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시장의 핫이슈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학적 변동이다. 특히 2010년께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은퇴가 몰고 올 충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그 영향은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주식시장 호황의 원인으로 베이비부머들의 노후불안을 꼽기도 한다. 이들 세대는 ‘길어진’ 노년을 보내야 하지만 쌓아놓은 자산은 별로 없다. 이에 따라 투자형 상품으로 자금이 몰렸다는 것이다.이런 흐름은 갈수록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포털업체 머니OK 황선호 이사는 “향후 10~15년까지 은퇴에 대비한 베이비부머들의 ‘투자’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적립식펀드 등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도 투자증가의 요인이다. 이런 변화는 은행과 보험상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은행에서는 주식과 연계된 복합상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도 투자기능을 묶은 변액상품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초장기 금융상품 등장 = 저출산과 저금리가 맞물리면서 금융상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제 15·20년 만기는 기본이며 30년 만기 상품까지 등장한다. 하나은행은 지난 8월1일 노후 대비를 위해 매월 원리금 수령액을 고객이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셀프 디자인 예금’을 내놓았다. 최장 31년까지 만기를 정할 수 있는 초장기형 상품이다. 이 상품에 가입하면 여행 할인과 진료예약 대행, 건강검진 할인 등 부가서비스도 제공한다.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자금 확보를 원하는 베이비부머들을 겨냥한 상품이다.올 2월 선보인 주택금융공사의 30년 만기 ‘보금자리론’은 6개월 만에 909억원어치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ING생명의 30년 만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인 ‘ING 홈 플랜’과 35년 만기인 국민은행의 ‘KB스타 모기지론Ⅱ’에도 고객이 몰리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말 풍요로운 노후를 추구하는 시니어 세대를 위해 최장 30년까지 적립하거나 연금식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100세 통장’을 내놓아 2,749억원어치를 팔아치우기도 했다.▷펀드 춘추전국시대 = 주식시장의 횡보세에도 불구하고 펀드상품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펀드의 춘추전국시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이색 실물펀드들이 잇따라 등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산은자산운용은 건국대 기숙사 건설에 400억원을 투자했다. 연기금과 보험사 등 5개 기관투자가에 330억원, 조흥은행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에게 공모해 70억원을 모았다. 산은자산운용은 기숙사를 건국대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13년 6개월 동안 기숙사 운영권을 갖고 기숙사비 수입을 펀드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데, 투자자들은 연 7~8% 수익률을 보장받는다.마이에셋자산운용은 한우에 투자하는 ‘마이에셋사모웰빙한우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6개월짜리 송아지 2,000마리를 키워 수익을 낸다. 실제로는 유기농 한우 생산, 판매업체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마이에셋자산운용측은 유기농 한우는 가격변화가 거의 없는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선박운용은 해양경찰청의 경비정에 투자하는 ‘거북선 펀드’를 내놓는다. 일반공모로 배를 사거나 제조 후 임대해 수익을 내는 선박펀드의 일종이다. 투자자들은 10년간 3개월마다 연 5%대의 배당을 받으며 2008년까지 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해외 유전과 광물에 투자하는 펀드도 등장할 전망이다. 산업자원부는 석유공사를 통해 9월 중으로 유전펀드 운용사를 선정한다. 광업진흥공사도 내년 초 2,000억원 규모의 광물전용펀드를 출시한다. 금융포털업체인 모네타 서기수 팀장은 “펀드의 운용수단은 점점 다양해질 것”이라며 “저작권, 특허권, 연구논문 같은 무형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도 등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똑똑해지는 보험상품 = 보험상품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보험의 보장범위가 확대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특정계층을 겨냥한 상품도 늘어나고 있다.