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을 이기는 펀드
신라면이 650원에서 750원으로 올랐다. 국제 곡물가 상승의 파도가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와 베트남 등 주요 쌀 수출국이 수출을 제한해 쌀값이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고 유가는 28년 만에, 커피는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설탕 가격도 최근 1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자 금과 같은 안전한 자산의 수요가 늘어 금값도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 약세도 문제다. 화폐량이 늘면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실물 자산의 가치는 올라간다. 지금과 같은 달러화 약세와 금,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인플레이션의 힘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들이다.2002년 이후 줄곧 주주 서한을 통해 ‘달러 약세’를 경고했던 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얼마 전 경제 전문 방송 CNBC에 출연해 “미국 경제는 이미 후퇴 국면에 빠졌다. 잇따른 금리 인하 결정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위험이 높으며 대규모 경상 적자가 지속되는 한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이어 인플레이션, 고유가, 달러 약세 지속 등 각종 위험 요인으로 주식시장은 불안하다. 펀드 투자자들의 마음도 덩달아 무겁다. 하지만 원자재와 곡물 가격의 폭등은 또 다른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 가격 상승으로 수혜를 보는 주식을 사면 된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은 직접 거래가 어려운 만큼 ‘펀드’를 고르면 된다.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곡물 펀드, 천연자원을 대체할 만한 가공재 생산 기업에 투자하는 ‘에너지 관련 펀드’ 등 ‘원자재 펀드(상품 펀드)’가 대표적이다.최근 1개월간 조정장 속에서도 10~15%가량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수익률 상위 20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펀드를 살펴봐도 브라질 펀드와 함께 원자재 펀드의 비중이 가장 높다. 또한 최근 곡물 가격 강세로 관련 국가인 브라질 중남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일부 동유럽 등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며 주목받고 있다.상품 펀드는 대개 상품 선물이나 관련 지수와 연계된 상품 펀드형과 상품 관련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주식형 펀드는 오일 가스 금속 농산물 등의 천연자원의 매장지를 보유·생산·가공·운송하는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며 파생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는 원유 가스 옥수수 대두(콩) 축산물 설탕 코코아 커피 알루미늄 등의 상품 가격과 연동하는 상품 선물(Commodity Futures)에 투자한다. 또한 파생형인지 주식형인지, 투자 대상이 포괄적인지, 특정 상품에 한정돼 있는지 등에 따라 수익률이 엇갈린다. 주식형 펀드는 상품 가격 변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의 주가가 수익률을 결정한다.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펀드는 상품 선물에 투자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수익률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대표 원자재 펀드인 미래에셋맵스로저스Commodity인덱스파생상품1Class와 우리Commodity인덱스플러스파생 1Class는 각각 ‘RICI(로저스인터내셔널Commidity인덱스)’, ‘로이터-제프리 CRB’를 따르는 펀드다. 이 두 펀드는 최근 1개월간 각각 15.82%, 12.0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RICI는 상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가 1998년부터 발표해 온 상품 지수다. 짐 로저스는 과거 12년 동안 연평균 38%라는 경이적인 누적 수익률을 기록한 퀀텀펀드의 설립자다. 이 지수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관련 실물에서부터 금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 밀 옥수수 면화 등과 같은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총 36개의 실물 상품을 기초로 하며 에너지와 곡물의 투자 비중이 높다. 특히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물가가 오르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농산물 상품의 가격이 올라 물가 전반이 오르는 현상)’이란 신조어가 화제가 될 만큼 최근 곡물가가 급등하자 농산물 펀드의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최근에 출시된 ‘산은 짐로저스애그리인덱스펀드’는 짐 로저스(Jim Rogers)와 ABN AMRO가 공동으로 개발한 ‘RICI 인핸스드(Enhanced) 농산물지수’를 따르는 상품이다. ‘RICI 인핸스드 농산물지수’는 21개 종목의 다양한 농산물로 구성돼 있으며 현물 가격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설계된 지수다.또한 로이터-제프리 CRB는 1957년부터 발표해 온 가장 오래된 상품지수로 ‘우리Commodity인덱스플러스파생 1Class’가 이 지수를 따른다.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 수는 19개로 에너지의 투자 비중이 39%와 곡물은 13%, 산업용 금속은 13%이다. 또한 돼지고기와 같은 가축과 설탕 코코아 커피 등 기호식품의 투자 비중이 높다.이 외에도 ‘우리CS글로벌천연자원주식’은 세계 2~3위 철광 회사인 BHP빌리턴과 리오틴토 등 해외 주식에 90% 이상을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이며 ‘SH골드파생상품’은 펀드 자산의 70%를 뉴욕증권거래소 등 미국 내 거래소에 상장된 37개 금광 기업들의 주식들로 구성된 ‘AMEX Gold Miners인덱스’ 주가지수를 따르는 펀드다.한편 상품지수를 만든 주인공인 짐 로저스는 얼마 전 한국을 찾아 “주식은 1980년대 이후 많이 올라 피크에 달했지만 상품 시장 활황은 2020년까지 갈 것”이라며 “상품지수 관련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상품가격 상승 전망이 이어지며 상품 펀드는 치솟는 물가 부담을 이기고 조정장 속에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펀드로 주목받고 있다.세계 경제의 견고한 성장과 함께 상품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공급의 증가율은 둔화될 것으로 예상돼 상품 펀드의 수익률에 대한 기대도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상품 펀드의 특징은 주식시장이나 인플레이션의 위험과 상관관계가 낮아 펀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분산 투자의 효과를 높여 투자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로저스농산물지수’의 경우 2005년부터 2007년 2월 8일까지 주간 수익률 기준으로 MSCI 월드지수와의 상관계수는 약 0.1(상관계수가 1인 경우는 비교 대상 주가지수를 그대로 따르는 것을 뜻한다), MSCI 이머징마켓지수와의 상관계수는 약 0.24로 분석됐으며 KOSPI지수와의 상관계수는 0.3으로 나타났다.주식형 펀드에만 자산이 몰려 있는 투자자라면 상품 펀드에 적립식 투자를 시작하는 것은 분산 투자 측면에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품 펀드에 대한 이해 없이 유행을 좇듯 수익률만 좇는다면 고점일 때 뛰어들어 손해만 보고 빠져나오는 실망스러운 투자 성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최근 원자재 펀드로의 자금 유입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며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부분은 우려스럽다.‘미래에셋맵스로저스농산물지수종류형파생상품(C-B)’ 펀드의 경우 설정 잔액이 지난해 말 20억 원에서 올 1월 말 59억 원을 기록, 지난 2월에만 215억 원이 늘어난데 이어 3월 3일까지의 순자산 총액은 총 432억 원을 기록했다.상품 펀드는 대부분 파생 상품 투자에 따른 지렛대 효과로 인해 기초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며 주식시장보다 변동성이 높다. 따라서 중심 펀드가 아닌 분산 투자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며 높은 투자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장기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공도윤·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연구원 syoom@miraeasset.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