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의 성공은 한국의 실력을 보여주고 한류문화는 한국의 매력을 입증한다.”최근 한류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이 중국 극작가의 입을 빌려 평한 내용이다.중국에서 지금 ‘신한류’(新韓流)가 화두다. 지금까지의 한류는 댄스그룹 HOT,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등 특정 연예인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주도했으나 이제는 대중과 전통을 포함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부러움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전환점이 된 것은 후난성 위성TV를 통해 지난 9월부터 중국 내 전파를 타고 있는 <대장금>이다.후난 위성TV가 1,000만위안(약 12억8,000만원)에 수입해간 MBC 드라마 <대장금>은 매일 2회씩 방영되며 24개 중국 성과 시에서 시청률이 10%를 넘었다. 10시 이후에만 외화 방영을 허용하는 중국 방송문화법에 따라 매일 심야에만 방송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폭발적인 인기다. 공산당 최고권력자들도 공개석상에서 <대장금>을 거론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월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났을 때 이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면서 “안타깝게도 바빠서 매회 보지는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과 우방궈 전국인민대표회의(국회) 의장이 또 다른 공개석상에서 “한국드라마가 재미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본다”고 말한 것이 언론을 통해 중국과 한국에 알려져 화제가 됐다.베이징에서는 한국요리 배우기가 인기를 끌고 창춘시에서는 신부들이 대장금 의상을 입고 웨딩촬영을 한다. 홍콩에선 <대장금> 방영 이후 인삼과 동충하초 판매가 두 배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중국 내 한류 현상에 대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이병민 정책팀장은 “수출액 자체는 많지 않아서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총액이 크지 않은 이유는 높은 값을 부를 수 있는 대작 영화의 경우 일본에 주로 팔리고 중국이 사가는 것은 음반과 드라마 위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가 2002년 초 중국에서 개봉돼 큰 인기를 얻은 이래 이렇다 할 대형 후속작이 없다.그 원인 중 하나는 한국영화 DVD가 싼 값에 유통되기 때문이다. 이중 90%가 불법복제다. TV드라마는 후난 위성TV가 <대장금>을 사갈 때 1,000만위안을 지불한 것이 이례적이고 대부분은 수출액이 크지 않다. 한국무역협회 2003년 통계 기준으로 중국에 수출된 한국 문화콘텐츠 중 절반이 음반이었고 38%가 방송, 영화는 11%에 불과했다. 당시 총수출액은 1,638만달러(약 170억원)였다.이렇게 미미한 금액이 한류의 실체라면 <아주주간>은 왜 ‘신한류’를 커버스토리로 다뤘을까.한국드라마의 대중국 수출은 97년 MBC <사랑이 뭐길래>가 시초다. 이후 한국드라마의 중국행은 꾸준히 이어졌다. <아주주간>은 수십개의 중국 방송사가 2003∼2004년 총 359편의 한국영화와 한국드라마를 방영했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의 안방극장은 한국드라마에 완전히 점령당한 분위기다. <대장금> 방영 이후 중국 지역방송사간에 한국드라마 편성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한국드라마, 중국안방 점령베이징중앙TV가 한국에서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를 벌써 수입해 내보내고 있고 중앙TV는 최수종ㆍ채림 주연의 드라마 <저 푸른 초원 위에>를, 싱콩 위성TV는 장보고 이야기를 다룬 KBS 사극 <해신>을 방영하고 있다. 박신양ㆍ김정은 주연의 <파리의 연인>은 상하이교육TV를 통해 전파를 타고 있다.드라마를 주축으로 한 한국영상물은 현재 중국에서 방송되는 외화 중 80%를 장악했다. 중국에선 한국드라마의 경쟁력에 대해 “연인, 가족, 친구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의 감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장훙제 중국작가협회회원)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상품광고에서도 한국배우들을 수시로 대면한다. 특히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 이후 중국에서 ‘동방 제일 미녀’, ‘광고의 여왕’ 등의 별명을 얻으며 라네즈 화장품, VK 휴대전화, 팬틴 샴푸, 올림푸스 카메라 광고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한류 열풍은 서점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장금>은 드라마가 전파를 탄 후 중국어판 소설로도 출간, 초판 3만권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바로 같은 물량의 2쇄를 찍었으나 금세 동났다.