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발굴 …‘아프리칸 드림’ 현실로

최근 1~2년 사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조기 교육 열풍에 따른 유학생 증가가 주를 이루지만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민자도 많아졌다. 현재 남아공의 한국인 수는 약 3700명에 달한다. 요하네스버그에 1500명, 케이프타운 1300명, 프리토리아 600명, 나머지는 더반 등 기타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지 교포들은 “최근 1~2년 동안 한국인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남아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의미다.특히 이민 1세대들에겐 요즘의 변화가 감개무량하게 다가간다. 그동안 남아공과 한국은 서로 ‘잘 모르는 나라’나 다름없었는데, 최근 유학생과 이민자가 늘어나고 신흥 개발국으로 한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남아공에는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해 백인 부유층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한국인 사업가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대표적 이민 1세대 사업가가 한자리에 모여 〈한경비즈니스〉를 위해 남아공의 현재와 미래, 정착 경험담 등을 풀어놨다. 또 남아공에 관심 있는 이들과 기업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자리는 남아공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경제인 간담회였다. 1월 24일 오후 3시 KOTRA 요하네스버그무역관 회의실에서 황재길 영파이오니어 사장, 안영호 영인터내셔날 사장, 민경준 하나스 사장, 홍부기 부기트레이딩 사장, 이종건 KOTRA 요하네스버그 무역관장이 머리를 맞댔다.‘기회의 땅, 축복받은 나라’남아공에서 뛰는 한국인 기업가들은 ‘기회’를 첫 번째 장점으로 꼽았다. 남아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한국인, 한국기업에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아프리카에 대한 전방위 공략을 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 정부와 기업이 너무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들은 “정확한 시장 조사와 발 빠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 ‘아프리카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경고도 나왔다. 아프리카 시장을 두드리려면 원시 미개 문화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지난 1985년 대우실업 주재원으로 왔다 정착해 주유소 무역업 등으로 성공한 안영호 사장은 “남아공은 축복받은 나라”라고 말문을 열었다. 세계 최대 수준의 자원을 비롯해 청명한 기후, 빼어난 자연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94년 이후 흑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백인 중심의 고급·소규모 시장이 중저가·대규모 시장으로 바뀌었다”면서 “흑인 중산층이 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탄탄한 흑인 네트워크가 사업에 필수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1991년 이주한 황재길 사장은 처음엔 섬유사업을 하다 고율의 관세 장벽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현지인과 경쟁하기 위해선 관세 없는 업종을 골라야 한다고 보고 휴대폰 부품 무역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현재는 가장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 반열에 오른 것은 물론 모잠비크에 세운 쌀자루 제조 공장 또한 우량 기업의 발판을 다졌다. 황 사장은 “남아공은 14년간 이어진 유엔의 경제제재에도 별 지장을 받지 않은 나라”라면서 “무역을 하지 않아도 자급자족할 수 있을 만큼 자원이 풍부한 게 최대 강점”이라고 밝혔다. 또 “흑인 생활 수준이 나아지고 있어 사업 환경이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의미다.경계의 코멘트도 이어졌다. 장난감 무역업과 전문점 직영을 병행하고 있는 민경준 사장은 “남한의 12배에 달하는 면적, 4500만 명이 넘는 인구에 비해 시장이 제한적이고 작은 편”이라면서 “백인 정권 시절이 경기가 훨씬 좋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질의 수요층이 축소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남아공한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한인경제인협회(OKTA)를 이끌면서 아프리카산 피혁 무역과 함께 자동차 오디오 전문점을 경영하는 홍부기 사장은 인력 사용의 어려움을 단점으로 꼽았다. 