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에 사는 것이 투자입니다.’경인고속도로 변에 걸려 있는 이 현수막은 달라진 인천의 위상을 말해 준다. 짧은 문구에선 묘한 자신감마저 읽힌다. 사실 인천이 ‘투자’와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상황 변화’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천은 부동산 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다. 부두,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소규모 주택이 도심을 차지하고 아파트 공급도 별 이목을 끌지 못해 ‘무늬만 수도권’인 곳이 인천이었다. 용인 성남 수원 등 경기 남부지역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인천만은 요지부동이었고, 새 아파트 공급 소식 뒤에는 늘 ‘과잉 공급 주의’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투자에 관해서라면 인천은 ‘괄호 밖’이었던 것이다.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05년부터다. 2003년 8월 송도, 청라, 영종지구가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으로 지정되고 개발 청사진이 하나 둘씩 제시되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송도에 분양된 아파트가 심상치 않은 상승 기운을 내뿜더니 청약 경쟁률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이즈음 인천에선 ‘균형 개발’이 화두로 떠올랐다. 경제자유구역이 위치한 서부 축에만 투자가 집중되다 보니 기존 구도심과의 불균형이 문제가 된 것이다. 교육과 문화 등 모든 주거 환경에 격차가 벌어져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이 걱정된다는 지적이었다.고민하던 인천광역시는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각종 개발 사업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10여 개의 굵직한 프로젝트로 구성된 도시재생사업은 ‘재건’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규모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경인고속도로 도심 구간을 일반 도로로 만드는 간선화 계획부터 청라지구 초입의 가정오거리를 입체 복합도시로 만드는 구상까지 ‘놀랄 노’ 투성이다. 여기에다 2009 세계도시엑스포(가칭)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최가 결정되면서 호재를 더 보탰다.이쯤 되자 부동산 시장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방의 미운오리 새끼에서 일약 수도권 ‘에이스’로 신분 상승에 성공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부동산뱅크 조사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금까지 인천의 아파트 매매가는 무려 45.68%가 뛰어올랐다. 구별로는 중구 64%, 남동구 44%, 부평구 40%, 남구 30%, 동구 29% 등 전 지역에서 고른 상승세를 보였다. 상승 행진은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스피드뱅크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인천지역 아파트 값은 2.11% 상승하며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서울이나 신도시 상승률에 비하면 5~6배가 넘는 기록이다.인천의 미래는 ‘장밋빛’ 수준을 넘어 거대하고 또 화려하게 그려지고 있다. 안상수 인천광역시장은 “세계 10대 명품 도시가 인천의 미래”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안 시장의 구상대로라면 앞으로 5~6년 후인 2014년께에는 두바이와 상하이를 능가하는 인천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모든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물론 세부 계획 추진 과정에서 이해 충돌과 반발이 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인천광역시의 이야기다. 가장 큰 야심작인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경우 1월 31일 현재 총 35건의 외국인 투자를 통해 425억4000만 달러를 유치하고 있다. 3단계 개발이 완료되는 2020년에는 인구 51만2000명이 거주하는 새 도시가 완성된다.인천국제공항, 인천항 등 ‘한국의 관문’들도 한 단계 더 도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긴 다리인 인천대교가 완공돼 접근성이 한층 더 좋아진다.굵직한 국제 행사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내년에는 인천을 세계에 브랜드화하기 위한 세계도시엑스포(가칭)를 치를 계획이다. 조직위 예상으로는 이 행사만으로 2조8000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4만여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나온다. 짭짤한 부가가치 가 기대되는 효자 이벤트인 셈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도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다. 45개국 1만2000명이 참가하고 관람객 수만 300만 명을 헤아리는 큰 행사답게 예상 수입만 해도 총 2000억 원에 달한다.인천은 역사 깊은 대한민국의 문호다. 개화기에는 가장 선진적인 비즈니스 터전이었다. 최초의 외국 무역회사(1883년, 이화양행), 최초의 상인단체(1885, 인천객주회), 최초의 근대적 해운회사(1893년, 이운사), 최초의 자동차공장(1937, 신진자동차)이 모두 인천에서 탄생했다. 개발과 투자에서 소외됐던 시절을 딛고 다시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 전성기를 맞이할지, 흥미진진한 인천 파노라마를 지켜볼 일이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