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때로는 환경에 적응하는 느린 걸음으로, 때로는 주어진 조건을 훌쩍 뛰어넘는 도약으로 쉼 없는 성장을 꿈꾼다. 이는 해마다 재계의 지형도가 끊임없이 달라지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어제의 1등이 내일도 1등일 수는 없다. 2008년에도 수많은 재계의 ‘새 별’이 뜨고 수많은 별이 질 것이다. 그 운명을 결정지을 빅 이슈들은 무엇일까.먼저 인수·합병(M&A) 경쟁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불붙은 M&A 경쟁은 올해 한층 뜨겁게 타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유진그룹은 대우건설 인수에 좌절한 뒤 절치부심 끝에 ‘덩치’가 훨씬 큰 매출 2조 원대의 하이마트를 사들이는데 성공해 30대 그룹 진입에 성큼 다가섰다. 두산인프라코어(밥캣), STX그룹(야커야즈), SK텔레콤(하나로텔레콤)도 만만치 않은 M&A 파워를 과시했다. 올해 M&A 시장에는 눈길을 끄는 ‘대어’들이 유난히 많다. 대한통운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하나같이 탐내는 기업들이 많다.일찌감치 예고된 새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도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은 금산 분리 정책의 폐지와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폐지다. 재계가 오래전부터 결단을 요구해 온 것들이다. 실제 이들 정책이 폐지될지 여부는 물론 구체적인 폐지 형태와 폐지 후 영향까지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초특급 관심사다. 지난해 재계의 폭넓은 공감을 얻은 창조 경영은 올해도 살아있는 화두다. 선진 기술 강국과 맹추격하는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창조 경영은 곧 미래 창조와 통한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전 지구적 화두가 되면서 친환경 경영은 이제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 됐다. 여기에 더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와 이에 따른 탄소 배출권 확보도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올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원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전방위적으로 추진되는 FTA를 활용하는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이 필요해졌다.올 M&A 경쟁의 1라운드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말 매각 절차가 시작된 국내 1위 물류 업체 대한통운을 사겠다고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기업들의 명단은 최근 재계의 심상치 않은 M&A 열기를 잘 보여준다. 한진 금호아시아나 CJ STX 농협 GS 현대중공업 LS전선 효성 등 무려 10여 곳에 달하는 기업이 대한통운을 탐내고 있다. 매각 주간사의 실사 평가 자료를 열람한 후 오는 16일까지 실제 인수전 참여 여부를 결정하게 되지만 올 M&A 시장의 ‘다크호스’들이 망라돼 있는 느낌이다.육해공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물류 기업인 한진과 금호아시아나는 일찌감치 대한통운 인수에 뛰어든 곳이다. 만만치 않은 물류망을 갖춘 CJ와 벌크선 분야의 강자라는 점을 살려 육상 네트워크와 해상 네트워크의 접목을 꾀하는 STX는 대한통운을 세계적인 물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이다. 농협 역시 대한통운을 대한민국 농산물 유통 혁명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GS와 현대중공업은 올 M&A 시장의 핵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수년간 실탄을 쌓아 놓고도 마땅한 매물이 없어 고심했던 GS는 2010년 재계 5위 진입을 목표로 ‘동시다발적인 M&A’에 뛰어들었다. 대한통운은 물론 GS칼텍스를 통해 현대오일뱅크 인수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올 M&A 시장의 ‘대어’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 인수도 고려하고 있다. 그동안 업종 전문화에 치중해 온 현대중공업도 대한통운 인수의향서 제출을 계기로 M&A 출사표를 던졌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세계 조선 시장의 호황을 타고 쌓아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 매각 작업에도 열쇠를 쥐고 있다. 이 회사 2대주주로 우선 매수 선택권을 갖고 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때가 묻은 회사인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인수 후보로도 거론된다.올해 새 주인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 현대오일뱅크 쌍용건설 등의 공식 매각 절차가 시작되면 M&A 열기는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3년 만에 M&A에 나선 삼성전자의 행보도 관심거리다.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재계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미 이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수차례 말했기 때문이다. 기업 투자 활성화가 경제 활성화의 기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기업집단 규제인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는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의 금융자본 소유를 제한하고 있는 금산 분리 정책도 완화되고 법인세율은 현재 25% 수준에서 20%까지 인하될 것으로 예상된다.법인세가 5% 인하되면 수익률이 5% 오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제조업에서 매출 대비 수익률 10%를 넘기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기업들 입장에서는 반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새 정부는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분을 재투자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할 계획이다.대기업들은 출총제 폐지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7개 대기업 집단, 27개 기업에 출총제가 적용되고 있어 주요 그룹의 투자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미 2007년 개정 시행령으로 LG 금호아시아나 한화 두산이 출총제 적용에서 벗어난 바 있지만 아직 출총제 제한을 받고 있는 삼성(9-괄호 안은 제한받는 계열사 수) 현대자동차(5) SK(3) 롯데(4) GS(1) 한진(2) 현대중공업(3)은 새 정부 출범으로 출총제 제한에서 벗어날 기대를 할 수 있게 됐다.금산 분리 완화로 대기업의 금융자본 소유가 가능해지면 금융계에도 또 한 번 회오리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은행들의 증권사 인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거꾸로 증권사를 가진 대기업들이 은행을 인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각 기업들마다 새로운 경영 철학 수립이 한창이다. 삼성의 창조 경영을 비롯해 LG의 고객가치 경영, SK의 행복 경영, 현대자동차의 품질 경영이 그것이다. 