이민 10년이 넘은 그는 “흑인들의 소비 패턴을 연구하다 자동차 오디오 전문점을 시작했다”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은 흑인 특성상 사업은 쏠쏠한 편이지만 간혹 인력 관리에 실패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잠깐의 방심으로 수개월 치 수익을 날리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이들은 남아공이 아프리카 경제의 파워 하우스임에 틀림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흑인 정권 이후 경제개발 과정에서 기회가 풍부한 것도 매력적이라는 의견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의 관심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라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종건 관장은 “아프리카에 차관을 주면서 정치엔 간섭하지 않는 중국의 속셈이 무엇이겠느냐”면서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대기업이 반드시 공략해야 할 시장’‘남아공은 대기업 시장이다.’‘어떤 사업이 잘 되겠느냐’는 질문에 10~20년 경력의 이민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기업부터 먼저 진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사장은 “제3세계 시장 가운데 남은 곳은 아프리카 밖에 없는 데다 자원 확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대기업이 반드시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아프리카 시장을 겨냥하는 스프링보드로 삼아야 할 곳이 남아공”이라고 힘줘 말했다. 예컨대 남아공은 2010년 월드컵 준비와 신경제정책 실행을 위해 다양한 개발 수요가 일고 있다. 전기 및 전력 설비는 기본이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수주를 위한 전력 쇼를 여는 이유가 따로 있다.특히 이 관장은 대기업 진출 필요성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했다. 이 관장은 “건당 10억 달러가 넘는 거대 인프라 사업들이 우리 기업들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대기업이 앞장서야 중소기업, 개인 투자자들이 뒤따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전기 전자 건설 자동차 등 중후장대형 기업이야말로 남아공에서 승부를 걸 만하다는 것이다.그러나 대기업이든 정부든 개인이든 남아공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게 걸림돌이다. 황 사장은 “이렇게 기회가 널린 아프리카에 왜 안 오는가”라고 되물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쌀자루 공장을 모잠비크에 세웠더니 그 나라 정부에서 상을 받으러 오라고 하더라”면서 “시장을 잘못 읽어 실패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장을 얕잡아 보고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이들은 개인 사업자, 이민자가 고려할 만한 아이템을 묻는 질문에 저마다 이민 생활 동안 생각해 두었던 유망 아이템을 풀어놓았다. 안 사장은 ‘제대로 된 한국 식당’을 첫 손 꼽았다. “서양에서 아시안 푸드가 유행인 것처럼 남아공도 마찬가지인데, 정작 격조 있게 접대할 만한 한국 식당이 없다”면서 “뉴욕의 우래옥처럼 다국적 비즈니스맨이 즐겨 찾는 명소를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사장은 ‘자동차 정비업’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해 참석자 전원이 무릎을 치며 동의했다. 민 사장은 “이곳 거리는 세계 명차들이 즐비해 자동차 경연장이나 다름없지만 정비를 맡기면 부품이 비싸고 서비스가 느려 불만이 속출한다”면서 “한국식으로 신속 정확한 정비 서비스를 선보인다면 십중팔구 호평받을 것”이라고 말했다.황 사장은 “이 나라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또 “인건비가 낮기 때문에 몸으로 하는 일은 경쟁력이 낮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황 사장이 제시한 아이템은 가전 애프터서비스와 세탁 및 수선업. 이 밖에 상하수도, 전기 설비를 비롯한 소규모 건축업도 유망 업종으로 거론됐다. 집 수리, 리모델링 수요가 많아 관련 기술 보유자에겐 적격인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또 개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만큼 한국의 부동산 개발 노하우를 접목해 보는 것도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됐다.‘우습게 보면 큰 코 다친다’그렇다면 남아공 진출 시 주의할 점을 무엇일까. 이들은 먼저 “아프리카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안 사장은 “위치만 아프리카에 있다 뿐이지 경제 뼈대는 유럽과 다름없다”면서 “영어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 영향을 받은 고용정책은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항이다. 안 사장은 “흑인경제육성정책(BEE) 등의 영향으로 고용보다 해고가 어렵고, 경우에 따라선 입찰 자격까지 제한받는다”고 말했다. 한국식 인력 정책으로는 자리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황 사장은 전혀 다른 상관습을 깨우치기 위해선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분위기만 익혀보는 것도 좋다”면서 “적어도 6개월~1년은 남아공 사회를 경험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정보의 중요성도 대두됐다. 