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만으론 못살아’…20~30대 열광

“어쩔 수 없는 장기 하락 레이스가 시작된 듯….”(hongja)“투기지역에서 주택 할부금융과 아파트 담보대출을 함께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악몽)갑론을박 게시판으로 유명한 부동산뱅크(www.neonet.co.kr) 토론실에선 요즘 집값 하락 여부가 화두다. ‘그래도 불패’를 주장하는 쪽에 ‘필패’로 맞서는 이들이 실시간 댓글 전쟁을 벌이고 있다.모두 연초부터 집값이 심상치 않은 탓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금까지 정책 약발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진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주택 담보 대출 규제 강화와 분양가 인하를 큰 틀로 하는 1·11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값이 일제히 약세로 돌아서자 시장 참여자들의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진 느낌이다.스피드뱅크(www.speedbank.co.kr)가 1월 11일부터 4주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를 조사한 결과 서울은 0.18% 상승에 그쳐 1·11대책 발표 전 4주간 상승률 0.94%에 비하면 움직임이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관심의 초점은 봄 이사철의 집값 향배다. 그동안 강남권, 비강남권을 불문하고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서울 집값이 올해 어떻게 가닥을 잡을지 초미의 관심사다. 물량 부족이 해소되지 않았으므로 봄 이사철 시작과 함께 다시 상승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주장과 이미 집값 하락은 대세라는 전망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매수 매도 타이밍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실수요층만 애를 태우는 형국이다.부동산을 물리치고 2007 재테크 왕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주식도 출발이 시원찮기는 마찬가지다. 2월 8일 오전 현재 주식시장은 외국인이 매물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코스피는 전날보다 9.56포인트 하락한 1416.73,코스닥지수는 0.54포인트 상승한 601.1을 기록하고 있다.연초 랠리에 대한 기대는 1월이 지나면서 이미 색이 많이 바랬다. 게다가 2월 증시도 1월과 마찬가지로 큰 폭의 반등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특히 전 세계 상품 가격 하락 등으로 세계 증시가 불안하고 상승 모멘텀을 일으킬 이렇다 할 호재도 발견하기 어려워 분위기가 더욱 무겁다.주식·부동산 ‘시원찮은 출발’재복이 넘친다는 황금돼지 해를 맞아 많은 이들이 재테크에 대한 결심을 새롭게 다졌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 때문에 혹자는 지금이 재테크를 한 박자 쉬어갈 때라고 말한다. 쉬는 것도 중요한 재테크 기술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요즘 같은 과도기, 변곡점이 나타나는 시기에 어김없이 기회가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이렇듯 갑론을박이 팽팽한 데에는 재테크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한몫한다. 이제 재테크는 일상이자 필수가 됐다. 특히 20~30대 젊은층 사이에 재테크 열기가 뜨겁게 번지고 있다. ‘관심 있는 어른들의 일’에서 ‘누구나 해야 할 일’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비록 부동산과 증시 움직임이 기대에 못 미친다 해도 재테크 정보나 기법, 성공 사례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최근 출판가에선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라는 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간 직후 1위에 오르더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리 굳히기 중이다. 이 책의 히트는 최근 재테크 흐름을 그대로 말해 준다. 30~40대 이상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대까지 재테크 시장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문화 센터, 대학, 기업들을 돌며 1주일에 6~7차례 강의를 하고 있는 고종완 RE멤버스 대표는 “지난해부터 강의장에서 젊은층을 찾아보기란 아주 쉬운 일이 됐다”면서 “경기가 침체돼 취업률이 낮아진 반면 부동산 값은 많이 뛰다보니 자연스럽게 돈 버는 방법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고 대표는 “사무실을 직접 찾는 상담객 중에서도 20~30대가 적지 않다”면서 “재테크에 대한 열성과 관심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개인 자산 관리를 위한 강의 활동을 활발하게 펴고 있는 김의수 TNV어드바이저 수석팀장도 격세지감을 느끼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그는 “2003년 처음 개인 자산 관리를 시작했을 당시엔 40~50대를 중심으로 재테크 플랜의 중요성이나 개인 자산 관리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곤 했는데 2005년 이후부터는 20~30대로 주력 대상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최근 강의가 이뤄진 기은캐피탈에선 60대 감사부터 입사 1개월차 신입사원까지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는 전언이다.직장인 파워 ‘대단해’이런 변화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부쩍 늘어난 투자 관련 동아리에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2002년 이후 부동산이 수직 상승하자 ‘부동산만한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각종 동호회, 기업 내 동아리 등이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회원 수 3만 명을 돌파한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 아기곰동호회의 경우 평범한 직장인이 모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회장인 아기곰 역시 월급쟁이로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경우다.부동산 포털 가운데 방문자 수가 가장 많은 부동산114(www.r114.co.kr)나 부동산뱅크 역시 직장인의 힘으로 파워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114 김규정 차장은 “방문자 가운데 직장인 비율이 전체의 65% 이상”이라고 밝히고 “회원 가운데 절대 다수가 자신의 직장 컴퓨터를 통해 접속하는 20~40대”라고 말했다.회사의 지원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부동산 동아리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부동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종들인 게 특징이다. 삼성물산 주택부문의 ‘부동산금융연구회’, 생보부동산신탁의 ‘법촌’이 대표적이다. 현금자산 10억 원 이상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 증권사의 PB센터도 예외가 아니다. 한 시중은행 PB센터 관계자는 “프라이빗 뱅커가 사모 펀드를 만들어 공동 투자를 시도하는 예가 적지 않다”면서 “업무 특성상 꾸준한 학습과 실전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석이조 효과”라고 밝혔다.또 하나 뚜렷한 현상은 공동 투자의 증가다. 주로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 이익금을 나누는 방식이다. S건설 C과장의 경우 공통 투자를 통해 전문가 뺨치는 정보력과 투자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는 “동료 2~3명과 함께 자금을 모아 재개발 구역 2곳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재개발에 관해서는 일정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한다”면서 “요즘은 매도 타이밍을 잡기 위해 간혹 회의를 하면서 정보를 교환한다”고 밝혔다.이 같은 재테크 관심 증가는 맞벌이와 투잡스족 증가와도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다. 봉급만으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자산 불리기에 집중토록 만들었고 이에 따라 재테크는 ‘필수’가 된 것이다. 실제로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기혼 직장인 2228명 가운데 56.8%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이유에 대해 ‘가정의 경제력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해서’란 응답이 48.2%로 가장 높았다.재테크가 대한민국 국민의 화두가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김의수 팀장은 “2002년 이후 부동산 값이 급상승 국면을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값 상승이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고 주식시장에 대한 장밋빛 기대감까지 더해지면서 ‘재테크 만사’라는 인식이 퍼졌다. 물론 평생직장의 소멸과 취직난, 교육과 육아에 대한 부담, 정치 불안 등이 저변에 작용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이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부자’에 대한 동경을 필요 이상으로 키웠다는 지적도 나와 있다. 많은 인문학자들이 물질만능의 시대를 우려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마저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테크 신화를 좇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양극으로 벌어지면서, 땀 흘려 일하기보다는 불로소득을 좇는 벼락부자 신드롬이 사회를 지배하게 됐다는 비판도 있다. 황금돼지해 출산 붐 역시 자신 이후 세대에라도 부가 따라 왔으면 하는 심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자식에게 가장 원하는 바 역시 부로 귀결되는 것이다. 결국 지금 대한민국에서 부는 재테크 열풍은 소시민의 불안함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