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上海) 시내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면 어디가 끝인지 모를 만큼 거대한 공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국 철강 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바오산(寶山)강철이다. 공장 부지 면적만 25㎢로 여의도(8.4㎢)의 3배나 되는 ‘바오강(寶鋼·바오산강철의 약칭)’은 마치 그 자체가 거대한 공업단지처럼 느껴진다. 중국의 대표적 국영기업이자 중국 경제 발전의 뼈대를 만드는 바오강은 그 존재 자체가 중국의 파워를 실감나게 만들고 있다.섭씨 1100도가 넘는 슬래브의 두께를 10분의 1로 눌러 각종 철강재를 만드는 압연공장. 공장은 쉴 새 없이 판재를 쏟아내고 있었다. 바오강은 중국 자동차 업체의 철강재 수요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의 지주와 같은 곳이다. 올 들어 자동차 생산이 급증하면서 이 회사의 공장에서 휴일이라는 말은 사라졌다.바오강은 1978년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바오산강철이란 이름으로 중국의 첫 일관제철소로 간판을 내건 이 회사는 지난 1985년 첫 출선을 했다. 국영기업인 데다 당시로서는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출발했지만 고철이나 생산하는 형편없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바오강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형화에 성공한 덕분이다. 바오강은 지난 1998년 상하이 야금국산하의 상하이 1강철과 2강철, 5강철, 상하이푸둥강철, 메이산강철을 합병했다. 덕분에 조강 생산 규모 1515톤의 세계적 규모를 갖추게 됐다. 초창기 200톤 안팎의 조강 능력밖에 없던 어설픈 바오강은 없어지고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형 업체로 재탄생한 셈이다. 바오강은 이와 함께 포스코에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 초창기 포스코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바오강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바오강은 이후에도 계속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며 2253만 톤의 조강 능력을 보유한 세계 5위의 철강 회사로 자리 매김했다.바오강이 세계적 기업이 된 것은 단순하게 덩치 불리기만을 통한 것은 아니다.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고객 일체화 사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른바 ‘Only One, Number One 제품(전략제품) 판매’ 전략이다. 즉, 바오산강철만 만들 수 있는 최고급 제품 판매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현재 바오강이 중국 내 1위를 점유하고 있는 제품으로는 냉연 자동차 강판과 가전용 강판이 있다.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51.7%와 36.8%다. 석도강판과 파이프용 강판 등은 21.3%와 28.8%를 차지했다. 또한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은 국내 2위를 고수하고 있다. 열연 중에는 광폭후판 판매가 111만 톤을, 특히 조선용 강판 판매는 58만7000톤으로 국내 시장점유율 9.7%를 기록한 바 있다. 고부가가치 전략제품의 판매량이 866만 톤에 달해 목표치인 786만 톤을 넘어섰다. 바오강의 2006년 수출량은 298만 톤(판매량의 14%), 수출액은 20억 달러였다. 연구개발(R&D) 자금은 매출액의 0.9%에 달하는 13억9000만 위안으로 656건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7년에는 R&D 투자액을 매출액의 1%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이는 지난 2003년 이후 자동차 가전 조선 등의 주요 수요 산업에서 중국 내 1위 업체와 지속적인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게 바탕이 됐다. 중국 3대 자동차 메이커인 디이자동차(第一기차), 상하이자동차, 둥펑(東風)자동차와 전사적 협력을 위한 협정을 맺었다. 2004년에는 가전업체인 커리전기 및 하이얼, 해운 업체인 중선집단, 석유화학 업체인 중국석화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그 다음해인 2005년에는 조선 업체인 상하이외고교의 지분 18%를 인수, 2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며 바오강과 상하이외고교 간의 긴밀한 협조 체제를 다지고 있다.