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웅 성실타공 부사장

경기도 시화공단. 인접해 있는 반월공단과 더불어 이곳은 국내 최대 중소기업 밀집 지역이다. 시화에는 약 5600개 업체, 반월에는 약 3100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시화공단의 경우 입주 업체 중 절반이 넘는 약 3000개 사가 기계와 철강 업종의 업체들이다. 전기 전자와 석유화학 운송장비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가동 중인 업체의 평균 종업원 수는 17명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하다. 이는 반월공단의 평균 종업원 수 31명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기계 철강 운송장비 업체들이 많다 보니 낮에는 프레스 밀링 선반 등의 작업을 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하지만 저녁 6시가 지나면 기계 소리가 일제히 잦아든다. 어둠이 내려도 불을 밝히는 공장이 드물다. 중소 업계의 불황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다. 시간 외 일(잔업)이라는 말은 들어보기 힘들 정도다.그런데 성실타공은 다르다. 정왕역에서 시화공단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이 회사는 하루에 적어도 3시간씩 잔업을 한다. 펀칭 기계와 밀링을 비롯한 각종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힘차다. 적어도 저녁 9시까지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잔업은 한 달에 평균 20일 정도 이어진다. 국내외에서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국내에선 파종기, 해외에선 타공 펜스 등의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배추 고추 파 등 상당수의 채소는 모종을 만든 뒤 옮겨 심는다. 그래야 뿌리가 잘 내리고 튼튼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이때 씨를 뿌리는 과정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깨알만한 씨들을 몇 개씩 각각의 모종판에 넣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일이 씨를 집어다 모종판 거름 속에 정확히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장치가 파종기다.파종기는 국내 굴지의 농자재 업체인 서울바이오를 통해 전국의 농가에 판매되고 있다. 파종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진 책상 서랍 형태의 파종기에는 보통 가로 9개, 세로 18개의 구멍이 격자형으로 뚫려 있다. 모두 162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다. 이 파종기 뒷면에는 역시 구멍이 뚫린 얇은 철판이 덧대어져 있는데 이 철판의 한쪽엔 스프링이 달려 있어 한 방향으로 밀면 구멍이 열리고 놓으면 저절로 닫힌다.따라서 파종기 안에 씨앗을 가득 담고 그 아래쪽에 플라스틱 모종판을 댄 뒤 철판을 옆으로 밀면 한꺼번에 모종판 내 162개의 코너에서 씨앗이 뿌려진다. 물론 모종판엔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이 담겨 있는데 그 안으로 자동적으로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농부들은 수고를 크게 덜 수 있게 됐다. 노동 생산성이 적어도 10배 이상 올라가는 셈이다.이를 주도해 제품화한 사람은 이 회사의 장철웅(44) 부사장이다. 장 부사장은 성실타공 창업자인 이동훈(47) 회장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연구를 계속해 이 제품을 탄생시켰다. 장 부사장은 “연간 3만 개가량의 파종기가 팔려나간다”고 밝혔다.그뿐만 아니다. 장 부사장은 목재 울타리를 대체할 타공 펜스를 제품화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지역의 단독주택은 대부분 앞마당에 나무로 된 낮은 울타리를 친다. 하지만 이 울타리는 비에 젖으면 썩고 페인트가 벗겨져 흉하게 변한다. 이를 대체하는 제품이 금속으로 된 타공 펜스다. 얇은 철판이나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판을 도장하거나 도금해 만든다. 이 펜스는 미려한데다 썩지 않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수많은 구멍이 뚫려있어 주택의 안과 밖을 소통시키는 역할도 한다.장 부사장은 “이 제품에 대해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았다”며 “매년 적어도 200만 달러어치 이상 수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다. 파종기와 타공 펜스의 히트에 힘입어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잔업을 하는 것이다. 3월 중에는 설비를 증설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직원 7명을 충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전체 직원은 50명으로 늘어났다.장 부사장은 석사나 박사 출신의 고학력자여서 이들을 제품화한 게 아니다. 그의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다. 서울 행당동에서 살며 한영중학교를 나온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17세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 2년 동안 행당동과 사근동 일대의 타공 업체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1983년 서울 대방동에 있는 성실타공에 공장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성실타공의 직원은 12명이었으며 그가 공장장을 맡았을 때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로부터 25년 동안 각종 타공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제품화했다. 올 2월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해 기술개발 생산 영업 및 관리 등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이동훈 회장이 평택 공장과 이천 공장 등 다른 지역의 공장과 별도 법인까지 총괄해야 하는 등 업무가 과중한 점을 감안해 시화공장의 성실타공은 장 부사장이 맡은 것이다. 그가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장의 아이디어에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접목한데 따른 것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해 뒀다가 정규 작업이 끝난 뒤 밤늦게까지 공장에 남아 수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제품화한 것이다. 그의 손과 팔에 나 있는 수많은 상처가 이를 입증한다. 철판에 베이거나 철판을 옮기다가 떨어뜨리면서 난 상처들이다.하지만 이 역시 그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20년 이상 현장을 지켜 온 하명균(39) 공장장, 김상식(40) 기술영업부 실장의 도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실타공을 이끄는 트로이카인 이들 3명은 공교롭게 모두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기술 개발에 대한 집념을 바탕으로 성실타공을 국내 최대 타공 업체로 발돋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 공장장은 23년째, 김 실장은 22년째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 공장장은 생산을 총괄하고 김 실장은 기술영업을 맡고 있다.장 부사장은 “철판이나 알루미늄 판에 구멍을 뚫는 타공 제품은 정교한 가공을 필요로 한다”며 “이를 위해선 기술 개발 못지않게 정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선 전 직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협동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좋은 원자재 구매에서부터 기술 개발, 가공, 품질 관리, 납품 및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원이 합심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이 제품화한 타공 제품은 이 밖에 고속전철역이나 공항청사 등 대형 건물의 천장용으로 쓰이는 제품 등 무척 다양하다. 분쇄기용, 소음기용, 집진기용, 인테리어용, 패널용 타공 제품 등을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예컨대 천장재에는 타공 제품 안에 흡음재가 들어가 소음을 흡수한다. 또 식음료 제약 업체 등에서는 유체 속에 포함돼 있는 찌꺼기를 걸러내는 데 타공 제품을 사용한다. 집진기의 경우에도 미세한 구멍을 통해 먼지를 잡아낸다.이처럼 다양한 용도에 쓰이는 타공 제품은 수많은 구멍에 찌꺼기가 가급적 달라붙지 않아야 한다. 설사 달라붙었다 하더라도 쉽게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말끔한 가공이 필수다. 이를 위해 첨단 자동 펀칭 기계를 비롯해 선반 밀링 호이스트 연마기 벤딩기 드릴링 머신 등 다양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직원들의 경력과 정성이라고 장 부사장은 설명한다.장 부사장은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방음에 대한 요구가 많아져 타공 제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미 성실타공의 타공 제품은 전 세계 그 어느 나라 제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제품력과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라며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라고 덧붙였다.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