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경영ㆍ격물치지 강조… 외국선 ‘기술마법사’ 찬사

그는 정통 삼성맨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과 함께 삼성에 입사한 뒤 40년 가까이 삼성맨으로 살아왔다. 특히 그는 입사 이래 전자ㆍ전기부문에서 한우물만 팠다. 삼성전자에서는 핵심포스트를 두루 거쳤다. 기획조정실장과 TV사업본부장, 종합연구소장 등 엘리트코스를 골고루 밟았다. 90년에는 ‘별 중의 별’이라는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현재 그의 공식직함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위로는 오너인 이건희 회장뿐이다. 결국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최고위 직책까지 오른 셈이다. 그가 샐러리맨들에게 희망이자 우상으로 떠오른 이유다.그렇다면 윤부회장의 성공비결은 뭘까. 어떤 이유로 한국 대표기업의 최고경영자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물론 여러 장점들이 결합돼 시너지를 낸 결과겠지만, 간추려보면 몇가지 성공법칙으로 요약 가능하다. 무엇보다 ‘속도경영’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그는 시대변화를 읽고 트렌드를 잘 포착해내는, 이른바 심미안의 소유자다. 삼성전자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기를 사업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윤부회장의 속도경영이 투영된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털업체로의 변신성공은 삼성전자에 확고한 입지와 주도권을 안겨줬다. 그는 “디지털시대에는 단 2개월만 늦어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스피드와 정보가 관건이며, 한번 승자가 영원한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평가한다.사실 디지털시대에 속도는 전부다. 그가 입버릇처럼 속도를 강조하는 건 속도의 파급효과와 지배논리를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윤부회장은 “초밥이든 휴대전화이든 모든 부패되기 쉬운 상품의 핵심은 속도”라며 “값비싼 생선도 하루 이틀이면 가격이 내리듯 디지털업계에 재고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원천기술의 발 빠른 상용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뉴스위크> 최근호는 ‘디지털 마스터스’라는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지난 10년간 소니 등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가전제품기업으로 발돋움한 건 속도를 늦추지 않은 경영전략이 먹힌 덕이라고 전했다.윤부회장의 성공법칙을 얘기할 때는 ‘위기론’을 뺄 수 없다. 최첨단기업의 CEO로서 그의 위기의식은 남다르다. 스스로를 ‘혼란제조기’(Chaos-maker)로 부를 만큼 위기를 당연시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위기의식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동력으로 삼고자 했고, 어느 날 우리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항상 지니고 있다”고 고백한다. 때문에 가장 잘나갈 때가 가장 위험하며, 그때 더욱 조심할 것을 임직원들에게 강조한다. 저서 <초일류로 가는 생각>에서도 그의 위기의식은 많은 부분에 할애됐다. 망하지 않으려면 늘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서다. 이런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맹장(猛將)으로 비유한다.하지만 그에게는 덕장(德將)의 이미지도 엿보인다. 한국의 기업리더들에게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열린 귀’의 소유자다. 하위조직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영스타일은 사내외에 평판이 자자하다. 이는 윤부회장의 성공DNA 중 하나인 ‘인재경영’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는 인재등용ㆍ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는 “디지털시대에는 미래를 책임질 우수인재를 얼마나 갖췄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특히 과학기술 인력의 수급문제는 이미 국가위기로 임박했다”고 전한다. 삼성전자가 엄청난 봉급과 특혜를 주면서까지 핵심인력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건 이 때문이다. 특히 그는 전략가를 중요시한다. 그가 생각하는 디지털시대의 인재는 창의력과 스피드,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다.‘격물치지’(格物致知)로 요약되는 현장경영 역시 윤부회장의 성공키워드다. 격물치지란 한 가지에 깊이 몰두ㆍ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그는 임직원들에게 뭐든 만져보고, 느껴보고, 경험해보고, 토론하고 고뇌할 것을 권한다. 