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의 흐름을 천천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하다. 좀더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과거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1990년대 말, 새천년을 준비하던 5~6년 전만 하더라도 미래지향적이고 절제된 미니멀 라인이 주류를 이뤄 흰색 셔츠에 블랙 팬츠, 그리고 프라다 가방만 들면 멋쟁이로 불리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몸짱’이 아니어도 멋 내기가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로맨티시즘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옷에서부터 리본과 레이스, 러플 장식 등이 등장하면서 어느새 지금은 60~70년대의 패션 코드가 대세가 됐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다시 젊어져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이제는 이러한 촌스러움이 배어 나오는 ‘빈티지’풍이 남자들의 패션에도 강세임을 알아차리자.얼마 전 모 광고에서 2대8의 가르마를 탄 이 시대의 패션 아이콘 ‘조인성’이 60년대 가수 나 입음직한 더블 브레스티드(양복 단추가 더블로 양쪽에 붙어 있는) 슈트를 쫙 빼입고 나온 것을 기억하는가. 또한 70년대 복고풍을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멋지게, 그리고 아주 세련되게 스타일링하고 있는 SBS 드라마 <패션 70’s>를 본 적이 있는가. 모두가 과거의 무드를 현대적으로 적절히 재해석하는 데서 많은 패션 관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이 드라마 속 두 남자 주인공은 70년대 남자패션의 극과 극을 드라마틱하게 잘 보여주고 있어 두 가지 스타일을 잘만 응용한다면 평일과 주말의 스타일 대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 보좌관으로 허튼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바른생활’의 터프가이 주진모. 그는 드라마에서 70년대 대표적인 남성복 스타일인 ‘컨티넨털룩’(몸에 딱 붙는 실루엣이 특징)을 입되 멜빵(서스펜더)이나 조끼 등을 적절히 활용해 제복의 느낌을 살렸다. 특히 컬러는 주로 블랙과 화이트인 무채색 위주로 선택해 자칫 평범해 보일 수도 있으나 허리폭이 타이트한 셔츠를 입어 날렵해 보인다. 셔츠의 몸통 사이즈 하나만으로도 세련됨을 은근히 과시할 수 있는 룩이다. 이런 착장은 평소 옷을 못 입거나 패션 센스가 없어 무엇을 입어도 태가 안 나는 사람들 혹은 배가 좀 나왔어도 아주 그만이다. 당장 뉴욕에서 찍은 화보 속에서 걸어나온 모델같이 세련돼 보이기 쉬우니 반드시 시도해 보자. 잊지 말자. 무채색에 몸통이 약간 낀 듯한 화이트셔츠의 매치를.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정명의 패션은 그야말로 70년대 ‘폼생폼사 양아치’ 스타일 그 자체. 70년대 유행했던 히피ㆍ펑크룩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 천정명은 사실 올해 TV 속의 진정한 패션리더다. 물론 스포츠에 가까운 그의 짧은 머리는 다소 90년대의 스트리트 패션 느낌이 나지만 (실제로 70년대 스타일은 머리가 아주 긴 장발이어야 한다) 그가 항상 쓰고 나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공군 스타일의 ‘레이방’ 선글라스가 시대 불명의 그의 헤어스타일을 적절히 커버해주고 있다. 선글라스뿐 아니라 그는 70년대 히피풍의 목걸이나 팔찌 등 다양한 소품 등을 과감히 걸치고 등장한다.남성들도 액세서리에 과감할 수 있는 이러한 천정명의 룩을 잘 응용하면 주말에 잘나가는 클럽이라도 당장 갈 수 있을 정도로 멋진 트렌드 세터가 될 수 있다. 다만 몸이 좀 받쳐주는 사람만이 가능한 화려한 꽃무늬셔츠, 딱 달라붙는 판탈롱, 여자도 소화하기 힘든 크롭트 팬츠(7부바지), 과감하게 큰 버클 벨트 등의 아이템들은 좀 난이도가 있지만 면 티셔츠로 튀어나온 배를 그대로 노출시키기보다는 (운동해서 뺄 때까지는) 자신의 배가 살짝 들리는 정도의 사이즈의 긴팔 셔츠를 입고 소매를 두어 번 걷어 올린 후 평소와는 다르게 천정명처럼 위 단추를 두세 개만 풀어보자. 50년대 할리우드 스타 ‘제임스 딘’의 클래식하며 섹시한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섹시함이란 자연스러운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야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으므로 만일 자신에게 이러한 복고적인 섹시 히피룩이 어색하다면 아쉽지만 상대방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 대신에 ‘빈티지’ 복고풍보다는 ‘트래디셔널한 룩’으로 편안하면서도 지적인 섹시함으로 승부하자. 