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5일 미국 전역의 49개 도시에서는 매우 독특한 콘서트가 동시 다발로 일제히 개최됐다. 뉴욕, 마이애미, 시카고 등의 도심 콘서트홀에서는 유명 가수들이 등장해 흥겨운 음악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관객들도 흥에 겨워 다같이 춤을 췄다. 도대체 무슨 날이었을까.미국의 대표적 담배 브랜드인 말보로가 탄생 50주년 기념행사를 벌인 것이다. 말보로를 생산하는 담배 제조업체 필립모리스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판촉행사를 벌였고, 대단원의 마지막을 가수들의 화려한 공연으로 끝맺었던 것이다.흡연에 대한 나쁜 인식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담배 소비도 크게 줄었지만 말보로는 나름대로는 생존전략을 발견했다고 자축했다. 수십년 동안 미국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로 평가되는 말보로는 올해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지난 1998년 이후 담배광고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가 한층 강화됐고, 2002년부터는 주정부 차원의 과중한 소비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말보로는 1위 업체로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한층 소비자가 급감한 시장상황에서도 말이다. 각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 갑당 3달러28센트에 팔리고 있는 말보로는 미국 전체 담배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몇 년 전보다 시장점유율이 2.5%포인트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어려운 시장상황 속에서 말보로 브랜드의 약진은 모회사인 필립모리스에 적잖은 기쁨이 됐다. 버지니아슬림, 팔리아먼트 등 다른 담배 브랜드도 함께 생산하고 있지만 필립모리스에 있어서 말보로는 ‘부동의 대표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필립모리스는 말보로 브랜드 덕에 연간 2억달러 이상의 추가적인 순익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사실 지난 수십년 동안 말보로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마케팅을 펼쳐온 게 사실이다. 시카고 소재 광고업체인 레오 버네트가 주도해 온 말보로 광고는 대형 옥외 광고판은 물론 TV와 잡지 등에서 일관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고객들에게 ‘강한 서부 사나이’란 이미지를 심어줬다. 말보로는 거칠고 강한 카우보이가 자유를 만끽할 때 즐기는 담배라는 이미지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담배광고를 금지하는 법률이 잇따라 제정되고 시민단체들의 금연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활발해지면서 말보로는 색다른 마케팅 기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이른바 ‘구전’(口傳ㆍBuzz) 마케팅’이다. Buzz란 영어단어로 벌레가 윙윙거리는 소리나 웅성거림을 뜻한다. 이 단어는 소문, 풍문이란 뜻으로도 해석된다.말보로는 고객의 제품충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핵심 고객층만을 대상으로 유명 가수들의 라이브콘서트를 열었고,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할인행사도 실시했다. 말보로 고객만을 위한 인터넷 채팅방도 개설했을 정도다. 이 같은 소식은 마치 벌레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흡연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고, 말보로를 구입하는 소비자수도 덩달아 급증할 수 있었다.필립모리스는 말보로 브랜드를 선전하기 위해 얼마나 자금을 투입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년 이 회사의 광고비용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퍼부으며 공격적으로 광고에 전념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사뭇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에 따르면 지난 2003년 미국 내 담배 제조업체들이 광고비로 지출한 금액은 무려 15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02년 대비 무려 21%나 늘어난 규모다.다른 담배 제조업체들이 광고비만 늘리고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이에 말보로가 약진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주도면밀한 고객관리 기법 때문이다. 말보로는 자체적으로 확보한 미국 내 2,600만명의 흡연자들에게 생일축하 할인쿠폰을 발송하거나 각종 콘서트에 무료 초대하는 등 고객과 한층 가까운 ‘밀착 마케팅’을 펼쳤다. 이런 이유로 말보로 브랜드를 사랑하는 고객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말보로 문화’에 젖어들게 됐고, 흡연을 제한하는 법률이 강화될수록 말보로 브랜드 고객들이 다함께 희생자가 됐다는 동료의식마저 느끼게 됐다.브랜드 탄생 50주년이 되던 날 말보로 고객들은 다양한 경품추첨권이 담긴 책자를 선물받았다. 지포 라이터 등 평소 자신들이 갖고 싶어 하던 상품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사실에 이른바 ‘말보로 신봉자’(Marlboro Faithful)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갖게 됐을 정도다.미국 내 고객들은 말보로를 구입할 때마다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으며,적립금이 쌓이면 현금으로 되돌려 받을 수도 있다. 회사측은 일부 고객들을 몬태나에 있는 담배농장으로 초청해 환대를 했다. 말보로의 몬태나 농장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코스요리, 말 타기, 스노모빌 타기, 마사지 등을 무료로 즐겼다. 한마디로 말보로 농장 체험은 고객들의 마음속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잡게 된다.말보로의 이 같은 마케팅 기법을 경쟁업체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올해 나이 30세의 인테리어 기술자인 마이클 톰센은 “말보로 이외의 다른 브랜드 담배를 피워보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일날 필립모리스로부터 말보로의 몬태나 농장에 초청하겠다는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뻤다”며 “말보로의 섬세한 마케팅 기법은 자연스럽게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필립모리스는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적극적으로 활용, 말보로 고객들끼리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수수께끼를 맞히는 고객들에게 상품을 보내주거나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지원, 말보로 고객들끼리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을 다각적으로 마련해 준다.필립모리스의 이 같은 전략은 마치 바이러스가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바이러스 마케팅’(Viral marketing)이라고 불리고 있다.필립모리스가 이처럼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시행할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 98년 담배광고와 관련해 소송에 휘말렸고 결국 패소해 신문, 잡지, TV 등 전통적인 방법의 광고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회사측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이제 말보로의 마케팅 기법은 제너럴모터스(GM), 아우디 등 다른 기업들이 모방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기업들은 회사명보다는 제품 브랜드를 더 내세우기 시작했고 제품마다 독특한 이미지와 문화를 형성시키기 위해 고객들의 커뮤니티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실제로 말보로의 마케팅 기법은 영업실적에서 더 잘 나타난다. 메릴린치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필립모리스는 올해 국내외에서 무려 663억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순익도 114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내년도 필립모리스의 영업마진율은 2004년보다 2%포인트가 높아진 28%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마진율은 제너럴일렉트릭(GE), 엑슨모빌, 프록터앤드갬블(P&G) 등 이른바 잘나간다는 기업들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그렇다고 필립모리스가 무조건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다. 미 법무부는 “필립모리스가 말보로 고객의 DB를 활용하면서 인위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권유한 정황을 포착했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다른 담배 제조업체들의 도전도 만만찮다. 이들 업체는 “정부의 담배광고 금지 법률이 시장점유율 1위인 필립모리스만 도와주고 있는 형국”이라며 “필립모리스가 미국시장에서 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후발업체들에는 광고기법상 어느 정도 예외조항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담배를 피우는 것은 물론 건강에 해롭다. 하지만 어려운 시장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생존법을 찾아낸 말보로 브랜드의 마케팅 기법은 한 번쯤은 배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