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대형 전시회가 비즈니스맨들의 필수 순례 코스로 떠올랐다.자기 분야의 최신 트렌드와 시장 정보를 알고 싶다면 유명 전시회 몇 군데쯤은 ‘기본’으로 돌아봐야 한다.한 해 동안 열리는 크고 작은 국제 전시회는 1000회 이상. 물론 이 모든 이벤트가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재미와 정보, 네트워크 형성 등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알짜 전시회부터 골라야 한다.코스닥 등록 A벤처기업의 해외영업부 과장인 송영훈 씨(35)는 3월 16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독일 하노버로 떠난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전시회 가운데 하나인 ‘세빗(CeBIT)’ 참관을 위해서다. 송 씨는 지난 1월 초에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다. 세계 최대 가전 쇼로 꼽히는 ‘CES 2007’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휴대폰 서비스 기술 개발 전문 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첨단 기술이 시현되는 큰 전시회는 빠짐없이 둘러보는 편인데, 1년에 4~5번 정도”라면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3GSM 세계회의’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사정상 다른 동료가 가서 아쉽다”고 말했다.해외 전시회를 둘러보고 난 후 송 씨가 꼭 하는 일이 있다. 우선 전시장 곳곳에서 만난 세계 각국 참가 업체 종사자의 명함을 정리한다. 이름, 직장, e메일, 담당분야 등을 엑셀 프로그램으로 정리해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도록 해 둔다. 전시회 한 차례에 적어도 50명 안팎의 새 목록이 만들어진다.그 다음엔 전시회에서 받아온 각종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참관 보고서를 작성한다. 특히 경쟁 업체 동향과 신상품 트렌드는 회사에서도 예의 주시하기 때문에 한층 더 공들여 작성한다. 그는 “세계적인 비즈니스 트렌드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세계 유명 전시회에 가는 가장 큰 이유”라면서 “동종 업계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커다란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영업은 물론 기술 개발, 마케팅 등 거의 모든 부서에서 해외 유명 전시회 참관을 중요시 한다”고 전했다.전시회에서 최신 트렌드를 접해야만 업무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B식품 상품개발팀 차장 최수진 씨(39)는 해마다 독일 쾰른 국제식품종합박람회나 파리 국제식품기술전에 다녀온다. 이곳에서 전 세계 식품 업체와 연구소의 동향을 읽는 게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최 씨는 “쾰른이나 파리 전시회에는 5000~6000개 업체가 참가하고 15만 명 안팎의 바이어가 활동해 그 자체로 비즈니스 전쟁터라 할 만하다”고 말하고 “신상품 또는 신사업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시회의 이모저모를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전시회 참관·참가 행렬 ‘줄이어’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회 또는 박람회장으로 전 세계 비즈니스맨의 발길이 집중되고 있다. ‘사업을 하려면 해당 업종 전시회부터 둘러봐야 한다’고 할 정도로 ‘정보의 보고’ 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브랜드 파워를 가진 글로벌 기업과 바이어가 많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 전시회는 비즈니스맨들의 필수 순례 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여행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지만 “그 효과는 비용을 훨씬 능가한다”는 게 전시회 마니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한국 기업인들이 해외 전시회를 둘러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이때만 해도 대기업 총수, 임원 등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전시장을 둘러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선 기업 실무진이 수십 명씩 그룹을 지어 참관하며 적극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폈다.1995년 이후부터야 한국에서도 참관 수요 증가세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한때 외환위기 때문에 주춤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독일 하노버박람회 한국대표부 HBI의 이선행 사장은 “정보통신전시회 세빗의 경우 1999년에 입장권 450여 장을 국내에서 판매했는데 2001년부터는 1200여 장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면서 “다른 경로로 입장권을 구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세빗에만 2500~3000명의 한국인이 참관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는 2000년대 정보기술(IT) 업계 부흥과 세계 전시회 참관이 비례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IT 관련 업계가 성장하면서 첨단 기술의 향연인 전시회에 참가하는 행렬이 늘게 됐다는 것이다. 세빗이나 CES, 3GSM 세계회의 등이 일반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특히 국내 기업들은 전시회를 둘러보는 입장에서 직접 행사에 참가해 참관객을 맞이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삼성과 LG는 이미 초대형 정보통신·가전전시회의 ‘주빈’으로 자리잡아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월에 열리는 하노버 세빗에 2500만 달러를 투자하고, 현지 고용인을 포함해 2000명이 넘는 스태프를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 면적만 해도 2240㎡가 넘는다.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정보통신 분야 전시회의 경우 글로벌 마케팅 부서, 통신사업부, 디지털미디어 총괄 부서 등이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준비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전시광고그룹 등 굵직한 해외 전시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삼성 LG 이외에도 세빗에 참가하는 한국 기업은 300개가 넘을 전망이다. 개별 부스를 가지고 참가하는 한국 기업은 120개에 달하며 KOTRA는 중소기업 130개 업체를 모아 별도의 한국관을 운영할 예정이다. 한국은 참가국 가운데 대만 중국 등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참가 업체 수를 자랑한다.전시회 참관객은 물론 참가 업체까지 크게 늘어난 데는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 차원에서 전시회 참가를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KOTRA, 한국전시산업진흥회와 지자체가 전시회 참가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이희연 한국전시산업진흥회 대리는 “지난해 해외 판로 개척을 모색하는 중소업체 400군데에 참가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하승범 KOTRA 전시컨벤션팀 차장도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 등을 돕는 목적으로 올해 100회 정도의 전시회 참가 지원을 할 예정”이라며 “무역업이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업종이 아니라 측정하긴 힘들지만, 바이어와 1 대 1로 만나 상담을 하는 등 해외 전시회 참가의 장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시회 주변에서 수혜를 보는 업종도 나타나고 있다. 여행 업계에선 ‘세계 전시회 전문’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업체가 적지 않다. 현재 40여 개 여행사가 세계 각국 전시회를 항공 숙박 외식 관광과 연계해 여행 상품으로 개발, 판매 중이다. 그만큼 고정 수요가 든든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변혜진 그린항공 과장은 “연간 100개 이상의 전시회에 관람객과 참가객을 보낸다”고 말했다.이들은 1년 치 전시회 스케줄 정보 제공 등 전시 전문 업체 뺨치는 정보력을 자랑하며 영업에 나서고 있다. 김기영 현대드림투어 전시팀장은 “패키지 여행상품은 1~2월, 7~8월이 성수기지만 전시회 상품은 별 기복 없이 모객이 가능해 주목하는 분야”라고 말하고 “이 때문에 여행사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고객 모집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