바오강은 이로써 회사 창립 때 중앙정부가 부여한 사명인 수입산 대체를 완수해 왔으며 향후에도 전략제품 판매 확대를 통해 이들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제고할 방침이다. 2003년에 바오강은 2009년 조강 3000만 톤, 매출액 1000억 위안의 ‘2004~09년 발전계획’을 공표했지만 그러나 불과 3년 만에 매출액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자동차·선박·석유파이프용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고, 발전기 모터에 들어가는 강판 등 정밀제품 생산 라인 확충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2012년 5000만 톤 규모를 목표로 하는 바오강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바오강은 올해 중요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중국 철강 산업을 대표하던 셰치화 회장이 물러나고 48세의 쉬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 셰치화에서 쉬러장으로 바통이 넘어간 것은 바오강이 중국 내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셰치화는 중국 철강 산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그녀는 중국 이공계의 최고 명문인 칭화대 토목공학부 출신이다. 1978년 바오강의 창립 멤버로 입사한 그녀는 공정관리부장과 경영 기획부장을 거치며 바오강의 설비 증산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녀는 1994년 바오강 사장으로 승진했고 2002년에는 회장에 올랐다.그녀는 지난 2002년에 발생한 세계 철강 무역 전쟁에서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회장직에 발탁됐다. 당시 전 세계 철강 업계는 철강 공급 과잉으로 인한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철강 수요는 8억3500만 톤 정도인데 공급은 10억6000만 톤이나 됐다. 20% 이상이 공급 과잉이었던 셈이다. 공급 과잉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는 모두 도산했는데 대부분은 미국의 철강 회사들이었다. 2001년에 미국에서는 베들레헴 스틸을 비롯, 총 18개 회사가 파산했다. 미국이 자국의 철강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철강 수입을 통제하자 세계 메이저 철강 회사들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품질 좋은 외국제 철강이 중국에 유입되자 중국의 철강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때 셰치화는 중국 정부에 세이프가드를 요청해 외국으로부터의 철강 수입을 막았다. 바오강을 살려낸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강철 같은 논리를 숨기고 있다고 해서 철의 낭자로 불렸다. 그러나 셰치화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젊은 피의 수혈이 필요했다. 그가 48세의 쉬러장 회장이다. 쉬 회장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82년 입사, 줄곧 바오강에서 일해 온 ‘철강 맨’이다. 바오강의 밑바닥 근로자에서 시작해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 경력의 소유자다. 쉬 회장의 경영 철학은 ‘자주적 기술창조’다. 그는 기술 혁신을 통해 수년 내 일본과 한국의 철강 기술을 따라잡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는 최근 열린 한 세미나에서 “바오강이 해외 선진 업체의 기술을 베끼는 시기는 지났다”며 “이제는 세계 철강 업계를 주도할 수 있는 기술을 창조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점으로 미뤄 볼 때 쉬 회장은 규모 확대에 치중해 온 전임 셰 회장과는 달리 기술 혁신에 보다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쉬 회장의 ‘기술 드라이브’ 정책은 많은 성과를 낳고 있다. 그는 바오강그룹에 설치된 과학기술위원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739개의 기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104종의 신제품을 개발했다. 모두 11억3000만 위안(1위안=약 120원)의 기술 개발 효과를 얻기도 했다. 그가 직접 쓴 ‘바오강의 생산 신기술’이라는 책은 철강 기술의 교본으로 쓰이고 있다.