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간 쿠바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해 온 피델 카스트로(81)가 물러나고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76) 국방장관이 국가평의회 의장에 공식 선출되면서 쿠바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일단 라울이 취임 일성으로 “피델의 혁명 이념 계승”을 거론한 점이나 새로 꾸려진 국가 지도부에 원로들이 대거 등장한 점 등을 감안할 때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특히 피델이 살아 있는 한 그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미국의 경제 봉쇄로 국민들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라울이 어떤 형태로든 경제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라울 의장은 형 피델이 2006년 7월 31일 장출혈 수술을 받은 후 사실상 권력을 넘겨받아 19개월간 임시 수반으로서 국정을 운영해 왔다. 그는 피델의 건강이 악화되기까지 철저히 형의 그늘에서 지냈지만 1959년 쿠바혁명 성공 이후 거의 50년간 군을 완전히 장악해 쿠바에 공산주의 체제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한 인물이다.그는 형보다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조직력과 실행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념을 강조해 온 형에 비해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울의 실용주의 성향은 그동안 그가 군에서 취했던 각종 조치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라울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진 후 군대를 산업 역군으로 전환, 농장에서 일하도록 했고 우수 인재를 뽑아 유럽에서 경영을 배워오도록 했다. 국내 휴양지 개발에 군을 동원해 수입을 늘리는가 하면 퇴역 장성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또한 공개적으로 쿠바 경제의 비효율성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개혁과 개방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라울 체제 하에서는 쿠바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경제를 개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쿠바 안팎의 관측통들은 라울 정권에서도 에너지 설탕 광산 등 주요 산업은 국가가 계속 장악하겠지만 농업과 소매업 서비스 업종 등에서는 개인이나 조합에 자영업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물론 형 피델이 살아 있는 한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라울은 국가평의회 의장에 선출된 직후 행한 연설에서 “형 피델을 ‘혁명의 총지휘관’으로 모시는 조건으로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수락한다”며 중요한 문제는 피델과 협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발표한 지도부에도 호세 마차도(77) 벤투라 수석부의장 등 혁명 1세대 원로들이 대거 포함됐다. 당분간 기존 체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살아 있다. 라울은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후 “어느 개인이나 국가도 그들이 갖고 있는 것 이상으로 쓸 수 없다”며 경제 개혁에 의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쿠바 경제와 관련해 최대 관심은 미국의 경제 봉쇄 해제 여부다. 미국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해 정권을 세운 후 외교를 단절하고 금수조치를 취하는 등 쿠바 고립 정책을 펴왔다. 2000년부터 식량 및 의약품의 대쿠바 수출은 허용했지만 그 밖의 품목들은 여전히 제한을 하고 있다. 다른 서방 국가들도 미국의 견제 등으로 쿠바와의 교역에 소극적이었다. 미국은 ‘반미’의 선봉에 섰던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났지만 쿠바의 민주화가 진전될 때까지는 당분간 금수조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에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되고 미·쿠바 관계 개선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병행될 경우 양국 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 등 브라질 언론들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후 라울 의장의 미 금수조치 해제 노력 등을 지원하기 위해 중남미와 일부 유럽 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그룹 구성을 제의할 예정이라고 최근 보도했다.박성완·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