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하락 대세…기준 환율 ‘보수적’

국내 10대 수출 제조업체들의 환율 전망이다. 10개 기업 가운데 6개 기업이 하락을, 4개 기업이 현 수준 유지로 내다봤다. 상승을 기대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돼 온 환율 급락세가 일단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지난 1월 31일 원·달러 환율은 941원으로 지난 연말 929.8원에서 11.2원 올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환율 상승의 조짐으로 보지 않는다. 연초 수출업체들의 달러 매도세가 증가하며 일어난 일시적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연중 환율은 하락세가 될 것이란 의견이 여전히 많다. 기업들의 예상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기준 환율 900원 최다그렇다면 올해 환율은 어느 수준일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하락하더라도 그 폭에 따라 기업의 매출과 채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대부분 800원대 후반에서 900원대 초중반 사이에서 환율이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동 폭은 기업에 따라 20원에서 70원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최저 환율은 880원을 제시한 기업이 가장 많았다. 10개 기업 중 3곳이 이렇게 내다봤다. 평균 환율은 이보다 높을 것이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880원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어 890원을 제시한 곳이 1곳, 900원이 2곳, 910원이 1곳, 920원이 2곳, 930원이 1곳의 순이었다.반대로 최고 환율은 940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3곳의 기업이 잘 해야 현재 수준인 940원 정도에 머무를 것이라고 응답했다. 920원 정도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한 기업도 3곳이었다. 다음으로 950원이 2곳, 930원이 1곳, 960원이 1곳의 순으로 나타났다.10대 제조 업체들은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해외 수출을 통해 달성하고 있었다.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90% 이상을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었다. 특히 수출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는 2005년 75%에서 2006년 78%로, 포스코는 29.9%에서 31.5%로 불어났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활동 무대가 내수 중심에서 점차 글로벌 시장으로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수출의 비중이 커질수록 환율은 기업 실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이에 따라 연초 기업의 사업 계획에서 환율 수준을 정확하게 예측, 결정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환율이 기업이 예측한 수준에서 벗어날수록 당초 계획했던 실적과 실제 사이에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기업들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기준 환율은 다소 보수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수준의 환율을 전망한 기업이 4곳이었던 반면 940원대인 현재 환율을 기준으로 정한 기업은 1곳에 불과했다. 반면 900원으로 잡은 곳은 4곳이나 됐다. 이어 930원이 2곳, 920원이 1곳, 910원이 1곳의 순으로 기준 환율을 정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10대 기업의 기준 환율은 940원대인 현재 환율을 감안하면 분명 보수적이며 지난해 연말 환율이 920원대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업들이 그만큼 환율 리스크에 충분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환 리스크 관리에 최선을 다해 낮은 환율 속에서도 수익을 내겠다는 기업의 각오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외환 전문인력 평균 4명 보유환율은 기업의 채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출 기업은 물론 수입에 의존하는 기업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10대 기업의 경우 수익을 낼 수 있는 최저 환율은 얼마나 될까.이에 대해 10대 기업 대부분은 응답을 거부했다. 거래 때마다 손익 분기 환율이 다른 데다 환율만으로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답변한 기업을 기준으로 보면 사업 계획상 기준 환율보다 다소 떨어지더라도 손실을 보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마다 손익 분기 환율이 달랐던 것은 물론이다.올해 매출 및 이익에 대한 전망에서 10대 기업 가운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 곳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소폭의 매출 및 이익 증가를 예상했고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본 곳도 있었다. 10% 이상의 매출 증가를 예상하면서도 이익 증가율은 전망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만큼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다.가장 큰 위협으로 꼽힌 것은 원화 강세였다. 복수 응답을 허용한 이 항목에서 5곳의 기업이 이렇게 답했다. 환율이 기업 경영에 얼마나 큰 파급력을 미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글로벌 시장의 경쟁 격화와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를 심각한 위기 요인으로 꼽은 기업도 각각 3곳에 이르렀다.사실 환율 변화에 대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기업이 환율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환율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환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 10대 기업들의 경우 선물환거래, 스와프, 파생상품 등을 이용한 환 헤지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VaR(Value at Risk) 모델 등을 도입해 환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측정해 적정한 시점에서 탄력적으로 헤지하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결제 통화의 다양화, 외화 차입 비중 확대, 원가 절감,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경쟁력 확보 등도 주요한 대응 방안으로 꼽혔다.10대 기업들은 대부분 외환 전문 인력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을 내부에 두고 끊임없이 환율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 인력의 수는 담당 임원을 포함, 대개 4명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설문에 응한 기업: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주)SK SK네트웍스 LG전자 LG화학 포스코 하이닉스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가나다 순).돋보기 현대차의 환 관리 전략달러화 비중 축소, 잉여외화 30% 헤지원·달러 환율이 1원 하락할 때마다 현대차는 120억 원의 매출 손실을 본다(2006 수출 목표액 306억 달러 기준). 기아차를 더하면 손실액은 200억 원으로 불어난다. 최근까지 원·달러 환율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렇다면 현대차의 손실액은 얼마나 될까. 2005년 평균 환율이 1034원, 지난 31일 환율은 941원이다. 93원의 차이가 난다. 단순 계산으로도 무려 1조 원 이상이 날아가 버린 셈이다.채산성 악화는 불문가지. 2003년 9.0%이던 영업이익률이 2005년 5.1%, 2006년 4.5%로 내려앉은 상태다. 사정이 이쯤 되면 환 관리에 전사적인 역량을 모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가가치 확대, 비용 절감과 함께 환 관리가 경영의 최전선에 포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현대차의 환 관리는 크게 3부문으로 구분된다. 우선 수출 결제 통화를 다각화하고 있다. 달러화에 비해 수익성 확보가 쉬운 유로화로 결제 통화를 바꾸고 있는 것. 지난해 11월까지 미국 달러화의 비중은 지난해 초 66.2%에서 62.5%로 3.7%포인트 줄었다. 반면 유로화는 22.2%에서 25.7%로 3.5%포인트 늘었다.현대차는 터키 인도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수출 차량에 대한 결제 통화를 유로화로 전환했고 현지 통화 결제를 확대하는 등 달러화 결제 비중을 더욱 낮출 예정이다. 아예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도 축소하고 있다.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 미국 달러에 대한 영향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모든 통화가 달러 대비 강세가 되기 때문에 원화가 절상되면 유로화도 절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달러 약세 시기엔 유로화 비중을 높이는 게 효과적인 관리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환 헤지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물환 거래 등을 통해 환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 현재 잉여 외화의 약 30%를 헤지하고 있다. 외화 차입 비중도 점차 높이고 있다. 원·달러 약세로 인해 발생한 수출 매출액 감소분을 달러화 차입금으로 상쇄하기 위해서다. 해외 공장 등 직접 투자에 따른 달러화 차입과 상환 계획은 달러화 가치 변화에 맞춰 조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