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증가로 소비 ‘붐’…신용구매 급증

몇 년 전만 해도 멕시코시티는 대기오염으로 악명이 높았다. 거대한 화산 분지에 도시가 들어앉은 형국이라 먼지를 쓸어 가버릴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는 겨울철 건기에는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더구나 멕시코시티와 주변 멕시코 주에 무려 2300만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다. 하지만 대기오염은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요즘 멕시코시티 하늘은 더없이 맑고 청명하다.자동차 판매 연간 100만 대 돌파이처럼 멕시코시티가 맑은 공기를 되찾게 된 일등공신은 바로 자동차다. 과거에는 매연을 마구 뿜어대는 낡은 자동차들이 시내를 가득 채웠지만 이제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최신 모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포드 피에스타, 폭스바겐 제타, 닛산 코르사, 르노 클리오, 혼다 시빅. 멕시코시티 시내는 최신형 자동차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멕시코 브랜드는 없다. 멕시코에는 토종 완성차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요즘 멕시코에는 ‘마이카 붐’이 일고 있다. 젊은이들에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폭스바겐 제타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은다. 자동차 론이 활성화되면서 마이카의 꿈은 한층 가까워졌다. 멕시코 전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8129달러다. 개발도상국 가운데는 결코 낮은 소득 수준은 아니지만 대도시 지역은 1인당 GDP가 1만5000달러에 육박하는 곳도 적지 않다. 수출입 금융과 해외 투자 유치를 담당하는 방코멕스트(Bancomext) 에두아르두 포르타스 전무는 “지난해 멕시코 국내에서 한 해 동안 114만 대의 자동차가 판매됐다”며 “연간 자동차가 100만 대 이상 팔려나가는 곳은 세계적으로 13개 나라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멕시코는 결코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빈부 격차가 심해 전체 평균 소득은 낮지만 상류층은 엄청난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자동차 신용 구매 활성화에는 거시경제 지표의 안정도 한몫했다. 물가 상승률과 이자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외상으로 물건을 살 엄두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물가 상승률, 이자율, 국가 리스크 등은 수년째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현재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모두 멕시코에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1960년대부터 멕시코에 진출한 기업들이다. 이때만 해도 멕시코 내수시장 공략이 주목적이었다. 하지만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멕시코가 북미 수출 기지로 각광받으면서 자동차 산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멕시코는 세계 10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이와 함께 자동차 산업은 멕시코의 핵심 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자동차는 고용 유발 효과가 다른 산업에 비해 크다. 30만 대 규모 생산을 위해서는 1만3000명가량의 고용이 필요하다. 현재 멕시코 제조업 부문 전체 고용 인구의 19.8%를 자동차 산업이 책임지고 있다.주요 완성차 업체 가운데 멕시코에 진출하지 못한 곳은 한국 업체들이 거의 유일하다. 멕시코는 1989년부터 멕시코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자동차 회사에 한해 신차 수입 판매권한을 주는 수입 쿼터제를 운영해 왔다. 지난 2004년 이 제도의 철폐로 한국 업체들의 직수출이 가능하게 됐지만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에 대한 수입 관세를 50% 인상해 사실상 수출 길이 막힌 상태다. 그나마 현대차 아토스와 봉고, GM대우 마티스, 라세티, 젠트라 등이 제휴관계인 다임러크라이슬러, GM을 통해 멕시코 시장에 일부 수출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아토스와 마티스는 택시용으로 인기가 높다. 멕시코시티를 돌아다니는 택시는 모두 폭스바겐의 올드 비틀이거나 아토스 또는 마티스라고 보면 된다.최익석 삼성전자 멕시코 판매법인 부장은 “최근 혼다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성장세가 무섭다”며 “더 늦기 전에 현대차도 빨리 멕시코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현대차도 멕시코 서부 베라크루즈에 상용차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현재 사업성 검토를 끝내고 부회장 결제까지 났지만 복잡한 국내 사정으로 아직 최종 결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산업단지 개발업은 멕시코의 또 다른 성장 산업이다. 멕시코의 산업단지는 대부분 민간 업체가 개발하고 있다.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조성하는 산업단지는 전체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공공 재원의 부족을 민간 자금으로 채우는 것이다. 전 세계 공장들이 멕시코로 몰려들면서 민간 산업단지 개발업은 몇 년째 유래 없는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멕시코시티에서 남서쪽으로 60km 떨어진 톨루카. 멕시코 주의 주도인 이곳은 크라이슬러 닛산 GM 벤츠 BMW 등 자동차 생산 공장과 바이엘 화이자 등 제약회사, 그리고 코카콜라 펩시 네슬레가 진출해 있는 멕시코의 산업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다. 최근 이곳 톨루카 공항은 멕시코시티의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의 확장 이전이 무산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톨루카 지역의 몸값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포화 상태인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을 거치지 않고 바로 톨루카 공항으로 오는 신규 노선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산업단지 투자 18% 고수익 인기민간 산업단지인 ‘베스타 파크’는 톨루카 공항에 인접한 곳에 있다. 10만㎡의 넓은 단지에 깔끔한 초현대식 공장 건물이 시원스레 들어서 있다. 각 건물마다 널찍한 주차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케이블은 지하에 매설돼 있다. 공장 건물 디자인도 미국 샌디에이고의 전문 업체에서 맡아서 했다. 로돌포 발마세다 베스타(Vesta) 부사장은 “부지 매입, 공장 건축, 기반 시설 확충 등에 모두 40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베스타 파크에는 벌써 BMW 미주교육센터, 화장지 업체 조지아퍼시픽(GP), 생수업체 보나폰트 등 3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발마세다 부사장은 “요즘은 수요가 많아 제대로 지어놓기만 하면 금방 임대가 나간다”며 “업체 입장에서는 복잡한 토지 분쟁 등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임대료만 내고 쓰면 되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말했다.톨루카를 비롯해 티후아나 케레타로에도 산업단지를 운영하고 있는 베스타는 업계 8위로, 멕시코 업체만 따지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자산 규모는 3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최근 멕시코 산업단지 개발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곳은 미국계 회사들이다. 1~10위 업체 가운데 멕시코 회사는 인터멕스와 베스타 두 곳뿐이다. 특히 1~4위 업체를 모두 미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발마세다 부사장은 “수익률이 워낙 높다 보니 외국 자본이 잇따라 산업단지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외국 자본들은 주로 기존 멕시코 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005년 말 GE가 업계 1위인 멕시코 업체 핀사를 4억4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미국계 프로지스그룹이 멕시코 메카그룹을 4억5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베스타에도 비공식적인 인수 제안이 있었다. 발마세다 부사장은 “굳이 팔 이유가 없어 거절했다”며 “외국 투자자들은 사업을 더 발전시키기보다는 현 상태만 유지하면서 최대한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현재 멕시코 산업단지 투자 수익률은 18%에 달한다. 미국의 10%에 비해 8%가량 수익률이 높다. 투자처를 찾아 떠돌던 국제 자본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GE는 물론 푸르덴셜,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도 멕시코의 산업단지에 투자하고 있다. 멕시코는 정부든 민간이든 산업단지 건설에 필요한 자금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외국 자본을 얼마든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발마세다 부사장은 “민간 자본의 적극적인 활용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내 산업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도로다. 기존 도로 건설 속도가 신규 공장 설립과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산업단지나 기간 인프라 건설 업체에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