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된 대그룹 사람들

노소영(48)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이번 학기부터 서울예술대학 디지털아트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2000년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와 2004년 중국 칭화대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강의를 하기는 했지만 겸임교수가 아닌 전임교수가 된 것은 처음이다.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의 부인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로 잘 알려져 있다.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총수의 부인들 대부분이 경영이나 대외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보수적인 분위기를 봤을 때 노 관장의 활발한 행보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SK가(家) 여성의 활동적인 모습은 노 관장뿐만 아니라 동서인 채서영 서강대 교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채 교수의 남편은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이다.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노 관장은 공학도답게 평소 기술과 예술의 접목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아트센터 나비를 출범시키면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미디어아트를 콘셉트로 잡아 화제를 모았다. SK텔레콤 사옥에서 볼 수 있는 아트 프로젝트도 직접 챙기는 등 차별화된 미술 사업을 전개해 SK텔레콤의 통신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사업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천재소녀’로 불렸던 윤송이 상무의 SK텔레콤 입사도 노 관장이 추천하는 등 최태원 회장의 든든한 보좌관 역할도 겸하고 있다.노 관장이 미디어아트에 관심을 가진 데는 아트센터 나비의 전신인 워커힐미술관을 이끌었던 시어머니 고 박계희 여사의 영향도 크다. 박 여사는 미시간 카라마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1984년 국내 최초로 앤디 워홀 전시회를 여는 등 실험적 예술 장르에 관심이 많았다.노 관장은 1997년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워커힐 미술관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계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공식적으로는 남편인 최태원 회장이 관장이었지만 노 관장은 1998년 워커힐미술관에서 열린 독일 바이마르 시대의 사회비판적 판화와 데생전을 기획해 호평을 받았다.노 관장은 지난해 6월 박 여사의 유고 10주기를 맞아 소장품전을 열었고 9월에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미디어아트 축제를 여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했다. 사람(people), 예술(art),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파티(PArTy)’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축제의 홍보를 위해 노 관장은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설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다른 재계 안주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행사 준비를 위해 머리를 질끈 묶고 티셔츠에 캔버스화를 신고 현장을 누비던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서울예술대의 교수로 부임하게 된 계기도 미디어 축제 ‘파티’에서 비롯됐다. 축제가 열린 남산 드라마센터는 서울예술대가 2001년 안산으로 이전한 뒤 예술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국내에선 좀체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기획의 ‘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나가 이를 지켜본 이덕형 서울예술대 학장이 노 관장에게 교수 자리를 제안했다.마침 서울예술대는 전문대 졸업자(전문학사)를 대상으로 학사학위를 부여하는 2년제 심화과정을 2008년부터 운영할 계획으로 교수를 더 채용해야 할 시점이었다. 노 관장은 이번 학기부터 디지털아트과에서 심화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맡고 있다.노 관장이 대그룹 안주인에서 미술관 관장과 교수로 변신한 것과 달리 최재원 SK E&S 부회장의 부인인 채서영(45) 교수는 처음부터 교수의 길을 걸어왔다. 채 교수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지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언어학 박사를 받은 재원이다. 최재원 부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씨가 친구인 채 교수를 최 부회장에게 소개해 준 것이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이어졌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였던 아버지 채희경 씨의 뒤를 이어 서강대 영미어문학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사회언어학 전공자답게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 시절 몰입식 영어 교육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언론 인터뷰와 칼럼 기고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채 교수는 당시 “초등학교 시기에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집중적인 영어 교육을 시키고 그 이후에는 원하는 사람만 필요한 만큼 배우게 하자.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채 교수의 인터뷰나 기고에는 SK그룹과의 관계가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주위에서 대그룹 안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교수로 더 인정받고 있다.지금은 해체된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의 딸인 김선정(41) 교수도 2006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의 객원 큐레이터로 시작해 1998년 설립된 아트선재센터의 부관장을 맡기도 했다. 아트선재센터는 대우재단 소속으로 김 교수의 어머니인 정희자 관장이 운영을 맡고 있다.김 교수는 1990년대 초 한 화장지 광고에 출연해 생소했던 큐레이터를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바꿀 정도로 큐레이터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현대미술만을 전시하면서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 잡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당시 “젊고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해야 우리 미술계가 발전한다”고 밝힌 바 있다.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커미셔너를 맡는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해 온 김 교수는 2006년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2007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의 한국 측 커미셔너를 맡아오다 문화관광부의 지시에 반발해 돌연 사퇴를 발표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김 교수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예술 행사 내용을 공무원이 해라 마라 결정하는 것은 문화 후진국의 전형적인 행태”라며 반발했었다.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녀인 조희경(42) 씨는 미국 뉴욕 FDU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 교수의 남편 노정호 연세대 법대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를 지내다 귀국 후 법무법인 지성을 거쳐 연세대 법대 교수로 부임했다.그러나 조 교수는 미국에 남아 있는 상태로 남편인 노 교수가 미국을 수시로 방문하고 있다. 조양래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결혼한 이수연 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 딸로, 조희경 씨와는 시누이 올케 사이가 된다.두산건설 박용현(66) 회장은 평생 의사의 길을 걷다 경영인으로 변신한 경우다. 서울대 의대에서 외과를 전공한 뒤 서울대 의대 교수, 서울대병원장을 거치며 성공한 의사로서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드라마 ‘하얀거탑’의 실존 모델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두산그룹의 박용곤 명예회장, 박용오 전 회장, 박용성 전 회장의 동생으로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 그룹 경영진이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당시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이 그룹의 수장을 맡았다.조지호(60) 한양대 교수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촌이다. 조 교수의 아버지인 조중렬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의 형이다. 조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년간 대한항공에서 근무한 뒤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양대 조교수로 부임했다. 한양대 경제연구소 실장, 대한항공 경제자문, 한국증권학회 회장을 거쳐 현재 한양대 경영대학원장을 맡고 있다.대성그룹 김영훈 회장의 누나인 김정주(59) 연세대 신학대학 교수는 이화여대를 전체 수석으로 입학한 재원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신약(新約)학을 전공했다. 현재 교수직을 맡으며 대성닷컴 사장도 겸하고 있다.대성그룹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으로 김영훈 현 회장도 하버드대에서 경영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김 교수의 막내 동생은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회장으로 독일의 명품 브랜드 MCM 등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김성주 회장도 연세대 신학과를 나온 뒤 미국 앰허스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와 경제학을 전공 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