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건강이 먼저.”지난주(3~7일) 재정경제부 관료들과의 점심 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의 화두는 단연 ‘건강관리’였다. 11월 30일 고(故) 강권석 기업은행장이 한창 일할 나이인 57세로 운명을 달리한 때문이다. 강 행장은 편도 종양을 지병으로 갖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뒷전에 미뤄둔 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다가 끝내 화를 입었다. 이미 올 여름 부쩍 수척해진 강 행장의 얼굴을 본 많은 이들이 ‘좀 쉬어가며 하시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조찬회의 접견 출장 등 원래 계획한 스케줄을 빠짐없이 소화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한국경제신문이 서울대병원 강남검진센터와 함께 최고경영자(CEO)들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분야 CEO들은 전체 업종 가운데 가장 적은 음주량(평균보다 46% 적음)을 나타내고도 지방간(간에서 차지하는 지방의 비중이 5% 이상) 유병률 순위에서는 상위권을 차지했다. 금융계 종사자들은 “강 행장 역시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병을 키웠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일과 스트레스가 많기로 치면 중앙부처 공무원들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재경부 관료들이다. 그래서 강 행장의 별세 소식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특히 그를 잘 아는 옛 재무부 출신 고위 관료들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임영록 재경부 2차관은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차라리 지난 3월 행장 선임에서 탈락했더라면 건강을 돌보는데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1973년 연세대를 졸업한 강 행장은 같은 해 행정고시(14회)에 합격한 뒤 재무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옛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이재국 증권국 보험국 등을 두루 거쳤고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을 지낸 정통 금융 관료다. 2004년 3월 기업은행장에 선임된 뒤 이 은행의 자산을 100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이 같은 경영 수완을 인정받아 올 3월 기업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했다.승승장구하던 그의 갑작스런 부고를 접한 재경부와 금감위 전·현직 관료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아쉬움에 고개를 숙였고 일부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행시 동기인 유지창 은행연합회장과 신동규 전 수출입은행장은 사흘째 자리를 뜨지 못했고, 권오규 부총리를 비롯해 재경부 김석동 1차관, 임영록 2차관, 김용덕 금감위원장,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 등도 오랜 시간 빈소에 머물렀다.한편 재경부 직원들은 두 명 이상이 모이기만 하면 “자네는 요즘 운동은 어떻게 하나” “지난번 건강검진 결과는 어땠어” 등의 얘기를 나누며 서로 건강을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강 행장의 지병이 음주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천 관가의 송년회 문화까지 바뀌고 있을 정도다. 재경부 A국장은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자제하자’며 폭탄주를 돌리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술 실력으로 유명했던 전·현직 관료들의 금주 소식이 뒤늦게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재경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석양주(해질 무렵 만나 마시는 술)’로 유명한 이헌재 전 부총리가 올해 초부터 술을 거의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는 후문이다.점심부터 폭탄주를 건네는 것으로 알려진 ‘두주불사’ 유지창 은행연합회장 역시 술을 자제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저녁 약속도 있고 공식 자리가 많아 술을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하지 않는다”며 “두 달 전 건강검진 결과 간 수치가 높게 나와 술을 자제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들었다”고 말했다. 현직 수장인 권 부총리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시절부터 술을 끊었다. 육동한 비서실장은 “예전에는 폭탄주를 꽤 드시는 편이었는데 업무 부담이 늘면서 술과 골프를 그만뒀다”며 “부총리는 많으면 하루에 5차례까지 회의를 하는 날도 있는데 과음까지 더해지면 버텨내기 힘든 자리”라고 설명했다. 담배는 원래 피우지 않는 권 부총리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물론 꾸준히 아침 산행도 하면서 건강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