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목받는 그룹주 펀드

2004년 7월 그룹주 펀드의 원조 격인 ‘한국 삼성그룹주 펀드’가 출시되면서 지난해 초까지 LG와 SK 등 그룹 관련 펀드가 등장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자재나 에너지 섹터 등 다른 섹터로 이목이 집중되며 그룹주 펀드는 시장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러던 중 2008년 신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폐지,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완화 등 친기업 정책에 관한 구체적인 안건을 발표하면서 그룹주 펀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출총제는 삼성 LG SK 등과 같은 자산 총액 규모가 5조 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에만 적용되며 금산법은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게 하는 제도로,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저해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들이 폐지 또는 완화되면 대기업들의 인수·합병(M&A) 등 신규 투자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 기업들에 투자하는 펀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해외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든 그룹주 펀드가 국내에서 섹터 펀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대기업 계열사들이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위 30위까지의 시가총액(3월 7일 기준)은 전체 시가총액의 50.4%로 절반 이상이다. 그룹주 펀드는 시가 총액 상위에 랭크돼 있는 대형주 위주로 투자하면서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나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둘째, 해외 기업과는 다른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 구조 때문이다. 과거 대기업들은 전자, 건설, 금융, 호텔 등 문어발식으로 투자하면서 각 사업의 상호협력 관계보다 기업의 확장에 치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그룹주 펀드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고 그룹주 펀드는 다른 섹터 펀드가 가질 수 없는 장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즉, 원자재 섹터 펀드는 원자재 관련 섹터로만 투자할 수밖에 없고 금융 섹터 펀드는 은행이나 증권, 보험 관련 섹터에만 투자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반해 그룹주 펀드는 하나의 섹터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섹터에 걸쳐 투자가 가능해 분산 투자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LG와 GS그룹에 투자하는 펀드는 전기 전자업(LG전자)에서부터 건설업(GS건설), 유통업(LG상사)까지 연관성이 낮은 다양한 업종을 커버하고 있어 여러 섹터에 투자가 가능해진다.마지막으로 투자자들이 갖는 대기업에 대한 안도 심리 때문이다. ‘설마 이 기업이 망하기야 하겠어’라는 인식이 그룹주 펀드의 인기 몰이에 일조한 것이다. 과거 외환위기 직후 대우 사태를 통해 투자자들은 대기업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시련은 기업들이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다시 기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면서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줘 보다 강한 기업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됐고 이 같은 인식이 그룹주 펀드의 인기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이런 강점을 지니고 있는 그룹주 펀드도 물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첫째, 펀드에 편입하는 종목에 한계가 있어 운용의 묘를 살리기 어렵다. 일반 주식형 펀드의 평균 보유 종목은 40개 내외인데 반해 한국 삼성그룹주 펀드는 15개 내외 삼성 관련 종목에만 투자한다. 따라서 일반 섹터 펀드보다 분산 투자가 이뤄지긴 하지만 그래도 섹터 펀드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제도적인 한계도 있다.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의 ‘자산운용 제한’ 조항은 펀드 순자산의 10% 이상을 동일 종목에 투자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를 보통 ‘10% 룰’이라 부르는데, 그룹주 펀드의 특성상 이 규정을 지키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펀드평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삼성그룹주 펀드의 경우 2007년 12월 말 현재 삼성화재 10.52%, 삼성물산 10.43%, 삼성전자 10.10%로 10% 룰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이 뒤에 나온 그룹주 펀드는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다른 종목의 편입을 가능하도록 설계해 법규를 준수하면서도 보다 효과적인 분산 투자를 추구하지만 협소한 투자 종목에 따른 운용 제약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인 상태다.둘째, 그룹주 펀드가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크게 뛰어난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룹주 펀드의 수익률이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6개월 평균 수익률은 오히려 악화된 모습이고 연초 이후 수익률 역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룹주 펀드가 섹터 펀드도 성장형 펀드도 아닌 ‘박쥐’같은 형태의 펀드로 도태될 수 있다는 위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또한 대형 우량주의 편입 비율이 높아 상승장에서는 큰 문제가 없더라도 하락장에서는 수익률이 급락할 수도 있다. SK그룹 우량주 펀드를 보더라도 최근 하락장에서 SK 계열사 주가가 급락하며 일반 주식형 펀드의 1주일 수익률(3월 7일 기준)인 마이너스 1.8%에 크게 못 미치는 마이너스 3.17%를 기록했다. 물론 단기 수익률로 펀드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변동성이 큰 만큼 리스크 관리가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셋째, 사회적 이슈, 돌발 악재 등과 같은 외부 변수도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룹의 펀더멘털에는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오너의 기업 운영 방침, 지배 구조의 변화, 기업에 대한 여론 악화 등 외부의 돌발 악재에 대해 수익률이 출렁거릴 수 있다. 가령 삼성그룹의 펀더멘털은 크게 변한 것이 없는데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와 삼성 특검 등 외부 변수로 인한 기업 이미지 악화가 그룹에 악영향을 미쳐 삼성그룹주 펀드의 수익률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이 기간 한국 삼성그룹주 펀드의 수익률이 여타 그룹주 펀드의 수익률에 비해 양호한 수준을 기록하긴 했으나 이러한 외부 변수가 없었더라면 보다 나은 수익률을 올렸을 것이다.올해의 펀드 화두는 무엇보다도 ‘분산’이다. 글로벌 증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만 안전할 리 만무하고 섹터가 한정돼 있는 그룹주 펀드의 개별 리스크가 높아지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물론 한국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닌 그룹주 펀드는 펀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투자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섹터 펀드의 특성상 ‘몰빵’ 투자는 위험하다. 즉,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후 특정 산업에 치중해 투자하는 섹터 펀드 투자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위험에 대한 인지 정도가 높아진 가운데 펀드 가입 시기에 따라 특정 산업의 주식이 테마 또는 유행을 타고 비싼 가격에 거래되면서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고평가된 주식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차익 실현 양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과거 실적만 보고 뒤늦게 가입한 투자자들은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특정 그룹에만 투자하는 그룹주 펀드는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룹주 펀드에 어떠한 종목이 편입되고 있는지,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이나 위험은 어느 수준인지 꼼꼼히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섹터 펀드는 말 그대로 테마 펀드다. 따라서 펀드 투자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보다 언제나 분산의 원칙을 지키면서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안정균·SK증권 펀드애널리스트 jkahn@sk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