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익 570억엔 사상 최고, 영업이익률도 소니의 3배

지금 샤프(Sharp)에는 예전의 우울한 그림자는 없다. 액정과 태양전지에서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액정TV의 시장점유율도 단연 1위다. 그렇다면 샤프가 이처럼 부상한 배경은 무엇일까.“샤프가 마쓰시타전기산업이나 소니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된 것은 처음이다.” 샤프 경영진이 최근 미국에서 열린 IR(투자설명회)에서 기관투자가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얘기다. 직원들 역시 상당히 들떠 있는 모습이다. 샤프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특히 일본의 전자업계에서는 샤프에 대해 ‘크게 보면 일본 메이커 부활의 상징이고, 잊혀져 가던 일본기업의 경쟁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다.샤프의 최근 실적은 아주 놀랍다. 2004년 3월 기준으로 2억2,500억엔(전기 대비 12.3% 증가)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사상 최고인 570억엔으로 전기와 비교해 74.9% 늘었다. 또 영업이익률은 5%를 초과, 마쓰시타전기산업(2.6%), 소니(1.8%)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크게 웃돌았다.이러한 성장의 원동력인 액정TV는 실적뿐만 아니라 기업이미지 쇄신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치다 가쓰히코 사장도 “TV는 가전의 왕이다. 액정TV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함으로써 샤프의 브랜드 이미지도 크게 향상됐다”고 강조했다.지난 2월 기준으로 일본시장에서 샤프의 액정TV 점유율은 55%(판매 대수 기준)다. 각 전자제품 매장에서 샤프의 액정TV ‘AQUAS’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3월에는 신모델이 등장하면서 시장점유율이 60%선까지 치솟았다. 이에 비해 경쟁사인 마쓰시타전기산업과 소니는 2월 기준으로 각각 14%와 12%에 머물고 있다. 적어도 액정TV 분야에서만은 샤프의 경쟁자가 없는 셈이다. 샤프의 액정TV는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톱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세계 수요의 50%(판매 대수 기준)를 장악하고 있다.샤프가 액정TV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70년이다. 회사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을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가 액정을 선택, 사운을 걸고 연구에 매달렸다. 연구 실무는 중앙연구소가 맡았고, 1차 목표는 전자식 탁상계산기였다.3년 후인 73년 마침내 액정을 활용한 계산기를 개발했다. 이어 87년에는 3인치 액정TV와 워드프로세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연구에 들어간 지 17년 만에 TV를 만들었을 정도로 연구가 쉽지 않았지만 회사에서는 개의치 않고 연구진을 독려했다.액정 연구는 90년대 들어 꽃을 피웠다. 91년 액정을 활용한 벽걸이TV를 선보였고, 노트북PC(90년)와 비디오카메라(92년), 컬러PDA(96년), PC모니터(98년), 게임기(98년), 디지털카메라(99년), 컬러휴대전화기(99년)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어 2001년 최고 히트작으로 꼽히는 액정TV ‘AQUAS’ 시리즈를 발매하며 절정을 이뤘다. 최근까지 투입한 연구비만 1,500억엔에 이를 정도로 회사측의 지원은 절대적이었다.그렇다면 샤프가 ‘액정 왕국’으로 자리매김한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부품에서 제품까지의 수직통합, 기술의 블랙박스화, 한 발 앞선 시장참여, 사장의 장수 등을 꼽는다.샤프 경쟁력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수직통합은 일본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샤프는 디바이스(부품 및 주변장치)부터 제품까지를 일괄해서 생산하는 ‘스파이럴(소용돌이) 전략’을 일찍이 구사하고 있다. 디바이스 부문과 제품 부문으로 사업부를 나눠 사이좋게 경쟁시키면서 각자의 경쟁력과 기술력을 높이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디바이스 부문을 분사시키는 등의 전략은 일절 구사하지 않았다. 회사측은 “두 부문을 떼어놓으면 서로 상대방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샤프는 미에현 공장을 중심으로 같은 장소에서 디바이스와 TV 부문이 하나가 되어 상품을 만들어낸다. 수직통합을 말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지난 98년 마치다 가쓰히코 사장은 취임사에서 ‘2005년까지 국내에서 판매하는 TV를 모두 브라운관에서 액정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나름대로 기술에 자신이 있었고, 충분히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샤프가 구사하는 블랙박스화는 이런 기술의 우위를 지키기 위한 조치다. 미에현에 자리잡고 있는 샤프공장은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블랙박스 공장으로 지정, 관계자 이외에는 출입이 금지돼 있다. 아울러 공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공장 자체를 하나의 블랙박스로 만들어 기술이 새나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이러다 보니 심지어 직원들까지도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공장의 전모를 아는 것은 사장과 임원, 그리고 간부직원들뿐이다. 직원은 자기가 근무하는 구역 외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카메라폰 등의 휴대도 금지돼 있다. 납품업자 등도 출입구역이 정해져 있다.한 발 앞선 투자도 오늘의 샤프를 만든 원동력이다. 다른 액정 메이커가 사업에 뛰어든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대부분 노트북PC용 디스플레이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샤프는 노트북PC뿐만 아니라 액정TV, 정보통신기기 등에도 뛰어들었다. 시장 형성은 안된 상태였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투자를 아까지 않았다.고비도 있었다. 90년대 후반 한국과 대만 업체들이 본격 액정시장에 참여해 당시 주력이었던 노트북PC용 가격이 급락했다. 98년에는 액정사업 자체가 적자로 돌아섰다. 위기를 맞은 샤프 경영진은 고민 끝에 ‘탈PC’를 선언하고 TV와 정보통신기기 등의 분야로 경영자원을 집중했다. 이 같은 큰 전환기를 거쳐 샤프의 액정사업은 ‘질’을 바꿔 갔다. 99년 당시 전체의 50%를 차지하던 노트북PC용은 이후 해마다 떨어져 최근에는 10%대까지 추락했다.물론 다른 경쟁업체들도 샤프의 뒤를 이어 정보통신기기 분야로 진출했다. 그 결과 이 분야에서 샤프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매출액 기준으로 30%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졌지만 수익성은 굳건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1,000억엔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분야 2위인 TMD 등이 이제야 적자를 벗어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샤프의 수익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98년 사장에 취임해 올해로 7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치다 가쓰히코 사장은 샤프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평가받는다. 남다른 비전과 뚝심으로 오늘의 샤프를 일궈낸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마치다 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모든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며 “앞으로 2년 정도는 액정에 전념하겠지만, 그 다음해에는 또 다른 변신을 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