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시장. 지금 증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사상 최대, 코스피지수 사상 최고, 주가지수 선물 사상 최고, 고객예탁금 사상 최대…. 기록으로는 안 잡히지만 코스닥시장은 개장 이래 최장기간 연속 상승기록을 세웠다.증시의 신기록 돌진을 제어할 브레이크는 없다. 아니 밟아도 제동이 안된다. 미국 인텔이 낸드플래시메모리사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대형 악재는 단 하루 만에 수명을 다했다. 20포인트 급락 후 다시 급반등하면서 시장은 이 악재마저 무시해버렸다.이는 미국의 연방기금 금리인상 중단이라는 호재에 힘입었다. 미국이 금리인상 행진을 드디어 중단함으로써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 추가적인 대외악재가 없다면 국내증시는 올해 진행된 ‘1차 랠리’를 순조롭게 마무리짓고 내년에는 코스피지수 1700선에 도전하는 ‘2차 랠리’도 가능할 것이란 낙관적인 견해도 나왔다.이에 따라 까마득하게 보이던 코스피 1300, 코스닥 700포인트도 금세 손에 잡힐 듯하다. 업종이나 종목 구분 없이, 대ㆍ중ㆍ소형주가 나란히 동반상승의 대열을 형성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세장에 낙관론자들조차 놀라움을 표시하며 잇달아 목표가를 상향조정하고 있다.최근 제시되고 있는 목표가는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낯선 숫자들이 많다. 특히 코스닥의 경우 세계 주요 증시 중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하자 목표가가 주가보다 뒤늦게 상향조정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현대증권은 최근 신세계의 목표주가를 54만원으로 높였다. 11월 초만 하더라도 40만원 돌파 여부가 관심을 모았지만 한달도 안돼 50만원대의 적정가격이 제시된 것이다. 오리온도 현대증권이 처음으로 30만원대(31만원) 목표가를 불러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리온 역시 1년 전에 주가 10만원을 넘어설 당시 고평가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또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쇼크’를 뒤로 하고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70만원대로 진입할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 목표가를 75만4,000원으로, CSFB도 7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CJ, 한국, 미래에셋, 한화, 현대증권도 최근 목표가 70만원대 대열에 합류했다. 또 8만원대에 진입한 현대차는 어느새 목표가가 12만원으로 대폭 상향됐고, 연초 4만원 안팎을 오르내리던 국민은행도 8만원대 목표가 제시가 잇따르고 있다. 롯데제과와 태광산업은 178만원(교보), 104만원(CJ)이라는 아찔한 목표가가 제시된 상태다.주가가 급격히 오르고 있는 코스닥에서는 애널리스트들이 뒤늦게 ‘주가 따라잡기’에 나서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대한투자증권은 이날 영화배급업체인 CJ엔터테인먼트에 대해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부문 중심 역할을 맡을 가치주”라며 목표가를 2만4,000원으로 37% 올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사의 주가는 최근 급등하며 전날 2만원대로 올라서 결과적으로 ‘뒷북’을 치고 말았다. 또 우리투자증권은 휴대전화용 케이스를 만드는 인탑스가 기존 목표가를 살짝 넘어서자 서둘러 28% 상향조정했고, 굿모닝신한증권도 KH바텍 주가를 45%나 높이며 주가 따라잡기에 나섰다.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증시가 안정적인 상승국면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숫자와 사고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각에선 유동성만으로 장을 설명하려는 분위기가 있지만 유동성장은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승장은 기업실적(펀터멘털) 향상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코스닥시장이다. 기관의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닥지수가 개장 이래 최장 기간 랠리를 기록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지난 96년 7월 코스닥시장이 개장된 이후 처음이다. 벤처 붐으로 코스닥시장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지난 99년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전문가들은 이번 랠리가 당시에 비해 상승폭은 적지만 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코스닥시장이 수급 측면에서 개인 중심의 시장에서 기관과 외국인 중심의 시장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코스닥시장에서 개인은 순매도했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특히 투신과 보험이 코스닥시장의 최대 매수세력이 됐다. 