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맵다? 작은 것이 잘 팔린다!’거리에 나가 보면 젊은 여성들의 미니스커트 차림이 한창 눈에 띈다. 부츠의 유행과 더불어 ‘미니’가 거리를 장악한 까닭이다.그리고 최근 국내외 시장을 장악한 것은 한국의 미니제품들이다.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매출 ‘성적표’를 보여주며 일명 ‘스마트 소비자’를 유혹하는 대표적인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미니의 대표주자 MP3플레이어(이하 MP3)는 ‘메이드 인 코리아’ 깃발을 휘날리며 수출역군의 몫을 든든히 하고 있고, 기능은 줄이고 가격을 낮춘 미니가전은 불경기에도 젊은 주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대형포장 일색이던 스낵ㆍ드링크류에도 초소형 포장 바람이 불고 있다.이들은 정말 작게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승승장구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미니제품으로 당당히 살아남기 위해 이들 제품 뒤에 어떤 노력이 숨겨져 있을까.당당히 한국시장을 뛰어넘어 전세계 소비자의 시선이 집중되는 한국의 대표 미니상품은 MP3다. 겨우 50g 남짓 되는 무게의 이 작은 제품들은 최근 각광을 받는 제품 블로그 사이트인 Gizmodo, Engdget, E4u 등을 통해 시시각각 정보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같은 제품 정보잡지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한국 MP3업체의 신상품 소식이다. 최근 세계적인 IT미디어그룹인 IDG 소속의 IT잡지인 의 도쿄지국장은 ‘Tokyo Edge’라는 신제품 소개 코너를 이름은 그대로 두되 한국제품과 기타 아시아에서 나오는 제품을 소개하는 코너로 확장ㆍ변경했다. 하이테크 제품이 일본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한국의 MP3나 휴대전화야말로 전세계적으로 앞서가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보통신기기 수출액은 전년도에 비해 29% 늘어난 442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중 MP3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한 4억8,000만달러였다.특히 대표적인 MP3업체 레인콤은 지난 10월 말 국내업체로는 드물게 중동ㆍ아프리카 신시장을 개척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레인콤은 아랍에미리트의 샤라프그룹과 3년간 1억1,700만달러(약 1,230억원) 상당의 MP3 수출계약을 맺었다. 대수로 90만대(연간 평균 30만대)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계약에 따르면 샤라프그룹은 오는 2008년 말까지 아이리버 제품을 중동과 아프리카지역에 팔게 된다. 레인콤은 지난 8월 인도시장에 본격 진출한 데 이어 이번 중동 진출과 함께 남미시장 개척에 나서는 등 신시장 개척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셈이 됐다.지난해 이 회사의 전체 판매량 280만대(4,540억원) 중 해외 판매량은 180만대(2,740억원)로 수출비중이 무려 60%가 넘는다. 국내외 판매량이 400만대 안팎으로 예상되는 올해 역시 수출비중은 60~70% 수준이 될 전망이다.이렇게 조그마한 제품이 ‘대한민국 수출역군’으로 떠오른 데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더 좋은 것을 요구하고 이전에 비해 더욱 합리적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데서 그 배경을 찾고 있다.이기봉 레인콤 마케팅 부문 세일즈 그룹장은 “아이리버가 해외에서 주목받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격과 디자인, 브랜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국내외 소비자를 가리지 않고 고객의 감성을 파고든 점도 유효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최고, 최초가 되기보다 고객이 진정 원하는 부분을 중시 여긴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노력이 결국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한국의 ‘미니’를 각인시킨 셈이다.그렇다면 이제 대표선수 MP3의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시장으로 눈을 돌려 ‘미니’제품의 성공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니’라는 제품 컨셉은 디자인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고정관념을 깨는 작은 모양은 신감각의 디자인으로 평가돼 젊은 고객을 사로잡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LG생활건강은 올해 ‘럭키스타’라는 프리미엄 치약을 내놓았다. 지난 6월에 나온 이 제품은 지난 10월부터 TV전파를 타기 전까지 특별한 광고 없이도 매월 2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화장품 용기를 연상케 하는 과일무늬 포장으로 된 이 제품의 용량은 50g. 일반치약의 3분의 1도 안되는 크기로 실제 ‘핸드백에 넣고 다니기 좋다’거나 ‘용기가 예쁘다’는 게 이 치약 구매자들의 반응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가격은 2,000원으로 일반치약의 3~4배에 달하지만 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이 제품은 개발단계에서부터 10~20대를 겨냥한 것이어서 실제 타깃과 소비층이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에 대해 김춘구 LG생활건강 퍼스널 케어 마케팅부문 상무는 “성숙단계에 접어든 치약시장에서 범용치약으로는 더 이상 매출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특정 타깃을 겨냥, 그들의 취향에 맞춘 치약의 상식을 뒤집은 럭키스타치약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디지털기기의 판매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비자의 감성을 따라간 전략의 하나로 ‘미니’가 차용된 셈이다.지난 2003년 처음 등장한 현대카드의 미니카드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 2003년 8월 기존 신용카드와 기능은 같으면서도 기존의 절반 크기인 ‘미니M’을 선보였다. 미니카드는 일반 신용카드 규격 ‘85×54’(가로×세로, 단위 ㎜) 대비 약 57% 크기(66×40)로 ‘신용카드는 반드시 지갑에 넣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또한 이 제품은 키홀더나 휴대전화줄, 목걸이 등에 끼워 다니는 등 개성 있는 연출이 가능하다는 게 회사측의 주장이다. 따라서 미니카드가 걸려 있는 휴대전화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젊은 고객에게 적당하다는 것이다.그리고 판매 개시 후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제품은 회사측의 예상대로 20~30대 젊은 고객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특히 디자인을 중시하는 여성고객에게 인기가 많다는 설명이다.올해 GS홈쇼핑에서 처음 선보인 전기오븐 ‘키센’은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이 제품은 GS홈쇼핑이 자체 기획한 것으로 일반 가스오븐의 5분의 1 크기에 가격은 3분의 1 수준인 전기오븐이다. 이 제품의 첫 방송이 있던 날 스튜디오 분위기는 매우 회의적이었다는 게 회사측의 말이다. 많은 스태프들이 “저렇게 작은 게 오븐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오븐이 팔리겠어?”라며 전기오븐의 시장성에 의문을 가졌다는 얘기다. 