창조 경영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2006년 하반기부터 언급하기 시작하고 2007년 신년사를 통해 그룹의 공식 경영 비전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에도 이를 계승한 창조 경영론이 더 발전될 예정이다. 이 회장이 창조 경영을 피력한 이유는 삼성이 선두 기업이 된 현재 더 이상 글로벌 기업을 벤치마킹해 성장할 수 없으며, 앞으로는 선두그룹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로 지난 10년 동안의 호황기를 누린 삼성그룹은 아직 향후 10년 동안의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중이다.LG그룹의 고객가치 경영은 ‘제품·서비스의 기획에서부터 개발·생산·판매에 이르기까지 가치 창출의 주요 활동들이 철저하게 고객 관점에서 이뤄지는 경영’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던 과거에는 상품을 생산만 하면 팔 수 있었으므로 고객 경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기업의 깊은 관심과 노력이 집중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량생산 체제가 가져온 공급 과잉은 시장의 경쟁을 격화시켰고 시장의 힘이 다양성을 추구하고 차별화된 제품을 원하는 고객 쪽으로 옮겨가게 됐기 때문이라고 LG 측은 설명한다. 구본무 회장은 해외 현장 방문 때마다 “단순한 고객 만족 수준이 아니라 고객의 기대까지도 뛰어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며 ‘고객가치’를 강조했다.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현대자동차의 비약적인 품질의 상승에는 정몽구 회장의 ‘품질 경영’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싸구려 자동차의 대명사로 취급받던 현대차가 최근 몇 년간 각종 시장조사 기관의 품질조사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04년부터는 초기 품질이 크게 향상되면서 4년이 지난 올해는 내구성 품질 향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초기 품질은 도요타 등의 경쟁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중고차 가격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내구성 품질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2008년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 세계 명차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도록 품질 경영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그 어느 기업보다 사회 공헌에 열심인 SK그룹은 아예 ‘행복 경영’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있다. 특히 2007년부터는 행복일자리 찾기 캠페인을 통해 △행복 도시락 사업 △자동차 경정비 기술 교육 △장애 학생 통합 교육 보조원 파견 △저소득층 보육 시설 지원 △무료 IT 교육센터 등의 사업을 강화하기로 하고 총 200억 원을 투입했다. 이와 더불어 2008년에는 글로벌 경영에 만전을 기할 생각이다. 이동통신과 에너지 사업의 양대 캐시카우가 내수 사업 위주인 것에서 벗어나 수출 비중 5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한화그룹 또한 글로벌 경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현재 매출의 10% 수준인 수출 비중을 2011년까지 4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화약 석유화학 유통 레저 금융 등 다양한 업종이 대부분 내수 산업이라 성장에 한계가 있고 글로벌 경쟁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다른 대기업들의 경우도 거창하게 ‘창조 경영’ ‘글로벌 경영’을 외치지는 않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창조 경영, 고객가치 중심 경영, 글로벌 경영, 행복 경영에 만전을 가하고 있다.탄소 배출권이 새로운 기업의 경영 화두로 제시되면서 친환경 경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제조업을 하는 이상 오염물질 저감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탄소 배출권이 점차 확대되면서 ‘친환경=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LG그룹이다. 환경 경영에 대한 높은 관심과 투자를 통해 국제적 환경 규제 강화에 적극 대응하고 각 계열사별 특성에 맞는 환경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친환경 제품 및 기술 개발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LG전자는 2005년 업계 최초로 유해물질 제로(0)를 선언하면서 유럽연합의 유해물질 사용 금지에 관한 지침(RoHS)에 대한 준비를 완료했다. LG화학은 본사 환경안전팀 내에 기후변화협약 대응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이산화탄소 저발생 생산체제 구축, 청정 개발 체제 활용 및 배출권 거래 연구 등의 전략을 수립 중이다.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수익 사업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현대자동차는 친환경 자동차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친환경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수입국들의 환경 기준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젤 차량의 배출 가스 허용 기준도 점차 높아지는데다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의 보급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09년부터 하이브리드 차량의 양산을 시작해 합리적인 가격에 보급할 예정이다. 이 차량에 납품되는 리튬 폴리머 전지는 LG화학에서 납품하는 것으로 LG와 현대자동차가 국내에서는 친환경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다. 자동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불리는 미국 시장인데다 관세 폭이 전자제품에 비해 크기 때문에 FTA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자동차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에 비해 불리한 조건을 감수했다. 현재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승용차의 경우)에 대해 2.5%의 관세를, 한국은 미국 자동차에 8%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관세가 철폐되면 한국의 자동차보다 미국 자동차의 가격 인하 폭이 훨씬 커진다. 그러나 우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도 가격 인하 효과가 있어서 일본 차보다 싸져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우려되는 것은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일본 업체의 차량이 국내로 쏟아 들어 올 경우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싸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서 들여 올 때보다 물류비용이 차량 가격의 1~2%가 더 들지만 이를 감안해도 가격 인하폭이 6%가량 되기 때문이다.삼성 LG SK 두산 한화 등 미국 시장의 비중이 크지 않은 기업들은 아직 한·미 FTA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이나 비전을 내놓지 않고 있다.취재=장승규·우종국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