적으로 동작한다는 점에서 같았고 가격도 비싸 현실성이 떨어졌다.그러나 새한정보시스템은 음악 역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뀔 것으로 내다보고 플래시메모리를 장착한 MP3 플레이어를 세계 글로벌 업체들보다 먼저 출시했다. MP3 플레이어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IT 업계에서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MP3 플레이어가 탄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다른 나라와 달리 국내에서 잘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1998년 MP3 플레이어가 첫 등장할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만 해도 플래시메모리 가격이 높아 노래가 10곡도 들어가지 않는 16MB 제품이 300달러에 달했으며 PC에서 노래를 내려 받는데도 프린터와 연결하는 패러럴단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몇 분씩 시간이 걸렸다. 새한정보시스템은 트렌드는 제대로 짚었지만 시장성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 초기 많은 개발 비용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하지만 새한정보시스템은 미국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에 MP3 플레이어를 공급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MP3 플레이어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는 ‘리오’라는 이름으로 MP3 플레이어 대중화에 문을 열었다.이어 국내에서는 2000년 초 벤처 붐을 타고 200여 개 업체가 난립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다. 이후 레인콤이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이후 재정난에 부딪쳐 MP3 플레이어 특허권마저 미국 칩셋 업체인 시그마텔에 판매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현재 국내에는 10여 개 업체가 MP3 플레이어를 생산하고 있으나 자체 개발 및 생산하는 업체는 삼성전자, 레인콤, 코원시스템 정도다.업계에서는 MP3 플레이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하고 있지만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은 지난해 1억 대를 넘었으며 오는 2011년까지 매년 10% 이상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과 전문가들은 2011년까지 MP3 플레이어 시장이 1억9000만 대까지 성장하며 이후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MP3 플레이어 시장을 사양 산업으로 보고 주력 사업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MP3 플레이어 업체인 레인콤과 코원시스템은 각각 전자사전과 PMP, 내비게이션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MP3 플레이어 부문은 줄이고 있다.최근 국내 업체들의 이런 변화는 세계 시장의 트렌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동안 MP3 플레이어 업체들은 새로운 기능과 용량으로 경쟁해 왔지만 두 가지 모두 상향 평준화됐기 때문에 경쟁 요소가 ‘가격’ 한 가지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규모 물량을 내놓아 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거나 초저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중국 업체가 아니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른 경쟁 요소인 디자인도 우리나라 업체들이 신경 쓰고 있지만 애플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국내 업체들은 인터넷과 연결해 음원을 직접 구매하는 사용자가 많은 해외 사정을 간과하고 P2P 사이트 등 음성적인 경로로 MP3 파일을 구하는 국내 사용자를 위주로 제품을 기획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현재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의 65%가량을 아이팟이 점유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아이팟이 점유하는 비율은 80%에 육박하며 아이팟 액세서리 시장만 2조 원으로 추산되는 등 거대한 산업군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이팟 이외에는 아직 주도하는 업체가 없다. 애플 뒤를 이어 샌디스크, 크리에이티브, 삼성전자 등이 10% 이내 점유율을 보유하며 각 업체들은 치열한 2위 경쟁을 하고 있다.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한편에서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중국 내에는 100여 개 이상의 MP3 플레이어 업체들이 있으며 이 중 AIGO, Meizu 등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매년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향후 MP3 플레이어 시장은 북미와 유럽이 아닌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브릭스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가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국가 소비자들은 아이팟처럼 비싼 MP3 플레이어를 살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MP3 플레이어 업체들이 승부를 걸어 볼만하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 조사와 이에 맞는 제품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이미 MP3 플레이어가 보급된 나라에서도 분명히 시장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나서 카세트테이프나 CD보다 더 음악을 듣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특히 PC와 IT 기기를 다루는데 서투른 노년층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기존 MP3 플레이어보다 쉬운 제품을 원하는 요구가 많다. 소비자가 불편을 느낀다면 그것은 시장이 있다는 얘기다. 그 시장은 기술로 푸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아이디어로 풀어야 한다. 10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우리나라 MP3 플레이어 업체들이 그 시장을 찾길 바란다. 돋보기│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는 새한정보시스템이 1998년 3월 독일 하노버 세빗 전시회에서 내놓은 ‘엠피맨 F-10’이다. 용량은 16MB였으며 곡 번호를 표시할 수 있는 흑백 LCD를 내장했고 PC와의 연결은 패러럴단자를 사용했다. 현재 MP3 플레이어는 mp3 파일 이외에도 wma, ogg 등 다양한 규격의 오디오 파일을 지원하지만 F-10은 mp3 파일만 지원했다. 소니 워크맨을 뛰어넘겠다는 의미로 엠피맨으로 이름 지어진 F-10은 국내외에서 1만여 대가량 판매됐으며 발매 당시 가격은 299달러였다.새한그룹에 있던 새한정보시스템은 2000년 엠피맨닷컴으로 분사됐고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지만 기술 개발에 치중해 제품 경쟁력을 잃었다. 또 국내 업체들과 특허권 다툼으로 인해 엠피맨닷컴은 2003년 7월 부도를 맞게 된다. 이후 2004년 11월에 레인콤에 흡수 합병돼 엠피맨닷컴에 있던 특허권도 레인콤에 귀속됐으나 경영이 어려워진 레인콤은 자본 확충을 위해 2006년 초 미국 회사인 시그마텔에 특허권을 매각했다.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