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이 보는 증시 현주소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투자의 귀재’나 ‘오마하의 현인’으로 더 유명한 올해 77세의 노인. 세계 세 번째 부자이면서도 가장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기로 해 ‘부자의 표본’으로 불리는 사람.이런 버핏이 월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누구보다 크다. 그의 투자 전략은 물론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투자 교과서로 자리 매김할 정도다. 그의 발언만을 모은 ‘버핏 발언집’은 장기 베스트셀러이고, 그의 투자 전략과 발언만을 주시하고 분석하는 ‘버핏 워처(Buffet Watcher)’도 늘어나는 추세다.따라서 경기와 증시에 대해 불안감이 깊어지는 현재 상황에서 버핏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월가의 큰 관심일 수밖에 없다. 버핏은 이에 대해 “현재 미국 경기는 상식적으로 침체 상태”라며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보험 산업의 파티는 끝났다”고도 말했으며 “주식 투자로 매년 10%의 수익을 내겠다는 꿈을 깨라”고도 조언했다.버핏은 매년 5월 첫째주 토요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연차 보고서와 함께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송한다. 여기에서 한 해 동안의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새해의 투자 전략을 얘기한다. 올 편지는 지난 1일 공개됐다. 버핏은 이후 방송사 등에 출연해 최근의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밝혔다. 유머와 비유가 깃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는 만큼 버핏의 발언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것도 투자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버핏은 현재 미 경제를 침체 상태라고 규정했다. “비록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기술적인 침체에 빠지진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미 경제는 침체 상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그는 그 근거로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벅셔해서웨이가 운영하는 76개 회사의 경영 상황을 들었다. “자회사들의 업황으로 볼 때 산업 전반에 걸쳐 성장 둔화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경기 둔화와 주택 시장 침체로 벅셔해서웨이의 보험 및 투자 사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울러 “가구회사 등 소매 업체의 실적을 분석해 보면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확연히 나타난다”고 덧붙였다.버핏은 미국의 경기 침체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전망했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지난 1973년과 같은 최악의 경우로 빠지지 않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볼 때 미 경제 전망은 밝다”고 특유의 낙관론을 개진했다. 한마디로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 전망은 좋지만 현재는 어려우며 상당 기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현재 미 경제를 보는 버핏의 시각이다.그렇다면 증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그는 “작년 10월 중순 이후 S&P500지수는 약 16% 빠졌지만 여전히 1300대를 웃돌고 있다”며 주가가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가가 상당히 빠져 주가가 그리 비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상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따라서 값싼 주식이 나올 때까지 좀 더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6개월이나 1년 전에 비해 주가는 많이 싸졌으며 이에 따라 (주식 매수 시점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살펴볼 것이 많다”고 그는 털어놓았다.증시를 바라보는 그의 결론은 결국 유보다. 그는 “현재로선 주식보다 채권 시장에 더 극적인 변화가 있어 왔고 기회를 찾는 곳이라며 “주식보다 채권 투자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주식이 많이 싸졌지만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좀 더 기다리는 게 좋다는 게 그의 투자 전략인 셈이다.버핏은 최근 핫이슈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했다. 농산물 가격의 경우 지속적으로 오르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이에 비해 유가의 경우 원유 자원은 한정된 반면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추가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달러화 약세에 관련해서는 “미국의 엄청난 경상적자가 계속되는 달러화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미 정부의 정책 실패 탓”이라고 규정했다.버핏은 주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투자 철학과 경험담 등을 솔직히 털어놨다. ‘투자의 귀재’인 그도 투자를 결정하기는 언제나 힘들다는 것. 그는 생애 최악의 거래로 지난 1993년 4억3300만 달러어치의 벅셔해서웨이 주식(A주 2만5203주)을 주고 산 제화회사 덱스터를 꼽았다. 그렇지만 앞으로 이보다 더한 투자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버핏은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 지난 1965년 설립된 벅셔해서웨이의 주당 장부가치는 작년까지 연평균 21.1% 증가했다. 누계 수익률로는 무려 40만863%에 달한다.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연평균 10.3%(배당금 포함) 올랐다. 버핏은 시장수익률을 2배 이상 능가했다. 그러다 보니 그에겐 ‘투자의 귀재’란 별명이 붙었다.이런 별명에 걸맞게 그는 포스코 투자를 통해서도 엄청난 평가 이익을 내고 있다. 작년 말 현재 그가 보유한 포스코 주식 348만6006주(지분율 4.5%)의 시장가치는 21억3600만 달러. 매입 원가(5억7200만 달러)에 비해 273%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만 9억7800만 달러의 평가 이익이 불어났다. 여기에는 주가 상승분과 환율 차익 등이 포함됐다.그렇지만 버핏은 개인이 주식 투자를 통해 매년 10%의 수익을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연평균 배당률을 2%로 계산할 경우 주가 상승으로 8%를 매년 얻으려면 다우지수가 2100년엔 2400만까지 올라야 한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장이 좋았다는 지난 1900년대도 연평균 상승률은 5.3%에 그쳤다. 따라서 매년 10%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꼬드기는 브로커들을 믿지 말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보험 산업에 대한 버핏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그는 “보험 업계의 마진율은 올해 4%포인트 이상 하락할 것이며 앞으로 몇 년 동안 낮은 수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보험 업계의 파티는 끝났다”고 진단했다.또 “그동안 금융회사들은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며 “이제 집값이 하락하면서 어마어마한 금융시장의 바보짓(financial folly)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해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형 금융회사들을 비웃기도 했다. 그는 “썰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며 “우리는 대형 금융회사들의 추한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해 파생 금융상품에 대한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금융회사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기도 했다.버핏이 투자의 귀재란 말을 듣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최근 모두가 어려울 때 보여준 그의 행동은 이를 실감하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채권 보증업 진출. 버핏은 모노라인으로 불리는 채권 보증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자 벅셔해서웨이 자회사로 벅셔해서웨이 어슈어런스를 세우고 채권 보증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MBIA와 암박파이낸셜 등이 보증선 8000억 달러의 지방채에 대해 재보증을 서겠다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비록 채권 보증 업체의 거절로 없던 일이 됐지만 성사됐을 경우 채권 보증 시장(총 2조4000억 달러)의 3분의 1을 한꺼번에 가져갈 절호의 기회였다. 버핏의 뛰어난 투자 판단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