이미 상당수의 가정이 가스오븐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고급 가스오븐이 빌트인으로 설치돼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팔리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품은 첫 방송부터 준비수량 1,500대가 모두 팔려나갔다. 지난 봄 이후 11월 초까지 5만여대, 70억원어치가 판매됐고 방송 1회당 평균 1,500대를 소화하고 있다. 지난 11월6일에는 1,700대를 팔아 높아져가는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회사측의 분석에 따르면 이 제품은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낸 상품이다. 최근 전기오븐은 좁은 공간을 좀더 넓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공간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방가전의 미니 바람을 주도하는 히트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권재우 GS홈쇼핑 MD는 이와 관련, “최근 주방가전의 트렌드는 ‘웰빙, 간편, 다기능’ 세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키센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기존의 가스오븐에 비해 작고 저렴한데다 간편하면서 여러가지 기능을 지원, 다양한 건강식 조리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IT업계의 트렌드 역시 단연 ‘슬림화’, 즉 미니 바람이다. 특히 대표적으로 휴대전화 단말기에 불붙은 슬림화 경쟁은 ‘1㎜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치열하다. 특히 올 상반기에 모토롤라가 폴더형 단말기로 슬림폰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면 최근 경쟁이 치열한 ‘초슬림 슬라이드폰’ 경쟁은 삼성, LG 등 국내업체들의 대결구도다.그런데 슬림폰 경쟁에서 알 수 있는 미니전략의 포인트는 다른 제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소비자의 감성을 읽는 것은 물론 기술력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슬림폰은 ‘카메라폰 → MP3폰’의 트렌드를 잇는 가장 최신의 IT시장 트렌드로 신제품 수용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 공략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문제는 슬림화가 ‘기능의 슬림화’, 즉 기능 축소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단말기와 같은 IT기기 소비자들은 특히 제품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에 능하기 때문에 최고의 기술을 동반하지 않는 단말기 슬림화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 한두 가지의 기능이 생략된 휴대전화 단말기 제품의 경우 신제품 리뷰사이트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또 소비자들은 이미 신제품의 가격 견적까지 낼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어 오직 기술력만이 슬림폰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덧붙였다.결론적으로 이 같은 ‘미니’의 유행은 디자인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스마트소비자’들의 ‘펀(Fun)소비’, 즉 즐거움을 위한 소비경향에 잘 부합된 경우에만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연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싱글족,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 사회적인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소형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또한 스마트 소비가 확산되면서 미니제품 판매도 크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컨버전스 기능이 중시되던 디지털가전에서도 최근에는 미니가 트렌드”라며 “특히 디지털 제품의 경우 기술력의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돋보기 / 외산 가전의 반격‘작은 것이 새 시장 개척의 힘’해외 가전업체들이 삼성, LG 등 토종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가전시장을 뚫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제품군의 특징도 역시 ‘미니’다. 그동안 저마다 자국에서 검증된 다양한 제품을 한국시장에 선보여왔던 해외업체들은 국내 가전업계의 틈새시장인 ‘소형가전’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고 있다.유럽의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일렉트로룩스의 경우 세계적인 백색가전업체지만 한국에서는 백색가전보다는 진공청소기나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등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한국 소비자들의 구매성향과 선호도에 부합하는 대형제품을 생산하는 삼성, LG의 백색가전 시장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따라서 이 업체는 한국시장에서만은 백색가전 제품 대신 진공청소기(옥시즌ㆍ울트라 사일런서 등)나 로봇청소기(트릴로바이트 2.0), 스팀청소기, 코드리스 청소기(에르고라피도), 공기청정기 등 거실가전 제품이 대표제품이다. 특히 진공청소기는 20~30대 젊은 주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이 업체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으면서 단기간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콤팩트오븐, 커피메이커, 바비큐그릴, 토스터기 등 소형 주방가전 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도시바코리아 역시 별도 사업부까지 신설하고 한국 디지털TV 시장에 진출했지만 최근 이 사업부를 철수하고 노트북PC시장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다. 특히 도시바코리아는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한 노트북 대표업체답게 지난 7월 7.2인치 와이드 미니 노트북PC ‘리브레또 U100’을 선보이기도 했다. 필립스전자의 경우 지난해부터 TV홈시어터, 오디오, 비디오, 모니터 등 AV가전의 비중을 줄이고 소형가전과 조명, 반도체, 의료장비 등의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마쓰시타의 한국법인인 파나소닉코리아는 기존의 디지털 가전제품보다 디지털카메라와 MP3플레이어 등 소형 디지털제품에 집중할 방침이다.이 같은 해외 가전업체들의 트렌드에 대해 박갑정 일렉트로룩스 사장은 “그동안 국내 가전업체들은 한국인의 음식문화인 ‘저장과 보관’이라는 특성에 맞게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등의 ‘저장고’ 개발에 힘써 왔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쿠킹’을 위한 소형가전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서 “최근 우리나라도 가족들을 위해 간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는 문화가 시작되면서 소형가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을 볼 때 소형가전 시장은 앞으로 더 큰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