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아이 같다. 그것을 지긋이 보는 내 마음이 경쾌하다. 덩달아 바람도 허공도 경쾌하다. 기억에도 경쾌함이 있다. 이런 가을날이면 수많은 기억들, 개중에 나는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 짐칸에 다리를 벌려 타던 기억이 유난히 경쾌하다.아마도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쯤 됐을 서른 후반. 추풍령 고갯길을 아버지는 나를 뒤에 태우고 읍내 이발관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아가며 올라가고 있다. 어떤 기억은 이렇게 종말이 없이 현재도 진행형이다.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그때 그 고갯길을 넘어가면서 무슨 말씀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다 잊혀졌다. 그러나 그 젖은 등과 가쁜 숨소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이제 나의 아버지는 양쪽 눈에 녹내장이 와 좌우 풍경을 잃은 예순여덟.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아직도 지게꾼. 나의 아버지는 평생 지게질을 해 왔다. 나뭇짐을 지거나 풀짐을 지고 저녁이면 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신다. 나뭇짐은 아궁이 앞에 부려놓고 풀짐은 외양간 앞에 부려놓으신다. 당신의 일을 하고 일해 얻은 것을 제자리를 찾아 내려놓으신다.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불안한지 이따금씩 천만당부(千萬當付), 간곡한 당부를 아끼지 않으신다. 그 일성이 다른 사람의 흉을 보지 말라는 말씀이다. 남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수마발이라 했던가. 소의 오줌과 말의 똥처럼 흔하고 쓸모없는 말이 세상에는 널려 있지만,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만은 귀하게 새겨듣는다. 왜냐하면 평생을 논과 밭에서 씨앗을 심고 줄기를 성장시키고 열매를 거둬온 농사꾼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는 것을 줄곧 지켜본 이가 하시는 젖은 몸의 말씀이기 때문이다.이 말씀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온 나는 어느 날 불교경전을 보다가 상불경이라는 보살비구를 알게 됐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몽둥이로 때리거나 돌을 던지거나 해도 잠시 멀리 달아나면서 되돌아서서 “나는 당신들을 가벼이 보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몹시 존경합니다”고 크게 외쳤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요즘에도 있다면 그를 부처로 사모해 경앙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호오(好惡)와 장단(長短)을 말하지 말고, ‘나쁜 말’(惡口)과 ‘이간하는 말’(兩舌)을 하지 말라는 게 아버지의 첫번째 당부다.아버지는 또 일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신다. 밭에 난 잡초를 제거하는 데도 시기가 있듯이. 들에 나가 일을 해보면 안다. 잡초가 한무릎씩 쑥쑥 올라오는 여름철에 잡초 뽑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면, 그래서 시기를 놓치면 잡초 뽑기가 여간 어려워지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늘 논과 밭에 나가 있는 사람이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제때 손보는 사람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기를, 마치 물을 아끼는 집에서 둑을 잘 쌓아놓은 것과 같이 하라는 옛 가르침이 있지 않은가.때가 있다는 말씀에는 노동의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 외에도 세상에 나아감을 잘 살피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 있다. 나서고 물러나는 데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삼지삼청(三止三請)의 미덕이 있다는 말을 요즘은 들어보기 어렵다. 세 번 거절하고 세 번 청하는 그 애씀이 사라져 버렸다. 나 외에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는지 되묻지 않는다. 성큼성큼 분수도 모르고 큰 걸음으로 불쑥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때를 가리지 않고 나선 이들의 최후를 보면 참으로 딱하다. 이름을 얻으러 나섰으나 그 일을 아니함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러하다.요즘 세상은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두상안두(頭上安頭)의 시절인 것만 같다. 연야달다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거울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머리가 있는데 나의 머리는 어디로 갔지?”라고 스스로 물으면서 본인의 머리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나의 머리를 못 봤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본인의 머리를 두고 그 위에 머리를 또 얹으니 ‘두상안두’ 아닌가. 본인의 본심을 못 찾는, 환(幻)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다. 이들에게 농사꾼인, 못 배운 내 아버지의 이 두 가지 간곡한 당부를 전해주고 싶다.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가 있다. 노작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