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결과 수사 이후 삼성의 기업 활동이 타격을 받았다는 응답이 67.7%, 받지 않았다는 응답이 21.7%로 나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도 많았다.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가능하면 조속히 수사를 끝내야 한다는 응답이 40.8%로 기간과 관계없이 수사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해야 한다는 의견(23.4%)을 크게 웃돌았다.지난 2월 1일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부당 경영권 승계 등을 조사하고 있는 특검팀(삼성특검)은 이날부터 참고인으로 소환되는 삼성그룹 임직원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소환 임원의 이름과 사진 공개가 부담스럽다는 삼성 측의 이의 제기를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종전에는 당일 소환되는 임원들의 소속사나 직책 정도만 공식적으로 브리핑해 왔으나 이름이 파악되지 않는 일부 임원이 있을 경우 보도 편의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이를 확인해 왔다.삼성 측의 특별한 요청으로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던 삼성전자 윤모 부사장을 제외하고는 직급에 관계없이 소환 사실이 실명으로 보도됐다. 특검의 방침은 이 같은 비공식 확인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특검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삼성 측이 임원들의 출석 불응 사유로 ‘실명이 공개될 경우 영업 활동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를 계속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특검은 ‘그렇더라도 조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특검 내부에서는 삼성의 그런 명분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삼성 측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한 불만 때문에 소환 임원의 프라이버시 보호 지적의 목소리가 묻혔던 것으로 알려진다.특검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외과수술처럼 해야 한다’는 원칙에 보다 가까워진 것이다. 수사의 본질과 상관없는 부분에서 삼성그룹 경영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삼성에 대한 수사를 둘러싼 딜레마는 이런 작은 사안에서부터 세계 시장에서의 삼성의 역할론이라는 큰 분야에 걸쳐 있다.시민 사회단체에서는 ‘삼성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삼성이라는 권력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 하고 있고, 경제계에서는 삼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월 10일 시작한 삼성 특검은 1차 수사 마무리를 앞두고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3월 9일 60일에 걸친 조사가 끝나면 두 차례에 걸쳐 30일, 15일의 추가 연장이 가능하다. 2월 28일에는 이재용 전무까지 소환되면서 이건희 회장의 소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1월 14일 삼성의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의 소환에 이어 1주일 만에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의 출국금지, 또 1주일 뒤 이 전무의 소환이 이어지면서 이 회장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특검으로서는 부담감이 크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던 ‘이명박 특검’이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면서 ‘특검 무용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까지 소환해 놓고 아무런 소득을 올리지 못한다면 기간 연장에 대한 명분을 잃어버리게 된다.삼성그룹으로서도 부담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 회장 소환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다 특검이 연장된다면 경영 차질이 4월 말까지 이어져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의 시간을 검찰·특검 수사에 매달리게 되는 꼴이다. 현재 신년 인사, 새로운 사장단 협의를 통한 그룹 전략, 이에 따른 예산 결정 등 모든 경영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 삼성으로서는 조기에 특검이 끝나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늘 2월에 끝내던 주주총회도 임원 인사가 이뤄지지 못해 3월로 연기해 놓고 특검 상황에 따라 임기가 끝난 등기 임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최소한의 인사이동을 준비하고 있다.2월 들어 삼성전자의 경쟁자인 일본의 도시바와 소니가 삼성 견제의 움직임을 보이자 삼성의 경영 차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도시바는 내년까지 일본 이와테 현과 미에 현에 낸드플래시 공장 2곳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신규 라인 증설에 들어갈 투자 금액은 1조8000억 엔(약 15조7723억 원)이다. 도시바는 당초 1조4000억 엔을 투자할 예정이었으나 차세대 DVD 사업을 접기로 하면서 낸드플래시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 4개인 양산 라인을 내년까지 6개로, 양산 규모도 월 20만 장(300mm 웨이퍼 기준)에서 월 80만 장으로 늘린다.