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로 오랜만에 고교동창회에 참석했던 필자는 친구들과 회포를 미처 풀기도 전에 때아닌 즉석 패션강의를 하게 됐다. 무슨 말인고 하니 불혹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는 필자를 보고 대체 비결이 무엇이냐며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만난 친구들의 모습은 ‘더 젊어 보이고 싶고 멋져 보이고 싶은’ 욕구는 가득하나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고 있는 한국의 30대 보통남성들이었다.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따로 정기구독할 만큼 열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남성이라면 필자의 충고가 잔소리에 불과하겠지만 잡지는커녕 신문 보기에도 빠듯한 보통 한국남성이라면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찾아보는 게 오히려 더 쉽지 않을까. 그러나 젊어 보이고 싶다고 무조건 <봄날>의 조인성처럼 입을 수 없는 일이다. 조인성은 젊고 배도 안 나왔으며 최고의 스타일리스트가 협찬받아 오는 최고의 브랜드로만 치장하며 최고의 조명으로 그의 얼굴은 언제나 화면에서 뽀얗게 빛을 발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체형과 이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바로 그 첫걸음인데 하고 싶은 패션 아이콘이 있다면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의욕이 있으니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좋은 징조다. 그러니 우선 자신에게 맞는 스타 아이콘을 정해보라. 보통은 그 ‘패션 아이콘’이라는 존재에는 어떤 작은 한 부분이라도 반드시 자신과 공통분모가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체형적으로 조인성을 따라갈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가 하고 나오는 취향이 좋아 비슷하게 자기 식으로 소화하는 것도 결국 센스에 관한 일이니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멋진 연예인만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아이콘의 취향과 디테일을 분석하고 응용하자. 발전하는 자신을 그리면서 말이다.<홍콩 익스프레스>의 차인표나 조재현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키는 크지 않지만 근육도 있고 덩치가 큰 편이라서 자칫 둔해 보일 수 있는 체형이다. 하지만 화면에서는 훨씬 날씬해 보이면서도 극중 캐릭터를 잘 살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차인표는 블랙 스트라이프 셔츠를 블랙 슈트 안에 노타이로 받쳐입고 단추를 좀 많이 열어 전혀 둔하지 않게 보인다. 또한 장면마다 차인표는 브이넥이라든가 목이 많이 파인 의상으로 목 라인을 많이 살려 근육이 많은 자신의 둔한 이미지를 샤프한 극중 이미지로 바꾸고 있다. 조재현은 반대로 원색 셔츠나 청 데님 블루종 등으로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어린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자신의 터프한 이미지도 지키고 있다.한편 <슬픈 연가>의 권상우, 연정훈도 각각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훌륭히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 여유 있고 부유함을 표현하기 위해 연정훈은 니트류를 미국 동부 사립대학교 학생처럼 아이비룩으로 연출하고 있으며 권상우는 불우한 캐릭터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잘생긴 외모를 누르기 위해 무채색 계열로 톤을 죽이면서도 그만의 섹시하고 터프함을 잃지 않고 있다.만약 당신도 이들처럼 기존의 자신이 아닌 좀더 나은 인물로 설정한 뒤 드레스 코드나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줘보자. 예를 들어 드라마 속 그들처럼 좀더 날씬해 보이는 모습이 설정이라면 가로 스트라이프 무늬는 반드시 피하라. 슈트를 입을 때도 흔히 뚱뚱한 남자는 싱글을 입어야 더 날씬해 보인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쉽지만 굳이 싱글슈트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더블슈트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신 날씬해 보일 수 있도록 반드시 색상은 어두운 것으로 하되 스트라이프가 있으면 더욱 효과적이다. 허리는 반드시 피트가 들어간 재단의 재킷을 골라야 하며 재킷의 길이는 이탈리아 스타일처럼 엉덩이를 완전히 덮어 넉넉해 보이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야 오히려 다리가 길어 보일 수 있다. 또한 타이트한 바지나 상의는 오히려 더 부해 보이니 가급적 피하고 여러 벌의 상의를 겹쳐 입지 말아야 한다. 포켓에는 되도록 소지품을 넣지 않는 것이 좋다. 포켓이 불룩하면 날씬한 실루엣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반대로 너무 왜소한 체형이 고민이라면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쾌걸춘향>의 재희나 영화 의 이동건을 떠올려 보자. 