홍 사장은 “눈과 귀를 막은 채 한 사람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여럿 있다”면서 “품질 낮은 정보에 의지해 성급한 투자를 했다간 적지 않은 수업료를 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사장도 “이민이든 투자든 준비 과정상 어려움이 닥치면 한인회, KOTRA 등에 문의하라”면서 “공신력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게 실패율을 낮추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먼저 정착한 선배의 경험담에 진리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치안이 문제’라는 것도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들은 “범죄율이 높고 한국인이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아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민대국 미국도 범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남아공만의 특수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qsjpark@kbizweek.comINTERVIEW / 김균섭 주남아공 대사‘원조 아닌, 비즈니스 대상으로 봐야’“중국이 아프리카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아십니까?”김균섭 주남아공 대사의 첫마디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였다. 그는 “지난해 11월 중국·아프리카 협력회의에 이어 3개월 만에 후진타오가 다시 남아공을 방문한다”면서 “원조의 대상이 아닌, 비즈니스의 대상으로 아프리카를 다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기술고시 출신으로 산자부 기획관리실장,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9월 주남아공 대사로 임명됐다. 산자부 출신답게 그는 한·남아공 경제협력에 관심이 특별하다. 중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도 아프리카 시장 선점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언제 비단길로 다녔냐”면서 “남아공은 물론 아프리카 시장을 적극 개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김 대사가 밝히는 남아공의 중요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남부 아프리카 진출의 거점으로 ‘아프리카 대륙 길 닦기’ 차원에서 반드시 공략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두 번째는 월드컵 등 대형 이슈에 따른 인프라 사업의 기회가 많고, 세 번째는 아프리카 종주국이자 유엔 비상임이사국으로서 외교 비중이 크다는 점을 꼽았다. 이런 중요성에 비해 한국에서의 관심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가 안타까워하는 점이다.김 대사는 한국 기업들을 위한 ‘전략’도 제시했다. 남아공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려면 인수·합병(M&A) 관점에서 접근해 보라는 것이다.“예를 들어 우량 백금광이 있다고 칩시다. 백금광 자체를 인수하려 하지 말고 이를 소유한 회사에 지분 투자를 하는 식으로 접근하라는 겁니다. 국내 은행들도 마찬가집니다. 곡물 광물 등 세계 원자재 가격 결정의 중심지인 만큼 하루빨리 끈을 연결해야 합니다.”‘일상생활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이곳에서 잃어버린 단어를 찾았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산들바람이라는 말 아세요? 시시때때로 산들바람을 맞으면 ‘아,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 ‘Come to my bedside my darling’ 가사에 나오는 ‘브리즈(Breeze·산들바람)’를 다시 찾았어요. 자연과 기후는 가히 최고입니다.”돋보기 / 케이프타운 한국인 사업가들고추장 파워 ‘짱짱’… ‘희망봉으로 오세요’“용감한 자매라고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요!”환하게 웃는 입매가 똑같이 닮은 이선희(34) 이미정(32) 자매는 케이프타운 한인사회에선 유명 인사다. 언니 이선희 씨는 지난 2001년 8월에 이주, 2002년 3월부터 영어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고 동생 이미정 씨는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 이민자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는 헤어디자이너다. 둘 다 화통한 성격에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이선희 원장은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직접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현지 대형 학원들과 경쟁 중이다. 또 조기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홈스테이 사업과 전화 영어 교육 서비스, 현지인을 영어 교사로 양성해 한국 등 세계로 송출하는 일까지 함께 하고 있다. 멀티 잡이 따로 없다.“지금까지 20여 명의 남아공인 영어 교사를 한국으로 보냈어요. 자질 있는 사람을 선별하는 건 기본이죠. 교육 과정 중에 20시간의 한국 문화 과목을 필수로 두고 있는데, 한국 이해와 적응에 큰 도움이 돼 교사나 학교가 모두 만족합니다.”동생 이미정 씨는 ‘삶의 질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언니를 따라 이민한 케이스다. 그의 솜씨는 이미 입소문이 대단해 800km나 떨어진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손님이 찾아 올 정도다. 두 자매의 남편들 역시 각각 컨설팅업과 건축업을 하며 자리를 잡았다.이 밖에 여행사 ‘아시아썬’을 운영하는 이수영 사장, 한식·일식 전문점 ‘고려정’을 운영하는 윤창수 사장 등도 케이프타운의 젊은 사업가로 손꼽힌다. 특히 고려정은 매일 저녁 백인 손님들로 가득한 케이프타운의 명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