업계에서는 이 같은 투자 계획대로라면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도시바의 순위가 뒤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의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1998년 낸드플래시 사업에 뛰어든 삼성에 3년 만에 1위 자리를 내주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아직은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을 7개로 유지하고 있지만 신규 투자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 도시바의 거센 도전에 당혹해 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의 성패는 물량과 타이밍에서 결정될 정도로 기술뿐 아니라 전략의 싸움이다. 삼성전자는 2월 기업설명회(IR)에서 전체 메모리 반도체 증설 투자에 7조 원을 투입할 예정이라는 잠정 발표만 해놓고 있는 상태다.소니가 삼성과의 협력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소식도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삼성전자와 소니는 2003년 공동으로 2조 원을 출자해 충청남도 탕정에 합작회사인 ‘S-LCD’를 설립했다. 생산량의 절반은 일본 소니가, 절반은 삼성전자가 사 가며 4년 넘게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S-LCD에는 이재용 전무도 등기이사로 참여하고 있다.소니는 차세대 LCD를 일본 업체 샤프로부터 장기간 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 측은 삼성이 공급하는 패널로는 추후 TV 생산량을 맞출 수 없어 거래처를 다변화하는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로서는 안정적인 대량 구매처 역할을 해 왔던 소니가 이탈하면 그에 상응하는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삼성전자 측은 “당장은 LCD 수요가 많아 걱정이 덜 하지만 2~3년 뒤가 문제”라고 얘기하고 있다.기술 격차가 비슷비슷한 정보기술(IT) 산업에서 한순간의 방심은 순식간의 추락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최근 모토로라가 휴대전화 사업부를 매각하기로 한 것은 1~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삼성전자 측은 “검찰 조사가 시작된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좋았던 것은 그전 주문 물량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올해부터 검찰 조사 여파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레 얘기하고 있다. 삼성 지배 구조와 경영권 승계, 비자금 문제 등을 매듭짓는 것과 별개로 경쟁자들은 삼성의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그룹의 경영 차질은 해외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삼성그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된 이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이를 연일 보도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고 경쟁 업체들은 이를 전파하면서 삼성 견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십수년간 힘들여 쌓아 온 브랜드 이미지가 순식간에 부도덕한 이미지로 덧칠되는 데 대한 타격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한 해외법인 임원은 “해외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도인데, 거래처들이 이를 물고 늘어져 가격이나 물량 등의 협상에서 까다롭게 굴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고 있다.올해 삼성그룹은 모든 공식 일정이 올스톱된 상태다. 지난해 삼성그룹은 11월 19일 창업주 이병철 회장 20주기를 맞아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계획하고 자서전을 발간할 예정이었지만 이 회장도 참석하지 못한 채 간소하게 끝냈다. 또 매년 1월 첫 근무일 신라호텔에서 임직원 1000명이 모여 치르던 신년 하례식도 생략하고 계열사별로 단출하게 치렀다.이 회장의 생일인 1월 9일 매년 해오던 ‘자랑스러운 삼성인상’도 회장이 불참한 채 늘 해 오던 호암아트홀이 아닌 삼성 본관 28층 대회의실에서 수상 임직원만 불러 조용히 치렀다. 3월에는 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일이 있지만 아직 아무런 계획이 잡혀 있지 않다.기념행사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경영 활동도 위축을 받고 있다.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삼성그룹은 아직 그룹 차원의 신년 사업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계열사별로 세워진 잠정 사업 계획을 진행하기로 한 상황이다.삼성 측은 “그룹 차원의 최종 사업 계획이 확정되려면 사장단 인사가 단행되고 새로 취임한 계열사 사장들이 신년 사업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는 사장단 인사가 늦어지면서 그룹 차원의 새해 사업 계획도 확정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그룹 차원의 사업, 투자, 고용 계획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삼성 본관이 압수수색을 당한 1월 15일 주우식 삼성전자 IR 담당 부사장은 “해외 투자자들이 올해 투자 계획을 묻지만 결정된 것이 없어 대답을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이나 구미의 경쟁사들보다 한 발 앞서는 공격적 투자 결정을 내림으로써 시장 우위를 점해 온 삼성전자의 노하우가 빛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최근 삼성그룹 내에서는 ‘구두(口頭) 경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웬만한 지시나 보고는 말로서만 전달하고 문서로 남기지 않는 것이다. 특검의 압수수색 여파 때문에 생긴 진풍경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거대 기업의 면모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우스우면서도 서글픔을 자아낸다. 국민들은 삼성그룹의 이 같은 시련을 통해 삼성그룹이 보다 투명하고 경쟁력 있는 국민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원하고 있다.취재 = 우종국·김상헌 기자특별기고 = 장경천 중앙대 상경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