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과디아의 판결과 삼성 특검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는 판사 출신이었다. 그를 명판사로 세상에 알린 다음과 같은 일화는 삼성 특검과 그 판결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지혜를 던져주고 있다. 1930년 어느 날 라과디아는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고 절도 혐의로 기소된 노인을 재판하게 됐다. 그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에게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이어 라과디아는 왜 훔쳤느냐고 노인에게 물었다. 빵을 훔친 노인의 답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고 사흘을 굶기까지 했다고 한다. 배는 고픈데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을 보채는 손자를 달래다 못해 자신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쳤다고 말했다.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난 뒤 주저 없이 내린 라과디아의 판결은 뜻밖이었다.“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방청석에서는 판사가 노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관대하게 선처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단호한 판결에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라과디아 판사는 방청객의 동요를 가라앉히며 논고를 계속했다. “이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고 동시에 법정에 앉아 있는 시민 모두에게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한 뒤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모자에 담았다. 그리고는 경무관에게 자신의 모자를 모든 방청객들에게 돌리게 했다. 술렁이던 법정은 숙연해졌고 아무도 판사의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거두어진 돈은 모두 57달러50센트였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도록 했다.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법정을 떠났다.2007년 10월 김용철 전 삼성그룹 구조본부 법무팀장의 ‘비자금 50억 원 차명관리’설 폭로로 시작된 삼성 파문이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매출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 수출의 21%를 담당하는 국내 최고 그룹 삼성이 어느 한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인해 특검 수사, 그리고 기업의 존폐 여부까지 위태할 정도의 파국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4년간 굳건한 협력 관계를 맺어온 일본의 소니가 삼성과의 계약을 깨고 샤프전자와 손을 잡기로 결정하면서 LCD 업체 전체와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우리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큰 폭의 파장으로 다가오고 있다.이러한 삼성 사태를 감당해내야 할 국민들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일등 기업 삼성의 흔들림이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하는 시각이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삼성 문제가 경제 전체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삼성의 문제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 외에도 삼성의 상징성으로 인한 간접적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이들의 우려는 삼성에 대한 특별 배려라는 단순 차원의 입장을 넘어선 국민 경제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담은 것이다. 반면 이와 맞서는 입장에서는 법치적 해결을 우위에 두는 시각으로 기업의 공명성과 청렴성 회복을 강조한다. 기업의 윤리성 확보라는 명분은 실현해야 할 명제임에 틀림없다. 경제적 관점은 삼성에 대한 특별한 배려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법치적 관점은 성역 없는 비리 척결의 결단을 강조한다. 요컨대 엄격한 법집행을 주장하다 보니 경제가 걱정되고, 경제를 걱정하다 보니 엄정한 법집행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시각은 논쟁으로 우열을 가릴 대립적 사안이 아니다. 기업과 정치, 국민 경제 모두를 살리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명제인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 한 쪽만을 택하고 다른 쪽을 버릴 수 없는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국민 경제와 기업 윤리, 그 무엇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이기에 우리의 고민은 크고 판단 역시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라과디아의 명판결을 떠올려 보자.라과디아는 빵을 훔친 노인의 절도죄를 법대로 판결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자신을 포함한 시민 모두의 잘못을 물었고 그 책임을 법적 행위로 지게 했다. 삼성 비리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들만의 책임으로 그쳐야 할 것인가. 라과디아는 노인의 절도에 대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우리 모두의 책임까지 물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기업 비리가 비단 삼성뿐이겠는가. 기업의 비자금은 공공연한 비밀로 국민 대다수가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위 도덕 불감증과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인데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권과 고위 관리들에게 돈을 뿌리는 일이 기업을 키우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현실과 항변이 서글퍼진다. 빵 한 덩어리를 훔친 노인의 불법 행위와 굶주린 노인을 방치한 사회의 책임이 무관하지 않았듯이 불법 비자금이 없으면 기업을 경영할 수 없는 현실과 그러한 현실을 방치한 우리의 책임도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삼성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국민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신중한 판단을 위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를 생각해 보자. 제갈공명은 전략 요충지인 가정을 지키지 못한 마속을 군율대로 처형했다. 훌륭한 전공을 세운 최고의 장수를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처형시킨 제갈공명의 처사를 두고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운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 사회도 끊임없이 읍참마속을 해 왔다.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가족과 측근의 비리에 따른 ‘읍참마속’은 계속됐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동일한 유형의 읍참마속이 정권마다 있었다는 것은 결국 읍참마속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대로 된 읍참마속이 없었던 것, 즉 ‘무늬만 읍참마속’이었던 것이다. 기업의 각종 비리가 관행처럼 자리 잡게 된 근본 원인을 뿌리째 뽑아내지 못했던 셈이다. 특정 기업에만 원인을 돌리고 관련 인물 몇몇에게 책임을 묻고 잠시의 소요만을 잠재운 미봉책에 머무른 읍참마속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 사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읍참마속의 한 결과인 셈이다.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하지 못한 첫 번째 책임은 당연히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있다. 의당 책임을 묻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경제 재도약을 이야기하는 현재 시점에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봉쇄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기업의 형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서기까지 많은 국민들의 수십 년간의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음을 우리 모두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법대로 죄를 묻고 형을 집행하되 죄 지은 자와 함께 죄를 짓게 한 사람들(사회)의 책임을 묻고 그 값을 치르게 한 라과디아의 명판결이 삼성 문제 해결을 향한 지혜의 열쇠가 되었으면 한다. 빵을 훔친 노인은 자신의 잘못을 더 이상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죽는 날까지 절도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당시 뉴욕 시민들은 자신의 배만 불린 채 배고픈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이기적 시민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 비리 척결이 한 기업의 윤리성 회복을 넘어선 우리 사회 전체의 윤리성 회복과 이기적 자본주의 극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장경천·중앙대 상경학부 교수약력: 1952년생. 75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77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85년 미국 매사추세츠대 경영학 박사. 86년 중앙대 상경학부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