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대해부 - 재무설계

대전에 거주하는 A 씨는 제법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관리했다. 생활비는 넉넉한 편이어서 A 씨의 아내는 백화점 교양 강좌를 하루에 몇 개씩 들으며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남편이 돈이 없다며 생활비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아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사는 예전과 다름없이 잘 되고 있는데 돈이 없다는 남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부부는 재무 설계사를 찾았다. 문제의 원인은 남편의 과도한 ‘빚’이었다. 남편은 담보대출은 물론 약관대출까지 약 2억 원의 대출을 안고 있었고 그 규모는 매년 조금씩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남편조차 어디에 얼마의 빚이 있고 매달 나가는 이자의 액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재무 설계사는 집을 팔고 대출부터 갚을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하면 저축도 가능한 수입이었다.“살면서 하지 않으면 후회하는 일이 3가지가 있습니다. 건강을 지키는 것과 효도, 그리고 재무 설계가 그것입니다.”하창룡 포도에셋 강남지점장은 재무 설계를 꼭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입이 많든 적든, 여자든 남자든, 젊든 나이가 들었든 꼭 한 번은 재무 설계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 지점장은 실제로 재무 설계를 받은 대부분이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재무 설계는 낯선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에 이미 원시적인 형태의 재무 설계가 있었다고 하지만 본격화된 것은 2004년 무렵의 일이다. 전문 기업도 손에 꼽는다. 보험 판매사들이 재무 설계 서비스를 한다고 하지만 판촉의 일환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 순수한 재무 설계로 보기 어렵다. 순수한 재무 설계사는 포도에셋, 머니트리, 파이낸피아, 희망재무설계, 한국재무설계 등 10개 내외에 그친다.재무 설계사는 그러면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가계의 재무 상태를 점검해 주고 가계의 특성에 따라 지출 구조를 재구성하는 일을 한다. 흔히 재무 설계를 돈이 어지간히 많은 자산가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오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오히려 돈이 없고 생활이 빠듯해서 노후가 걱정될수록 재무 설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 설계는 자산가들을 위한 투자 설계가 아니라 한정된 수입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 전 생애에 걸쳐 재무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머니트리의 한만형 CFP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주택 마련이나 자녀 교육 등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다 보니 장기적인 시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무적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당장의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인 재무 설계를 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재무 설계의 가장 큰 효과는 소비와 지출에 대한 습관을 개선해 자산 증식과 리스크대비의 효과를 최대화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재무 설계사는 고객의 수입과 지출 패턴을 세세하게 파악한다. 술술 새는 지출을 잡고 이를 투자로 연결시킨다. 또 상황과 연령, 수입, 재무 목적에 적절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준다. 가령 주택 대출이 지나치게 많은 등 자산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면 투자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상담을 마치고 나면 이런 제반 사항을 담은 보고서가 나오는데 그 분량이 적게는 20쪽에서 많게는 100쪽이 넘기도 한다.재무 설계사의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장기간 이 설계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재무 설계를 업데이트한다. 시간이 흐르면 수입 규모나 재무 목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설계를 조정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재무 설계사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맞는 지적이다. 재무 설계사가 아무리 팔방미인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전문적인 상담이 요구될 때가 비일비재하다. 이때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직접 상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다.재무 설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수적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신의 재정 상태 중 일부를 숨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상담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상담 중에 서로의 살림살이가 들통 나면 부부싸움을 벌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재무 설계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수수료가 비쌀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비용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대개 15만~20만 원 정도만 지불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근무시간 외 상담이나 출장을 요구할 경우엔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비용은 몇 만 원선에 그친다.하는 일이 많은 만큼 재무 설계사들이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상담 건수는 제한적이게 마련이다. 제대로 하려면 10건 이상을 하기 어렵다. 그 이상이 되면 상담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그렇다면 재무 상담사는 얼마나 벌까. 수수료만 따지면 결코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하지만 수수료 수입은 전체 수입의 10~30%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의 주수입원은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다. 고객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뒤 펀드, 보험, 예금 등 적당한 금융 상품을 추천하는데 만약 고객이 이를 구매하면 이에 따른 수수료를 받게 된다.보험 설계사처럼 수입이 철저하게 능력과 실적에 비례하기 때문에 재무 설계사들의 수입은 격차가 크다. 실적이 좋은 경우엔 연간 수억 원의 소득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을 빨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설계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첫손에 꼽히는 전략은 ‘이름 알리기’다. 방송이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거나 책을 집필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인터넷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자주 활용된다.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최근에는 기업과 관공서 등 법인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저변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입사원을 위한 재무 설계나 은퇴자를 위한 재테크 강연회 등 다양한 형식의 설명회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고객층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들이 무료 재무 설계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저변이 더욱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고객층이 서민층에서 중산층으로, 젊은층에서 연장자층으로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는 얘기다.재무 설계사가 유망 직업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재무 설계사를 지원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관계자들은 아무래도 금융권 출신이나 기업의 재무 회계 담당자들이 재무 설계사가 되기 유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자질이 있다면 경험이 없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 지점장은 ‘이타심’을 최고의 자질로 여긴다. 고객의 문제를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마음이 재무 설계사에게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재무 설계사가 되는 첩경은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나 한국재무설계사(AFPK)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강조한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