이렇게 알게 되면 탁상공론을 경계할 수 있어서다. 격물치지에 근거한 접근법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현장에 있다”며 “현장에 귀 기울이고 현장을 가까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힌다. 격물치지는 끊임없이 변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삼성전자는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기업의 간판선수다. ‘뭐든 삼성이 하면 1등’이라는 평가는 삼성전자가 그 원류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윤부회장의 말처럼 ‘강한 자’가 아닌 ‘환경에 잘 적응한 자’로 살아남았다. 삼성전자 성장사의 곳곳에는 윤부회장의 체취가 남아있다. 그는 ‘위계사회의 이단자ㆍ기술마법사’라는 외신평가처럼 오늘의 삼성전자를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특히 그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관심이 컸던 VCR사업에 애정이 남다르다고 회고한다. 기술확보에서 시장개척까지 모든 게 제로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한국수출의 16.68%(상반기 기준)를 담당한다. 시가총액(751억달러)은 전기전자업종 세계 1위다. 또 R&D 투자는 전체 상장사의 40.1%(2003년 말 기준)를 차지한다. 윤부회장은 이 신화를 써낸 주인공이다.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약력 : 1944년 경북 영천 출생. 62년 경북대 사대부고 졸업. 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66년 삼성그룹 입사. 77년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79년 기획조정실장. 80년 이사 및 TV사업본부장. 84년 상무이사. 85년 종합연구소장. 90년 가전부문 대표이사. 92년 삼성전기 사장. 93년 삼성전관 사장. 95년 일본 본사 사장. 97년 총괄 사장. 2000년 대표이사 부회장(현).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 서울대 경영대 초빙교수 △수상: 98년 미국산업공학회 최고경영자상, 2003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등돋보기 내가 본 CEO철학적 사고로 앞날 여는 선구자평소 윤종용 부회장은 현장경영을 강조한다. 우리 제품이 팔리는 곳이면 지구 끝까지라도 직접 가서 보겠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 5월 윤부회장과 동행한 중동ㆍ아프리카 출장길에서 그의 면모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 도착한 후 부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미래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표출했다. 그는 “5년 후 국가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함께 우리 모두 시야와 사고를 넓혀 앞날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박제가의 <북학의>, 손무의 <손자병법>을 화두로 정치ㆍ경제ㆍ역사ㆍ사회에 대한 폭넓고 깊은 자신의 철학을 얘기했다.출장길에서는 부회장의 회상을 듣는 기회도 있었다. 부회장은 지금 초일류의 길목에 서 있는 삼성전자가 되기까지 숨가쁜 개혁과 혁신의 중심에 있었던 CEO로서의 감당하기 힘들었던 중압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경영자로서의 고뇌와 중압감은 후배 임직원에 대한 간곡한 당부로 이어졌다. 그는 “선배들은 회사와 국가경제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겠다는 신념 하나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고 이제 초일류의 문턱까지 다다랐다”며 “앞으로 그 문턱을 넘어 수십, 수백년이 흘러도 흔들리지 않을 거목으로서 삼성전자의 초일류 역사를 써나가야 할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했다.출장일정의 마지막 날에는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했다. 선사시대의 원시현장에 21세기 초일류기업 CEO의 방문은 지극히 상반적이었지만, 동시에 감동적이었다. 마사이족 학교에서 부회장은 네 살 정도의 아이와 자연스레 포옹했다. 반백년 넘게 살아온 어른과 세상을 막 배우기 시작한 꼬마, 하얀 피부와 새까만 얼굴, 초일류기업 최고경영자와 마사이족의 아이, 첨단기술의 삶과 오지의 삶…. 결코 어울릴 수 없고 만날 이유도 없는 두 인격체가 자연스레 동화하는 인류애의 현장에 다름아니었다. 극과 극의 두 사람에게서 경계를 넘나드는 공통분모도 발견할 수 있다. 차이라면 변화ㆍ진보의 추구냐, 가치ㆍ전통의 고수냐 일 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변화와 진보를 좇는다면 그에 어울리는 문화와 가치관이 필요하다. 의식개혁과 시스템 혁신은 물론이다. 부회장의 고뇌와 혜안이 왜 절체절명의 화두인지 조금은 이해되는 듯하다.이돈주ㆍ삼성전자 시스템가전 전략마케팅팀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