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

최근 모 일간지의 경제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세계는 지금 식량 위기를 맞고 있다. 곡물 생산이 부족하고 재고마저 감소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올해 세계 곡물 생산량이 소비량에 비해 2900만 톤 부족하고 곡물 재고율(연말 재고량/연간 소비량)도 사상 최저 수준인 14.6%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아르헨티나 등 곡물 생산국들은 각종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곡물 위기는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만 넘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내나 해외에서 농지를 확보해 곡물 농사를 더 짓든지, 아니면 안정적인 해외의 곡물 수입처를 확보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곡물 위기는 단순히 곡물 시장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밑에는 자산시장의 큰 흐름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곡물 시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자산시장의 미래에 대해 꽤 진지한 답을 얻을 수가 있다.농산물 가격이 연일 급등하면서 농산물 관련 펀드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특히 밀이나 옥수수처럼 광활한 농지를 가진 국가가 생산하는 곡물들이 가격 상승의 선두에 서면서 여타 다른 농산물의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이제는 쌀값도 오르기 시작했다.곡물가가 이렇게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투자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논리는 이렇다. 호주의 가뭄으로 작황이 나빠져 수급 불균형이 발생한 데다 미국이 바이오 연료 생산에 주력하면서 옥수수 수요가 급증해 옥수수 가격이 상승했다는 식이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한 대의 연료통을 가득 채울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려면 약 150kg의 곡물이 필요하고, 그것은 성인 남자의 1년치 곡물 소비량과 같다는 것. 여기에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곡물 소비량이 증가, 가뜩이나 어려운 수급이 더욱 악화됐다는 설명이다.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아무래도 회의적이다.중국이나 인도의 곡물 소비량이 지난 1년 새 갑자기 증가한 것도 아니고 미국의 바이오에탄올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시장은 가격이 상승하면 대개 그 이유를 수요와 공급에서 찾지만 본질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국제 투기자금의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다. 국제 투기자본들은 저금리 구도 속에서 한껏 부풀려지며 주식 석유 은 구리 금으로 계속 이동했고 그 결과 이런 자산들에 일정 부분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투기자본들은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야 했고 농산물이 그 대상이 되었다.원래 농산물은 수급 구조가 특이한 상품이다. 수요는 예측 가능하지만 공급은 그렇지 않다. 다음해 작황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산물에 대한 투자는 국제 곡물 메이저들의 장기 계약에 의해 이뤄지고 자본시장에서는 농산물 자체가 투자의 대상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곡물 메이저의 주식을 사는 방식 외에는 다른 투자 방법이 없다. 파생시장이라야 다음해 곡물가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경우를 대비해 위험을 회피하려는 헤지성 선물 투자가 고작이다.그에 반해 석유 선물이나 금선물 같이 공급량이 일정하거나 예측이 가능한 자원의 경우에는 가격 추세를 미리 짐작할 수 있어 상품 선물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석유 메이저들이 현물에 대한 압도적 독점권을 가지고 석유를 거래하더라도 투자자들은 그 가격을 지수화한 선물 상품에 무한대의 투자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하지만 농산물의 경우에는 이런 식의 투자는 상당히 어렵다. 만약 예상과 다른 결과가(작황) 나올 경우 그야말로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농산물 지수에 헤지 거래가 아닌 투기 거래가 시작되고 있다. 이 말은 결국 농산물처럼 파생 거래에 적당하지 않은 상품들도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이런 상황을 주식시장에 대입해 보자. 먼저 대형주가 오른 후 중형주가 상승하고 그 다음에 소형주, 그리고 마침내 작전주까지 움직이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주식시장에서 소위 작전종목이라 불리는 부실주가 오르기 시작하면 시장은 ‘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량 주식에서 이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적은 거래량과 시세 변동이 큰 부실주에 쏠리는 현상이다. 결코 정상적인 거래라고 할 수 없다. 최근의 농산물 가격 상승도 같은 맥락에서 풀어볼 수 있다.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진짜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유동성의 논리에서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농산물 시장의 상승은 지난 수년간 전 세계 자산시장에서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상품 시장으로 이전돼 온 유동성이 거의 마지막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비교적 안전한(덜 위험한) 자산으로 분류된 상품마저 위험해졌다거나 수익이 나지 않는 단기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그렇다면 농산물 투자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자명하다. 그동안 지탱돼 온 유동성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과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증발하면서 서서히 소멸돼 갈 것이며 이에 따라 자산시장의 큰 사이클 하나가 끝나갈 것이다. 다시 이 점을 주식시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 큰 사이클 하나가 서서히 저물고 한동안 어둠이 깔릴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유동성이 빠르게 흡수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미국의 금리 인하에 더해 본격적인 유동성 공급이 이뤄지면서 그동안 증발한 유동성이 보강되는 시점이 오지 않는 한 시장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해결 시점은 생각보다 멀리 있을 수 있다.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현명한 투자 전략은 공격적인 자세로 시장이 금세 반등하기를 기대하거나 단기적인 재료에 의지하기보다는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위험 관리를 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경우 그동안 상승하지 못하고 한동안 숨고르기를 해 온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이 반등을 하느냐, 아니면 한 단계 더 주저앉느냐가 핵심 키워드가 되고 이것이 주식시장이 회생할 것인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농산물 시장이 움직인다고 해서 농산물 관련 상품에 뛰어드는 것은 주식시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부실주를 사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상품 시장에서도 지나친 자산 집중보다는 모든 자산을 일정하게 고르게 배분해 어떤 위험에서도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될지 모른다.그렇다고 모든 자산을 현금화해서 투자의 적기를 기다리는 것 역시 어렵다.인플레이션은 현금 자산의 가치를 갉아먹을 것이고 금리는 그것을 보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채권의 경우에도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보다는 상승 요인에 대한 위험이 더 크다. 다시 말해 지금은 살만한 자산이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이불 아래 깔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결국 모든 자산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 이상의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주식 투자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최선의 선택은 인덱스 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또는 그동안 오르지 못한 우량주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일부는 계수가 낮은 안정적인 종목으로 편입하거나 배당주 펀드와 같은 곳에서 대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이 하락한 주도주를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래저래 고난의 한 해가 될 것 같다.용어 설명바이오 연료 :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들어진 연료. 식물성 기름을 사용해 제조되고 경유와 혼합해 사용하는 바이오디젤과 사탕수수나 밀 옥수수 등에서 추출한 알코올을 원료로 삼는 바이오에탄올이 대표적인 제품들이다.베타 계수: 개별 주식이나 펀드가 전체 시장의 지수 변동에 얼마나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이 수치가 1보다 낮으면 시장에 비해 변동성이 적은 반면 기대수익률도 낮다는 의미이며 1보다 높으면 변동성이 커 위험하지만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현직 외과의사이자 저명한 투자 칼럼니스트다.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유명하다. 투자 분석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명쾌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