쉬 회장은 취임 후 글로벌 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아르셀로미탈, 신일본제철, 바오산강철 등 세계적인 철강 기업 3사는 최근 중국 합작사를 통해 자동차용 강판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새 공장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중국 수출 물량을 위해 자동차용 고급 아연합금 강판을 생산할 계획이다. 합작기업의 지분은 바오강이 50%, 일본 신일본제철 38%, 세계 최대 철강사 아르셀로미탈 12% 순이다.이 회사는 오는 2009년까지 합작사의 생산 능력을 연간 100만 톤 이상으로 갑절로 늘리기 위해 약 15억~200억 엔을 투자할 예정이다. 완공되면 중국 최대 자동차용 강판 공장이 된다.바오강은 또 세계 최대 철광석 개발 업체인 브라질의 발레 도 리오 도세(CVRD)와 합작으로 55억 달러를 투입, 브라질에 연산 1000만 톤 규모의 대형 종합 제철소를 세우기로 했다. 이 제철소가 완공되면 현재 세계 철강 업계 5위인 바오스틸은 신일본제철 JFE 포스코 등을 단숨에 제치고 유럽의 미탈 스틸에 이어 세계 2위 철강 업체로 도약할 전망이다. 이 제철소는 1기 공정이 마무리되는 2011년까지 35억 달러가 투입돼 연간 500만 톤의 철강 제품을 생산해 대부분을 수출할 예정이며, 이후 2기 공정을 통해 생산 능력을 연산 1000만 톤으로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쉬 회장은 “바오스틸 CSV의 출범은 양측의 장기적인 발전은 물론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CVRD의 로저 아그넬리 회장도 “바오스틸과 CVRD의 합작은 전략적인 의의가 크다”면서 “양측의 강력한 연대로 출범하는 합작사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강한 업체의 하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사실 바오강은 이미 철강 회사로서 글로벌 톱 수준에 올라섰다. 올해 세계 철강사의 경쟁력 순위에서 바오강은 세베스탈과 포스코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확장 능력과 시장 제휴와 인수·합병(M&A) 면에서 만점을 받았다. 기술 혁신, 환경 및 안전, 가격 교섭력, 비용 절감 노력, 노동 비용, 숙련노동자 등의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바오강은 오는 2010년에 세계 3위 수준의 종합 경쟁력을 가진 회사로 거듭난다는 방침이다. 현재 중국과 해외에서 추진하는 M&A를 고려하면 이 같은 계획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바오강이 원자재를 들여오는 데 쓰는 양쯔강(長江) 부두는 너무 크고 방대해서 어디가 끝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 부두에서는 연간 철광석·석탄 등 원료 3400만 톤을 처리한다. 바다에서 20㎞ 떨어져 있지만 이 부두는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바오강은 중국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직장이다. 바오강 근로자 평균 연봉은 9만 위안 정도로, 상하이 근로자 평균(3만 위안)의 3배 수준이다. 전체 직원의 60%가 대졸 이상 학력이고, 평균 나이는 38세다. 젊은 바오강이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첨단 기술과 글로벌화로 무장, 세계 철강 업계의 무서운 아이로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합병 통해 초대형 철강회사 육성중국의 철강 산업 정책의 핵심은 1000개가 넘는 철강 회사의 합병이다. 작은 회사들을 묶어 연산 3000만 톤 규모의 대형 철강 회사를 집중적으로 키우겠다는 것. 이는 과잉 투자와 공급 과잉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는 동시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형 철강 회사를 설립, 글로벌 경쟁에 본격 뛰어들겠다는 뜻이다.철강 산업은 지난 2002년 이후 고속 확장기에 진입, 생산 능력이 매년 5000만~7000만 톤 증가해 작년 말 기준으로 생산 능력이 4억9000만 톤으로 늘어났다. 올 한 해 동안에만 생산 능력이 6000만 톤이나 증가해 올해 말까지 중국의 전체 철강 생산 능력은 5억40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생산량 1000만 톤 이상 기업은 안본 바오강 신탕강 우강 마강 사강 서우강 지난강티에 차이강 화링그룹 등 10개사에 이른다. 이들 10개 기업의 생산 능력만 해도 1억4200만 톤을 넘어섰다. 중국 내 철강 총 생산 능력의 32%에 달하는 규모다. 생산 능력 500만~1000만 톤급의 기업으로는 한탄강철 파오터우강철 안양강철 등 15개 기업이 있다. 이들 15개 기업은 1억 톤의 조강 능력과 9200만 톤의 생산 능력을 보유, 중국 내 강철 총 생산 능력의 20%를 차지하고 있다.중국 상하이 = 조주현·한국경제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