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서 '지후니 작은섬' 운영 ㆍㆍㆍ'감성 자극' 노래로 발길 잡아

통기타와 와인,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조합이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 있다. 7080세대의 20대 시절을 낭만으로 장식했던 추억의 노래와 그 노래처럼 세월을 머금고 농익은 와인. 거나하게 취하도록 마시는 술보다 세월의 깊이를 음미하며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7080세대에게 와인은 딱 그만큼의 향과 풍미를 제공한다. 요즘 와인이 뜨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조급하거나 가볍지 않다는 것. 그것은 세월을 건너는 동안, 그 시간이 주는 여유를 감미롭게 받아들일 줄 아는 공존과 기다림의 미학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가수 임지훈도 그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왁자지껄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기보다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노래를 읊조리는 팬들이 더 많은 가수다.주택가였던 홍대 앞 골목을 보면 최근 들어 하나둘 개성 넘치는 카페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확 바뀐 곳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지후니 작은섬’이라는 간판은 정말로 바다 위의 작은 섬과 같다. 무얼 하는 곳인지, 누구의 섬이라는 것인지 간판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일대의 다른 간판과는 차별화된 사소한 매력이 있다. 어쩐지 그의 노래와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 작은 섬에 가면 동글동글하고 따스한 웃음이 좋은,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가 더없이 매력적인 가수 임지훈을 만날 수 있다. 한 달 남짓 전에 통기타 노래가 있는 와인바를 연 그는 여느 때보다 여유롭고 행복한 표정이다.“가수라면 누구나 갖는 꿈일 거예요. 자신의 공간, 자기 노래를 언제고 마음껏 부를 수 있는 공간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행복해지지요. 이제 제가 가진 꿈을 이곳에서 하나 둘 펼쳐 보일 계획입니다.”카페를 준비하면서 몇 달간 방배동 서래마을, 청담동, 홍대앞 등 요즘 뜬다는 카페와 바가 밀집돼 있는 지역은 모조리 뒤졌다. 그런 다음 을지로, 논현동, 동대문, 고속터미널 등 자재 골목과 인테리어 가게를 돌며 직접 인테리어를 구상하고 자재를 구입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지후니 작은섬’에 들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곳은 다른 바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다. 신축 건물 3층의 탁 트인 공간은 두 면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는 데다 한쪽 면은 아예 테라스로 열려 있어 고급스러운 카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실내 곳곳에는 유러피언 스타일의 가로등과 고풍스러운 가구가 어우러져 있어 테라스 안쪽이면서도 테라스 바깥의 거리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가로등 불빛 아래 와인 잔을 기울이는 듯한, 마치 고흐의 그림 ‘밤의 테라스 카페’를 살짝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 놓지 않고 어느 정도 서로 여유를 두어 편안한 대화를 나누기에도 적절하다. 또 입구 쪽 벽면에는 임지훈의 팬이 선물했다는 커다란 바다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앞에 작은 통기타 무대가 마련돼 있다.매일 저녁 10시쯤이면 그 작은 무대 위에서 임지훈의 공연이 열린다. 활짝 열린 테라스 창문 너머로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길을 지나던 이들도 하나둘씩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아직 그의 카페 오픈 소식을 모르는 이들이 더 많기에 그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인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끔은 임지훈의 선후배 가수들이 그를 만나러 들렀다가 즉석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얼마 전 가수 최백호 씨의 즉석 공연 때는 바를 찾은 손님들뿐만 아니라 건물 아래로 지나던 사람들까지 웅성이며 자리를 뜨지 않았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가수들에게도, 손님들에게도 열린 공간인 것이다. 임지훈에게는 이런 즉흥성마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짜여진 공연, 연습한 대로의 레퍼토리보다는 이쪽이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다.와인 또한 4만~20만 원까지, 대중적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종류로만 60여 종을 갖춰 놓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캘리포니아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원산지는 다르지만 각각의 개성을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와인들이다. 지나치게 비싸거나 격을 따져야 하는 고급 와인은 와인을 편안하게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부담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단지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와인과 더불어 시간을 즐기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의 마음이기도 하다.처음 와인을 접했을 때, 몸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이 주는 외면할 수 없는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고 한다. 천천히 조금씩 다가갈수록 깊고 넓은 와인의 세계가 끝도 없이 펼쳐졌단다. 하나하나에 담긴 햇살과 비의 양, 그 와인을 만든 사람의 마음, 오래 묵은 창고에서 밴 짙은 냄새까지도 그에게는 느끼고 공부해야 할 대상이었다. 바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이 그에게는 좋아하는 와인을 좀 더 가까이 접하며 공부할 수 있는 기회다.그는 ‘지후니 작은섬’이 와인을 매개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만나고, 여행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조금씩 움직이면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방법을 모색 중이다. 토요일 오후의 와인 교실이나 ‘지후니 작은섬’을 매개로 한 여행 커뮤니티 등이 그가 지금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다. 배우고, 즐기고, 때로는 함께 떠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대목이다.“6년 전에 담배를 끊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좀 줄여야지 했는데 하루 종일 피우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날 ‘오늘도 피우지 말아봐야지’하고 참았는데 의외로 참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왔죠.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억지로 딱 끊어야지 하면서 아등바등하다 보면 더 끊기 힘들거든요.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런 거죠.”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건강관리에 특히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어떨 땐 바다가 좋고, 어떨 땐 산이 좋은데, 지금은 섬이 제일 좋아요. 하루 이틀 그 안에 갇혀 있다 보면 내가 얼마나 넓은 세상에서 얼마나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나를 알게 되지요. 예전에 제 팬클럽 안에서 팬들끼리 좋아져서 결혼도 하고 그랬어요. ‘지후니 작은섬’도 그런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행복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1만 원대의 파스타, 3만 원대의 연어샐러드, 5만 원대의 스테이크. 홍대 앞 치고는 그리 싼 편이 아니지만 청담동의 여느 고급 레스토랑에 비하면 무척 싼 가격이다. 하지만 맛은 여느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도 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양이다. 가격만으론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커다란 접시에 세팅돼 나오는 음식을 보는 순간 탄성이 흘러나왔다. 대략 3~4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할 뿐만 아니라 ‘남는 게 있을까’싶을 정도로 재료를 아끼지 않은 티가 팍팍 났다.“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곳에서 음식이 맛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무조건,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원칙입니다.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었으니까, 지금까지는 메뉴에 대한 테스트 기간이었던 셈이죠. 10시 넘어서 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서 양을 푸짐하게 준비했는데 조금 일찍 와서 식사 겸 와인 한 잔을 찾으시거나, 여러 가지 메뉴를 맛보고 싶을 때 양이 너무 많아 그럴 수 없는 단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양을 좀 줄이고, 가격을 낮출 계획입니다.”주방장 전준상 씨는 청담동 안나비니, 소호, 일산의 프로방스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레스토랑에서 일해 온 1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니저 도혜정 씨 또한 오랜 경력으로 소믈리에에 버금가는 와인 지식과 매너를 갖췄다. 그리운 음악과 따뜻한 매너,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함께 하는 섬. 한여름의 휴양을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는, 휴식 같은 공간으로 반짝반짝 빛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