우리나라에서 52%의 시청률 기록을 세운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드라마가 수출되기도 전에 상하이인민출판사가 지난 8월 중국어판 소설로 출간, 두 달 만에 5만권을 팔았다. 상하이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귀여니(본명 이윤세)의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도 중국어판으로 출간돼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의 온라인게임은 지난해 말 중국시장에서 75%의 점유율을 기록한 데 이어 신한류를 타고 계속 선전하고 있다.<대장금>이 일으킨 ‘신한류’의 경우 HOT가 만든 ‘한류’ 때보다 폭넓은 연령층에 어필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도 세력은 16∼25세의 중국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한국식 화장법, 패션, 헤어스타일을 유행시키는 주체이기도 하다. 최근 산시성 지역신문 <산시만보>는 10∼20대들이 미용실에서 10∼20%의 웃돈을 주고 한국식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고 있으며 이영애를 본뜬 성형수술도 인기라고 전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내에서 반감이 없을 수 없다. ‘반한류’(反韓流) 움직임이다. 중국드라마 제작진과 배우들이 공개석상에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배우 장궈리는 최근 “중국이 발명한 침술을 한국이 <대장금>을 앞세워 저희들 것인 양 선전을 하고 있는데도 중국인들은 마냥 좋다고 한다”며 “중국인들은 우리 드라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한국드라마에 대해선 관대하기만 하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중국 방송국들이 경쟁적으로 한국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매국행위와 다름없다고 거침없이 말한다.지난 여름 상하이에선 20명의 유명 TV제작자들이 모여 중국 TV드라마의 소재발굴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각 방송사들이 ‘무분별하게’ 한국드라마를 내보내면서 중국드라마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한국드라마 방송량을 줄이라는 것이다.중국드라마 제작자들은 한국드라마의 제작 수준, 의상, 소품들이 중국의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좋다는 사실은 인정지만 이를 근거로 한국드라마를 폄하하기도 한다.실력이 아니라 돈 문제일 뿐이어서 중국 방송계의 자금 수준이 개선됨에 따라 한국드라마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가한 중국드라마영상물제작센터(中戱影視製作中心) 소장 옌 젠강은 “한국드라마의 1회당 제작비용이 120만∼200만위안에 달하는 데 반해 중국은 30만∼40만위안인데도 비용 대비 우수한 품질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면서 “한류는 몇 년 못갈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문화콘텐츠의 막대한 영향력을 무시한 궁색한 논리다.상하이의 리서치회사 링덴(零點)조사가 지난 7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서 16∼17세 938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그 결과 설문 대상의 80.9%는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 또는 ‘좋아하는 편이다’고 대답했다. 74%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이 있고, 58%는 한국노래를 들어봤다. 43%는 집에 한국산 가전제품이 하나 이상 있다고 답했다.이것이 ‘신한류’의 본질이다. 한국의 영화, 드라마, 노래, 게임을 수시로 접하며 자란 이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반적으로 우호적이다. 이들이 가정 내 구매결정권자로 성장하면 가격과 품질이 문제되지 않는 한 한국상품을 주저 없이 선택할 것이다.장기적인 성과를 감안할 때 한국이 99년 제정한 문화산업촉진법은 가장 성공한 국가정책 중 하나다. 문화관광부는 이후 문화, 오락, 콘텐츠산업 진흥을 목표로 내걸어 2001년 문화콘텐츠 진흥원을 설립하고 문화산업기금도 조성해 한국문화상품이 국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왔다.지난 6월 발표한 ‘제2차 관광진흥 5개년 계획’(2004~2008년)에서는 한류를 관광수입 증대에 이용하기 위해 중요 사업목표 중 하나로 ‘문화비전-창의한국’을 제시했다. 중국 베이징과 미국 뉴욕 등에 ‘코리아센터’를 건립하고 2010년까지 전국에 10개 전통문화산업단지와 2개의 종합문화산업단지를 만든다고 한다.한국의 2004년도 전세계 문화콘텐츠 수출 총액은 4,000억원이 채 안되지만 이미지 홍보와 수출증가 등 간접적인 경제효과를 합하면 실이익 4조~5조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