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폭의 커다란 한국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는 표현은 이제 거의 지겨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켜설 수 없는 사실이고, 한국 영화로서는 이제야 다다른 거대한 역사의 한 대목이다. 말이 쉽지 100번째 영화라는 건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도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거장 빔 벤더스도 “나도 100번째 영화를 만들려면 앞으로 60년을 더 살아야 할 것”이라 말했고, 박찬욱 감독 역시 “같은 직업 영화감독으로서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놀라운 숫자”라고 감탄했다. 그래서였을까.지난 3월 29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에 대한 헌정 행사에는 거의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방불케 하는 수많은 영화인들이 모였다. 이창동 김대승 허진호 이명세 감독, 안성기 강수연 박상민 이병헌 등 일일이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초청 인사들로 붐볐다.알려졌다시피 〈천년학〉은 지난 1993년 100만 관객 신화를 일궜던 〈서편제〉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다.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에게 맡겨져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 분)와 송화(오정해 분)는 함께 소리와 북장단을 배워가며 어느새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가난이 싫고, 또한 마음 속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난다. 그리고 몇 년 뒤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가 눈이 먼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동호는 송화를 다시 찾으려 하지만 그 사이 유랑극단 배우 단심(오승은 분)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래도 송화를 잊지 못하던 그는 그녀가 들렀을 것 같은 과거의 선학동 선술집을 찾아 주인 용택(류승용 분)으로부터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과거 임권택 감독은 이청준 작가의 단편집 〈남도사람〉을 원작으로 〈서편제〉를 만들면서, 〈서편제〉와 〈소리의 빛〉 두 편으로만 영화 〈서편제〉를 만들었다. 마지막 남은 (〈천년학〉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선학동 나그네〉의 경우 학이 날아오르는 중요한 클라이맥스의 정서를 도저히 발달된 CG 기술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천년학〉은 한국 영화가 다다른 기술력의 새로운 국면이기도 하다. 그 판소리의 향연뿐만 아니라 CG가 포함된 영상에 있어서도 〈천년학〉은 여느 젊은 감독들의 심미안 그 이상의 노장의 너른 시선을 보여준다.〈만다라〉(1981)를 시작으로 어느덧 ‘길의 영화’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그의 카메라가 담아내는 것은 모두 시적인 서정으로 넘쳐나는 한국의 사계절이다. 매 장면 거의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이미지는 최근 다른 한국 영화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풍경의 황홀함으로 다가온다. 한 노감독의 사랑 이야기가 과연 어떤 반응을 끌어낼지는 미지수지만, 〈천년학〉이 거두게 될 성과는 그 자체로 한국 영화계의 자존심과 같다. q주성철·필름2.0 기자 kinoeye@film2.co.kr개봉영화▶극락도 살인사건극락도는 바깥세상 돌아가는 일엔 도통 관심이 없는 듯 순박하기만 한 섬 주민 17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그런데 이 섬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김 노인의 칠순 잔치가 벌어진 다음날 아침, 두 명의 송전 기사의 사체가 발견된 것. 섬 주민 전원이 용의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마을 사람들은 보건소장 제우성(박해일 분)을 필두로 범인을 추리하는데 열을 올리지만, 이후 계속 이웃들의 주검만 늘어간다. 감독 김한민. 출연 박해일, 박솔미, 성지루.▶고스트 라이더또 하나 새로 추가된 마블 코믹스의 영웅이 있다. 세계 최고의 바이크 스턴트 챔피언 자니 블레이즈(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피터 폰타 분)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긴다. 그렇게 그는 밤마다 자신의 뜻대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불멸의 영혼사냥꾼 ‘고스트 라이더’로 변하게 된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판타스틱 포〉 등 앞서 영화화된 슈퍼 히어로들의 계보를 잇는 영화다. 감독 마크 스티븐 존슨.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에바 멘데스.▶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는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됐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 분)가 시체로 발견됐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것. 다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에서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불리며 살던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며 쇼는 마츠코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모든 이에게 사랑받던 마츠코에게 지난 25년간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감독 나카시마 데츠야. 출연 나카타니 미키, 이세야 유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