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용회복제도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어요.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앞으로 (신용회복)위원회가 어려움에 처한 저소득층과 과다채무자에게 훌륭한 버팀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잘될 거라 믿고, 또 기대합니다.”한복환 금융감독원 실장은 지난 4월까지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이었다. 약 4년간의 위원회 파견근무를 마치고 최근 친정(금융감독원)에 복귀했다. 그는 카드대란을 비롯해 신용불량자 문제를 처음부터 지켜본 ‘산증인’이다. 위원회가 자랑하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계획·실행한 주인공도 사실상 그다. 지난 2002년 과대 채무자를 도와주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신용회복 문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2002년 당시 금감원 신용정보팀장으로 재직하던 중 한실장은 엄청난 민원에 속이 탔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가장인데도 불구, 과거 신용불량 기록 때문에 전세자금조차 대출해주지 않는다는 식의 안타까운 민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었다. 금융기관이 신용기록을 부정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개선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위원회 설립은 어려운 과제였다. 그의 말대로 ‘사면초가’였다. “당시 금융기관들은 내 돈을 내가 받겠다는 데 왜 그러냐고 항의가 심했다”고 전했다. 냉소적인 자세도 계속됐지만 결국 금융기관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신용불량자를 도와주는 게 빚을 받는 지름길이라고 설득한 게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임직원들에 대한 교육은 한실장이 직접 나섰다.위원회의 첫 출발은 ‘채무조정’업무였다. 부채관리는 초기에 조금만 신경 쓰면 해결이 가능한 쉬운 문제였다. 조정만 잘해주면 얼마든 자력으로 빚을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한 이들은 초기기회를 놓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채무조정만으로는 위원회의 역할이 한계에 봉착했다. 결국 문제는 소비습관이었다. 왜곡된 소비습관을 잡아주지 않는 한 또다시 빚쟁이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는 신용관리와 관련된 상담·교정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2003년부터는 기존의 채무조정기능에 상담·신용관리교육까지 아우르도록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빚을 줄여줘도 소득이 부족해 변제능력이 없는 사람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아무리 빚을 줄여줬다고 빨리 갚으라 하면 이 사람들은 어쩌나”라는 딜레마가 한실장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안정적인 생활능력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가계소득이 늘어 궁극적인 신용회복이 가능해서다. 2003년 12월 취업알선센터를 만들었다. 취업시켜 변제능력을 높인 뒤 그 여력 안에서 빚을 갚도록 했다. 지금껏 6,500명 이상이 취업에 성공했다. 12%를 웃도는 취업률은 웬만한 취업알선기관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올해 목표는 8,000명 이상이다.이게 끝은 아니었다. 한실장의 신용회복 노력은 ‘자금지원’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신용관리가 엄격해지면서 금융기관 이용이 힘들어진 한계선상의 신용불량자를 구해주기 위해서다.그의 얘기다. “없는 사람도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실직을 당하거나 아프면 생활비 자체가 없어져요. 빚을 잘 갚다가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가죠. 이들에게 거의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어요.” 문제는 재원조달이었다. 이에 대해 한실장은 “금융기관이 내거나 휴면예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자금지원 솔루션은 모든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태다.약력:1954년 청주 출생. 73년 청주상고 졸업. 78년 청주대 경영학과 졸업. 73년 한국은행 입행. 99년 금융감독원 신용정보팀장. 2002년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 2006년 한국은행 파견(금감원)실장전영수 기자 ysjeon@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