이들은 적립식펀드와 변액보험을 운용하면서 코스닥주식을 꾸준히 사고 있다.한화투신의 김준기 주식운용팀장은 “펀드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저평가된 중소형주를 발굴하는 수밖에 없다”며 “운용하는 펀드에 코스닥종목의 편입비율이 과거에는 5% 미만이었지만 최근에는 10%까지 상승했다”고 말했다.시장 주도주도 달라졌다. 지난 1∼2월과 5∼6월 코스닥시장 랠리 때는 DMB, 바이오, 엔터테인먼트 등 테마주가 시장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 랠리에서는 성장성과 실적을 겸비한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이 동반상승하고 있다.우리투자증권 이윤학 연구위원은 “홈쇼핑, 유통, 항공, 인터넷 등 내수에 기반을 둔 종목들이 상승장을 주도하고 있다”며 “내수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코스닥시장의 상승세는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미국의 나스닥이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기술주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는 점도 최근 코스닥시장의 강세 원인으로 꼽힌다. 대신증권 함성식 연구원은 “정보기술(IT) 업황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단기급등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시장의 강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전문가들은 99년 랠리 이후 코스닥시장이 장기 상승세에 접어들면서 지수가 2000년 3월10일에 사상 최고치인 2834.40을 기록했듯이 이번 랠리도 추세적 상승의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교보증권 박석현 연구원은 “향후 경기전망이 낙관적인데다 수급상황도 좋아 단기조정 여부와 관계없이 추세적 상승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연말까지 700선까지는 무난히 오르고, 내년 상반기까지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실적과 수급이 뒷받침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와 환율 등 거시변수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한화증권 이영곤 연구원은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단기적인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며 “실적이 호전되는 인터넷, IT부품, 내수관련주와 배당주 등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코스닥시장에 ‘뉴페이스’ 외국계 펀드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펀드 오브 헤지펀드’인 갬(GAM)이 지난 11월21일 홍콩계 자산운용사인 갬홍콩리미티드를 통해 호스텍글로벌 지분을 취득하며 국내 상륙을 신고했다. 갬홍콩리미티드는 갬런던과 갬뉴욕 등의 국내 투자대행을 맡고 있다.국적을 케이맨군도라고 밝힌 올림퍼스그린홀딩스도 같은 날 인선이엔티 지분 12.09%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들 두 펀드 모두 국내시장에서 지분취득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동안 국내시장을 외면했던 외국계 펀드들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지난 2003년 대한통운 주식 매매로 큰 차익을 챙겼던 룩셈부르크계 펀드인 픽텟에셋은 최근 우리조명 지분 7.14%를 취득했다. 퍼시픽얼라이언스도 코리아텐더 지분을 매입하며 2년여 만에 코스닥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펀드는 지난 2003년 9월께 HK상호신용금고를 매각하면서 국내시장에서 자취를 감췄었다. 또 미국계 펀드라고 밝힌 OZ매니지먼트는 9월 이후 넥스트인스트루먼트와 제넥셀세인, 벨코정보통신 등의 CB(전환사채)를 취득하며 코스닥시장에 발을 내디뎠다.증권업계에서는 이들 대부분이 단기성 헤지펀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내기업이 발행한 해외 CB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취득하고 있다. 올림퍼스그린홀딩스와 퍼시픽얼라이언스 등의 경우 BW를 매입한 후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확보했다.OZ매니지먼트도 철저하게 CB 위주의 투자를 하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피터벡파트너스, 애머런스, DKR오아시스 등 해외 CBㆍBW 전문 펀드들이 코스닥의 CBㆍBW 투자로 쏠쏠한 재미를 보자 다른 외국계 CBㆍBW 펀드들도 앞다퉈 코스닥시장에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