지난 4월 삼성생명은 새롭게 개정한 ‘삼성유니버설종신보험’을 내놓았다. 가입자가 보험료를 자유롭게 내면서 정해진 고액의 사망보장은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자유 입출금식 보험이다. 기존 종신보험이 사망 보장에만 초점을 맞춘 형태라면 이 상품은 사망보장은 물론 자유로운 보험료 입출금 기능과 추가 납입 기능을 통해 사망시 생계보장과 필요한 목적자금 설계를 한꺼번에 할 수 있게 한 ‘멀티(Multi) 종신보험’이다. 또한 이 상품은 처음에는 정해진 기본보험료를 내다가 2년이 지나면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상당기간 보험효력이 유지된다. 기본보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보험료가 매월 해약환급금에서 자동으로 인출돼 보험효력을 일정기간 유지하기 때문이다.대한생명이 선보인 ‘BEST 장기주택마련저축보험’은 방카슈랑스 전용 상품이다. 이 상품은 근로소득자용 금리연동형 저축보험으로 연간 납입금액의 40%(300만원 한도)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7년 이상 유지할 경우 이자소득세가 면제된다. 기존의 주택마련저축과 달리 가입 2년 이후에는 가입자의 경제상황에 따라 보험료를 자유롭게 납입할 수 있으며 여유자금이 생기면 추가 납입을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보험 대상자가 사망할 경우 책임준비금 이외에 최대 500만원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동부화재의 ‘프리미라이프 큰별사랑보험’은 저출산 시대에 맞는 상품이다. 출산 자녀수에 따라 보험료가 인하된다. 현대해상의 ‘닥터코리아 간병보험’은 보험 만기를 100세까지로 확대하고 보장기간을 종신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100세에 치매나 활동불능 상태가 되더라도 간병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퓨전상품이 대세 = 예금과 보험, 투자를 결합한 퓨전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기존 정기예금에다 주식이나 각종 지수에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지수연동예금은 이미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건강관리, 문화 등 웰빙 서비스를 가미한 예금상품도 쏟아지고 있다.우리은행의 주가연동 복합예금 ‘e-챔프’는 원금을 주식과 정기예금에 절반씩 투자해 주식이 아무리 떨어져도 2.5%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 하나은행은 적금과 카드를 합쳐 카드사용 실적에 따라 0.3~0.6%의 추가 금리를 얹어주는 ‘부자 되는 적금’을 판매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KB시니어웰빙통장’, 외환은행의 ‘안심체크카드 정기예금’, 한국씨티은행의 ‘웰빙예금’은 금리는 일반 상품보다 다소 낮은 연 4%인 대신 종합건강검진을 무료로 해주고 검진 예약을 대행하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신한은행이 올 초 선보인 ‘탑스 세이프론’은 암 판정을 받으면 대출상환을 면제해 주는 상품이다. 국민은행이 여성 전용으로 내놓은 ‘행복드림통장’은 정기예금 3,000만원 이상 가입하면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 등 3대 암에 대해 2,000만원까지 보험금을 지급한다.▷공익투자가 뜬다 = 당초의 예상을 깨고 사회책임투자(SRI)펀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SRI펀드는 기업의 재무성과뿐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 성과를 함께 고려해 투자 대상을 선정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지속가능성이 높고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준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해 말 선보인 SH자산운용의 ‘아름다운펀드’는 설정액이 1,500억원을 돌파했다. 수익률 역시 시장평균보다 3배 가량 높은 9%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8월1일 농협CA자산운용이 내놓은 ‘뉴아너스 SRI펀드’에도 출시 한 달도 안돼 1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는 지난 8월18일부터 기업지배구조펀드인 ‘알리안츠 GI 기업가치 향상 장기주식 투자신탁’을 판매하고 있다. 이 펀드는 적극적인 주주권리 행사를 통한 기업 가치 향상을 추구한다.은행권에서 ‘공익상품’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신한은행은 ‘독도후원정기예금’을 판매하고 있다. 예치금의 0.1%를 독도경비대 위문품과 독도보존사업에 사용한다. 국민은행의 캥거루통장은 가입고객이 1,000원 이상의 금액을 기부하겠다고 신청하면 0.2%의 추가 금리를 제공한다. 하나은행은 셋째 아이가 적금에 가입하면 0.3%의 금리혜택을 주고 온라인 교육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신꿈나무 저금’을 내놓았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