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저녁 책 속에 빠져 … 저자로부터 지혜와 삶의 향기 경청

2005년 5월2일 오후 7시 서울 중림동의 한 건물. 한 주를 여는 월요일 저녁에 정장차림의 깔끔한 신사, 숙녀 50여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조용히 들어와 강의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는 사회 각계의 저명인사가 적지 않았다. 백낙환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 신평재 교보생명문화재단 이사장, 이상헌 금융결제원 원장 등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을 월요일부터 한자리에 모이게 한 이 모임은 바로 경영자독서모임(Management Book SocietyㆍMBS)이다. 모임명 그대로 ‘경제ㆍ경영분야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모임’이다. 단순히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의 저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저자의 강의를 통해 책 한권을 입체적으로 꿰뚫겠다는 취지다.지난 1995년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주축이 돼 만든 이 모임은 10년째 맥을 이어오며 규모를 키우고 있다. 모임을 진행하는 주최는 산업정책연구원(IPS)으로 원활한 모임운영을 위해 회비를 받고 있다. 6개월에 120만원인 적지 않은 회비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출석하려는 사람은 날로 늘어간다.5월2일 첫 강의를 시작해 6개월간 진행될 20기 MBS에 등록한 출석회원은 100여명. 바쁜 일정 때문에 결석하는 회원도 있지만 늘 50여명 이상은 출석한다. 시간관계상 모임에는 참석할 수 없지만 저자의 강의를 녹음테이프와 교재로 받아보는 ‘통신회원’ 또한 200여명에 이른다.첫날 강의는 <문제는 항상 부모에게 있다>의 저자 서광스님. 종교학 석사,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보스턴 서운사 주지를 맡고 있는 서광스님이지만 화려한 경력의 MBS 회원들 앞이라 사뭇 긴장한 모습이었다. 서광스님은 “직위로 보면 강의를 듣는 분들이 감당이 안된다”면서 “하지만 오늘은 회원들을 ‘모두 아빠 엄마’라고 여기고 강의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서광스님의 열변이 시작되자 회원들은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다. 자녀교육에 관한 의견을 쏟아내는 서광스님은 곧 “모두들 펜을 내려 놓아라”며 “대신 내 눈을 보며 경험을 공유하라”고 부탁했다. 펜으로 종이에 강의내용을 쓰다 보면 저자의 경험을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펜을 쥐고 있던 MBS 회원들은 학력과 지위를 막론하고 ‘성실한 학생’의 자세로 바로 펜을 놓았다.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의에서는 질문도 쏟아져 나왔다. 박성철 엔카네트워크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딸이 있다”며 “나는 딸이 과외받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고 경험담을 말했다. 박대표는 이어 “결국 과외를 받고 있는 딸의 성적이 좋게 나와 아내와의 승부에서 판정패를 당했다”고 덧붙이자 회원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광스님의 “그 무엇보다 부모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충고가 끝나자마자 질문을 위해 손을 번쩍 든 회원도 여러 명 보였다. <문제는 항상 부모에게 있다>는 저자의 책을 넘겨가며 유심히 읽던 신평재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나는 며느리가 1명, 딸이 2명, 손자ㆍ손녀 6명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신이사장은 “최근에 손자ㆍ손녀를 데리고 나가 공원에서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내 자녀는 아이가 중학교 들어간 뒤 처음 보는 중간고사가 ‘내일’이라면서 나를 ‘왕따’시켰다”고 웃으며 말했다. 신이사장은 현재 한국 교육제도가 교육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며 ‘교육제도’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질문을 하려는 회원은 쇄도했지만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오후 9시가 됐다. 회원들은 강의실을 나오며 ‘많이 배웠다’는 듯 뿌듯해했다.조성식 포스코 전무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며 “엔지니어적 사고와 경영 마인드만이 가득한 나에게 다양한 주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MBS가 한 기에 다루는 20권의 책들은 경영뿐만 아니라 철학, 교육, 음악, 역사, 생명공학, 문학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커리큘럼 선정은 조동성 주임교수와 10여명의 도서선정위원이 맡는다.가족단위로 참여하는 회원도 있다. 고 박두병 두산 회장의 4남인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아들과 함께 참여한다. 박태원 네오플럭스캐피탈 상무가 그의 아들이다. 또 백낙환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과 백수경 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부녀지간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98년부터 참석한 백교수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린다는 생각으로 참석해 열의가 적었지만 이제는 자발적으로 매주 참석한다”며 “평소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도 보게 돼서 재충전의 기회와 상상력 확장에 큰 도움을 얻는다”고 만족해했다.또 심재원 동강메디칼시스템 대표는 “여성이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면 확실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심대표는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독서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이날 모임에서 조동성 주임교수는 앞으로 20년 후인 2025년까지의 계획을 내놓았다. 20년 동안 플라톤, 노자 등의 동서양 철학 입문 80권을 읽어나가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조교수가 “한 기에 동양철학, 서양철학 서적을 각각 1권씩 읽어나가겠다”며 “20년 동안 여러분은 꼼짝 없이 모임에 나오셔야 한다”고 말하자 회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INTERVIEW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경영자독서모임 주임교수)‘회식 금지…공부 위한 순수모임’“여러 이력 가운데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경영자독서모임 주임교수입니다.”경영자독서모임(MBS)을 창안한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MBS의 20년 후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MBS를 만들기 전 그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우리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모임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 그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경영인들과 함께 95년 MBS를 만들었다. 그당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백낙환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남궁석 전 정통부 장관 등이 모여 사랑방 비슷하게 시작된 것. “책의 저자를 초빙해 강의를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저자 직강을 들으며 책의 내용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6개월에 20권, 1년에 40권의 책을 저자를 통해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MBS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처음에는 10~20명이 모였지만 5년이 넘자 자리를 잡으며 100명이 넘는 회원이 등록했다. 1기부터 20기까지 계속 참석하고 있는 회원으로는 백낙환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과 김창중 대보해운 대표이사가 있다. “저자의 수업을 듣고 그 내용을 경영현장에 바로 접목한 경영인도 있습니다. 김창중 대보해운 대표의 경우 모임이 시작할 즈음에 부산에서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김대표는 ‘저자의 말대로 했더니 회사가 불같이 일어났다’고 말하더군요.”MBS는 다른 친목모임과 확연히 다른 특징 하나를 갖고 있다. 바로 ‘회식금지’ 조항이다.“단순한 친목모임이 되지 않도록 회식은 일절 금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강의가 끝나면 바로 헤어져야 합니다. 공부만을 위한 순수한 모임이 되도록 동창회도 못만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