이런 클래식한 룩은 시대를 초월해서 언제나 전세계 남성들의 지지를 받는 룩인데, 해마다 매치 방법이나 컬러가 조금씩 변하면서 재미를 주고 있다. 가을을 미리 예감하고 싶다면 이런 클래식한 스타일링을 시도해 보자. 자칫 진부하고 촌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서구에서는 ‘랄프 로렌’이나 ‘말보로 클래식’처럼 컨트리스타일로 뿌리 깊은 전통적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통 패션코드다. 따라서 이제는 클래식한 트래디셔널룩을 단순히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적인 섹시룩쯤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스트라이프나 다이아몬드의 사각형 체크무늬인 ‘아가일’ 체크 패턴은 특히 다가올 시즌에 아주 강세이니 반드시 한 벌씩 구비해 둬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옷장을 한 번쯤 정리하는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라. 유사한 제품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 시즌의 스트라이프나 아가일 체크는 매우 강렬한 컬러로 새로워지고 있다. 패턴은 그대로인데 컬러가 그 어느 해보다도 원색적으로 밝다. 예를 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산뜻한 느낌이 나는 노티카의 원색 스트라이프 셔츠나 라코스테의 원색적인 아가일 체크 패턴의 니트웨어 등은 긍정적이면서도 지적인 남성미로 당신을 더욱 섹시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성차별적 발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여자는 남자가 원하는 옷을 입는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선택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제 남자도 여자에게 뽑혀야 사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남성들이여, 선택받으려면 섹시해져라! 느끼하게 노출이 많은 것이 섹시함의 전부는 아니다. 필자의 충고대로 올 시즌에는 자신의 옷장에서 잠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빈티지풍의 아이템이나 오래된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승부해 보라. 대신 새로운 아이템을 업데이트하는 센스와 투자도 잊지 말자. 옛것과 새것의 적절한 믹스매치의 조화를 아는 당신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것이다.다가올 시즌에는 더욱 밝고 더욱 경쾌한 색상을 선택하라. 자신의 나이보다 5살 어리게 입어라. 그리고 예전의 클래식스타일이 약간 헐렁하게 입고 여유 있는 느낌으로 연출했다면 올 시즌에는 그 위에 외투를 약간 타이트한 느낌으로 입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라. 복고적이면서도 2005년의 모던한 스타일링을 항상 염두에 둬라. 촌스러운 자연스러움을 잃지 마라.지난 2005 F/W 컬렉션에서 디자이너 장광효는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모델에게 상의는 클래식한데 하의는 모던한 스타일을 선보인 바 있다. 10여년 전에는 유행과 그 시즌의 트렌드가 무엇인지 시즌 컬렉션마다 아주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지금 패션계는 시즌의 경계가 무너진 채로 자유롭고 가벼운 다양성을 인정한다. 클래식과 모던의 조화, 빈티지와 미래적인 첨단소재의 결합 등 극과 극이 서로 만나 새로운 룩을 각자의 개성에 맞게 연출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옷을 잘 입으려면 유행이나 경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옷을 활용하는 것이 노하우예요. 요즘은 옷의 컬러를 조화시키지 않는 ‘생뚱맞은’ 의상들도 자신감 있게만 입으면 유행이 됩니다. 특히 남성들은 정장을 입을 때 격식을 따지지 말고 캐주얼한 감각을 살리면 최고의 멋쟁이가 될 수 있죠.” 이쯤 해서 패션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디자이너 장광효씨의 조언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만하다.올 가을 당신의 옷이 약간은 촌스럽다 느껴지는 순간 당신은 섹시한 남자이며 트렌드 세터다.황의건ㆍ(주)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