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 선정적 아이템 거부 … 건전한 게임 문화 발전에도 큰 공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게임산업이지만 한국경제의 주축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여성 게임인구 확산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게임산업은 단순한 유행에 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이를 반영하듯 게임업계의 여성파워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 게임마니아층이 확산되고 있는 한편 여성게이머들의 활약도 돋보인다.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여성CEO들의 활약이다. 최근 여성파워는 한국경제에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여성들의 사회활동에는 아직까지 제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IT업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차별이 적고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여지가 높아 여성CEO의 진출이 용이한 분야 중 하나다.특히 게임업계는 여성유저를 수용해야 한다는 당면과제와 맞물려 많은 여성CEO들이 성공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 게임회사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게 벌써 10년 전이다. 소프트맥스는 94년 10월에 법인등록을 마쳤다. 게임업계 역사를 꿰뚫고 있는 국내 게임산업 1세대 CEO 중 한 사람이다. 국산 PC게임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90년대 중반에 ‘창세기전’을 내놓으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PC패키지게임으로 승부해 왔던 소프트맥스는 최근에는 비디오게임과 모바일게임, 게임포털, 온라인게임 등 전 분야에 거쳐 골고루 새로운 게임을 개발 중에 있다. 정사장은 “게임업체는 게임으로 모든 것을 대변한다”면서 “콘텐츠 자체로 경쟁력을 갖추고 트렌드와 플랫폼 변화에 맞춰 신속히 대응해야 다가올 10년 후에 대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96년 ‘창세기전’의 대만진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일본과 중국 등에 수출해 게임의 해외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연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프트맥스는 2001년에 코스닥에 등록됐다.모바일게임업계 ‘대표선수’로 꼽히는 박지영 컴투스 사장 역시 여성파워를 거론할 때마다 언급되는 인물이다. 박사장은 지난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14인의 세계 기술대가’(Global Tech Gurus)로 뽑혔다. 벤처업계의 대표적 여성인사인 박사장은 모바일게임업체 컴투스를 시작한 뒤 승승장구하면서 이미 다양한 수상경력을 자랑하고 있다.남편 이영일씨와의 결혼스토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캠퍼스 커플 출신 부부로 남편은 회사의 기술책임이사(CTO)로 일해 오다 지난해 컴투스가 중국시장에 진출하면서 중국법인을 책임지고 있다.여성CEO의 장점을 살려 여성유저를 확실히 공략한 케이스도 있다.이상희 나비야엔터테인먼트 대표의 경우 주로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PC게임을 개발해 왔다. 이사장은 의상실 경영 시뮬레이션게임인 ‘코코룩’으로 명성을 굳혔다. ‘코코룩’의 후속작 ‘써니하우스’는 패션을 소재로 한 전편과 달리 주거공간을 다루는 인테리어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꾸몄다. 역시 20~30대 여성층을 타깃으로 개발됐다. 이 게임에는 300여종의 가구와 장식용 아이템이 등장한다. 사용자는 이 아이템을 이용해 신혼방ㆍ호텔ㆍ바 등을 연출할 수 있다.이 사장은 올해 초에도 여성용 게임인 ‘바닐라캣’을 선보였다. 나비야엔터테인먼트의 첫 온라인게임으로 패션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사장은 각종 인터뷰에서 “이 게임을 위해 게임속옷만 1년 동안 1,500벌을 디자인했다”고 밝힐 정도로 바닐라캣에 정성을 쏟았다.김양신 제이씨엔터테인먼트 사장은 박지영 컴투스 사장과 더불어 IT업계의 대표적인 부부경영인으로 꼽힌다. SF온라인게임 ‘워바이블’이 대표작으로 IBM에 다니던 남편을 부사장으로 끌어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레드문’, ‘조이시티’ 등의 히트작들을 내놓았다.이밖에도 한국지사 설립 4년 만에 최초로 내부 선발을 통해 지사장 자리에 발탁된 한수정 EA코리아 사장, 음악 리듬게임 ‘오투잼’을 내놓은 김혜성 오투미디어 사장 등도 게임업계를 이끄는 여성CEO들이다. 한수정 EA코리아 사장의 경우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를 딴 뒤 소니뮤직코리아 부사장 및 사장, EA코리아 지사장을 거치며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을 두루 섭렵했다.‘오투잼’은 클래식과 가요, 팝송 등 다양한 곡을 선택해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게 키보드를 누르는 온라인 음악게임이다. 김혜성 오투미디어 사장은 지천명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오투잼에 서태지 음악을 서비스 하는 파격적인 신세대 감각을 보여줬다. 오투미디어는 이 서비스 개시 이후 ‘서태지효과’를 톡톡히 봤다.이 같은 여성CEO들의 활약을 두고 게임업계에서는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종식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은 “게임업계에서 여성CEO들이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게임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무겁지 않고 부드러워 여성에게 잘 맞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여성CEO들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나오는 게임은 비폭력적이고 비선정적인 것이 많아 게임산업의 건전한 문화조성을 위해서도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우원장은 “여성CEO들은 직원들을 대할 때도 다정다감한데다 마케팅에서도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다만 좀더 공격적인 경영을 하면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게임업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덧붙였다.INTERVIEW 성영숙 이쓰리넷 사장“교육발전 있어야 게임도 클 수 있어”성영숙 이쓰리넷 사장(41)은 게임업계 여성CEO들 중 최근 주목받는 인물이다. 게임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1년. 하지만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대표작 ‘동전쌓기’가 SK텔레콤ㆍKTFㆍLG텔레콤 이동통신 3사의 톱10게임에 꾸준히 들 정도로 성공적인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말에는 한국여성벤처협회에서 연 ‘여성벤처기업인 성공사례 발표회’에 연사로 서기도 했다.“여자이기 때문에 회사를 빨리 성장시킬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기업을 꾸리는 데 큰 보탬이 됩니다. 모험심이 강한 제 성격도 장점이 됐습니다.”성사장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주산학원, 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왔다. 주산 9단인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주산선수로 활약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원을 직접 경영하게 된 것.“당시만 해도 현재의 입시학원 같은 형태보다는 주산학원이 훨씬 인기가 많았죠. 어차피 대학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으니 기왕 할 거면 아예 학원을 차리자고 마음먹은 겁니다.”이후 제조, 유통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던 성사장은 99년 IT벤처 바람이 불자 시스템통합(SI)업체로 전환했다. 이후 2001년부터는 게임업계에 뛰어든 것이다.게임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컴맹이었다. 주산선수였던 성사장에게 2진법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는 ‘바보상자’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는 평소 “사업은 직업이 아니라 인생”이라고 주장한다. 직업이었으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컴맹의 한계를 극복하고 게임업계의 성공한 여성CEO로 자리매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특히 사업은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많은 벤처회사들이 기술력만 갖고 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회계상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난감해 하거나 융통성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고.성사장은 사업가와 장사꾼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업가는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갖지만 장사꾼은 단순히 이익을 많이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한다는 것.그녀는 한국 게임산업이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교육의 발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IT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교육현실은 10여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히 여성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결혼을 인생의 도피처로 생각하거나 일을 계속하겠다고 하면서도 노력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냥 근무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하면 철새처럼 회사를 옮겨다니는 ‘경력 아닌 경력’만 남기게 됩니다.”다음달 출산을 앞두고도 만삭의 몸으로 묵묵히 업무에 임하고 있는 성사장은 “사업이 곧 인생인 만큼 60세가 돼서도 사업가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포부를 밝혔다.“게임시장에서 일단 최고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최종목표는 실버산업을 하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게 마련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