비교적 마른 체격의 두 배우는 주로 컬러풀한 셔츠나 큰 무늬가 있는 티셔츠, 블루나 레몬옐로 같은 밝은 색의 재킷, 주머니나 장식이 많은 팬츠 등을 즐겨 입고 등장했다. 극중의 발랄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이런 의상들이 두 배우의 다소 빈약한 체격을 훌륭히 커버해 준 것도 사실이다. 지금 당장 노티카의 가로 스트라이프 무늬 니트나 라코스테의 컬러풀한 피케셔츠, 크리스찬 라크르와 옴므의 화려한 꽃무늬 셔츠, 프라다의 과감한 기하학 패턴의 셔츠 등을 화이트나 베이지 컬러 재킷에 매치해 보자. 그들이 왜 그렇게 입고 나왔는지를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30대 남자라면 대부분 점점 늘어나는 배 둘레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항상 식사량에 신경을 쓰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아랫배가 아닌 윗배부터 나오고 허리가 점점 굽어가는 중년 체형 앞에 참담히 무너지는 현실인 것을. 그러나 필자는 고심 끝에 무너지는 자존심을 옷으로 커버하는 방법을 영악하게 터득하게 됐다. 일단 셔츠든 재킷이든 블루톤의 세로 스트라이프는 탁월한 선택이다. 사람의 체격을 세로로 분할해 보이게 하므로 좀더 날씬해 보일 뿐만 아니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를 풍기는 데도 한몫 한다.캐주얼하게 입을 때도 절대로 셔츠를 밖으로 내어 입지 않으며 허리라인을 생각해 적당히 여유 있게 정리해 바지 속으로 반드시 넣어 입으며 양복에 매는 벨트를 면바지나 청바지를 입을 때 매지 않는다. 그리고 체형 유지를 위해 주말이면 가급적 진을 입고 산책을 하거나 외출하도록 한다. 몸이 긴장해 장기적 체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참고로 이 같은 방법으로 필자는 10년 넘게 같은 사이즈의 바지를 입는다.또한 채도가 높은 원색의 컬러를 전체적인 스타일링에 사용하면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으므로 넥타이나 행커치프 같은 포인트 아이템에 이용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컬러풀한 원색 벨트를 고르지는 말자. 굳이 배에 시선을 유도해서 단점을 드러내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배가 나왔다고 해서 헐렁한 상의를 입는 것은 실루엣을 망치는 지름길이므로 적당히 몸에 붙는 블랙 브이넥 니트 등이 무난한 선택이며 같은 블랙이라도 너무 얇은 소재는 나온 배를 도드라져 보이게 할 수 있으므로 피하도록 한다.이미지에 맞는 스타일링도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항인데, 예를 들어 지적인 이미지나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싶다면 <봄날>의 지진희 스타일을 눈여겨보자. 진한 브라운 스웨이드(일명 세무) 재킷에 파스텔톤 셔츠, 니트 베스트(조끼)를 스타일링한 지진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여자들이 선호하는 ‘다정다감함’ 그 자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클로저>의 주드 로나 <비포 선셋>의 에단 호크 또한 유사한 스타일링으로 부드럽고 지적인 이미지를 연출했으며 <노팅힐>의 휴 그랜트는 언제 어디서나 연한 하늘색 파스텔톤 셔츠에 위의 2개 버튼을 연 이미지로 전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부드러워 보이고 싶다면 이들처럼 파스텔톤의 단정한 셔츠나 니트를 목선을 약간 노출해 코디해 보라. 폴 스미스나 살바토레 페라가모 같은 명품매장뿐만 아니라 일반 브랜드, 또는 시장에서도 올 봄 신상품을 살펴보면 멋진 파스텔톤 아이템을 그 어느 해보다 많이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파스텔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외형적으로도 자신을 가꾸고 때로는 눈물로도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남자가 대접받는 시대, 부드럽고 상냥하며 미소를 항상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한국 남성상이 요구되고 있는 시대다. 80년대에 태어난 많은 신세대 남성은 디지털미디어환경과 패션잡지 등으로 이미 자연스럽게 그러한 조건을 갖추고 자라난 세대다. 무뚝뚝하고 패션 센스 없는 ‘386세대’는 점점 기성세대로 옮아가며 늘어나는 자신의 허리 인치만을 한탄하고 후배 세대에게 촌스럽고 감각 없다는 진부한 세대로 낙인 찍혀야만 하는가!술잔을 돌려 마시지 않는 신세대 젊은이에게는 ‘남자는 다 우리 편’이라는 그룹의식이 희박하다. 그래도 이런 야멸스런 젊은 남성 세대들에게서 우리에게 유용한 건 얻어내자. 그들의 젊고 자유로운 감각을 놓치지 말자. 그리고 나이를 초월해 그 젊은 감각을 갖고 있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속의 스타들은 좋은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물론 자신의 이미지나 체형에 상관없이 무조건 따라하라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도 교수가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예시를 들어주는 것처럼, 그들도 당신의 옷 입기 학습에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황의건ㆍ오피스h 대표이사 benny68@hanmail.net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h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