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실전주식투자대회의 우승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1,000만원 미만의 원금을 2~3개월이 보통인 대회기간에 억대로 불려 수익률 수백%, 수천%를 기록하는 고수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41세의 여성 투자자인 문위수씨는 굿모닝신한증권이 주최한 증권수익률게임 ‘빅게임’의 옵션 부분에서 우승해 화제가 됐다. 지난 1월9일부터 2개월간 열린 키움닷컴의 제7회 옵션영웅전에는 53억원으로 98억9,687만9,030원의 수익(수익률 137%)을 올린 참가자도 나왔다. 30대 전문투자자인 pinetree(필명)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한화증권의 수익률대회를 통해서는 최진식, 박정윤, 이창현, 김기수, 서태원, 정진석씨 등 사이버 고수들이 탄생했다.한 번 1등을 했다고 해서 앞날이 탄탄대로인 것도 아니다. 주식 수익률게임을 지난 99년 업계 최초로 도입한 한화증권의 박수경 사이버증권팀장은 “우승자 중에서는 본인이 번 돈을 흥행에 성공한 영화펀드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등 합리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사람도 있다”며 “우승 후 본인의 돈만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익을 내며 생활을 꾸려간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반면 스타덤에 오른 후 다른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투자까지 받아가며 투자전문회사 등을 차린 우승자들 중에서는 끝이 안 좋은 경우를 종종 봤다”며 “남의 돈이 아닌 본인이 투자해서 불린 여윳돈으로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실제로 한 증권사의 투자대회에서 우승을 한 A씨는 주식투자 부띠끄를 차려 3~4명의 거액 투자자의 투자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우승을 하던 시절만큼 수익을 내기는커녕 투자금을 날리게 됐다. 현재 A씨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주식투자 강자로 널리 알려졌던 B씨는 주식에 이어 옵션에도 손을 댔다. ‘좀 더 큰물에서 놀겠다’며 본인이 번 돈 20%와 지인에게 빌린 돈 80%를 합해 총 9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그러나 주식과 옵션은 마치 축구와 야구처럼 각기 노하우가 달랐다. 주식시장에서 통하던 매매기법과 감각으로는 옵션에서 수익이 나지 않았다. 결국 이중 8억원 가량을 날린 후 B씨는 옵션에서 손을 땠다.각 증권사 대회에서 우승한 고수 중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준수, 한관홍, 유수민씨 역시 본인의 자금만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물론 이들 모두 깡통을 몇 번 찬 후 얻은 교훈으로 거둔 성공이다.이준수 씽크아카데미 대표수익률 4650% 대기록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이준수 씽크아카데미 대표(35)는 지난해 대우증권이 개최한 제1회 ‘KML실전투자대회’에서 역대 각종 투자대회 중 최고의 수익률인 4,650%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6월 말에서 9월 초까지 두 달 반 만에 500만원을 2억3,250만원으로 불려 이목을 확 잡아끌었다.‘새강자’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준수씨는 그동안 한화증권 10회, 동양종금증권 1회, SK증권 1회 등의 주식투자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바 있다. 주식투자교육기관인 씽크아카데미를 설립해 여의도에 번듯한 사무실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SK증권의 광고모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슈퍼모델대회 출신 미모의 아내와 지난해 말 태어난 아들 덕분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지난해 대우증권 실전투자대회 우승으로 탄 상금 2,000만원을 태풍 수재의연금으로 쾌척한 이대표. 벌 만큼 벌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나서는 투자강연회마다 수백명을 몰고 다니는 그가 처음부터 시종일관 ‘대박신화’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경북 봉화 출신의 그는 어린 시절 가세가 기울어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온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동대문 일대를 전전하며 가방공장과 슈퍼마켓 등에서 일을 했다. 중고교 과정은 검정고시를 거치며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대구 청과시장에 내려가 장사 소질을 발휘, 2억원을 모으게 됐다. 이때부터 주식을 조금씩 시작한 그는 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주식에 손대게 됐다. 1억원으로 시작한 그는 한 달 만에 4,000만원을 날렸고, 이어 더 넣은 1억원도 모두 손실을 봤다. 가족들 돈까지 빌려 투자했으나 결국 10억원을 몽땅 날리기에 이르렀다. 가족들 볼 면목이 없던 그는 동대문 청과시장에서, 막노동판에서 다시 돈을 벌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한두 푼도 아니고 수억원을 날린 그에게는 인생의 무게가 버겁기만 했다. 죽어서 보상금으로 빚이라도 갚기 위해 98년 달리는 차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차량은 뺑소니를 쳤고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부목을 대고 한 달간 골방에 누워 있어야 했다.“하도 답답해서 점을 보러 다녔습니다. 다니는 점집마다 저에게 신기가 느껴진다면서 세속을 떠나 내림굿을 받으라고 하더군요. 유명한 무속인을 만나 내림굿을 받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전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주식을 해 보기로 했죠. 그런데 웬일인지 수익이 나지 뭡니까. 결국 주식시장에 몸을 맡기기로 방향을 틀었죠.”1년여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수백개의 종목을 일일이 분석해 파일을 만들었다. 2000년부터는 이익이 났고, 재작년에는 빚을 모두 갚게 됐다. 씽크아카데미를 운용하는 요즘에는 1,000만원을 투자해 월 300만~5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오는 5월께 교육업무를 줄이고 다시 본격적으로 매매를 할 계획이다.“최대한 마음을 억누르는 마인드 컨트롤이 심리전인 주식투자에서 중요해요. 기회가 아닌데 기회라고 착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기회를 만들려 하지 않고 기다려야죠.”그는 ‘시장의 똘마니가 돼라’는 주식투자 원칙을 제시했다. 내가 원하는 종목이 아닌 시장이 원하는 종목을 눈으로 확인하고 따라가라는 얘기다. ‘최적의 매매환경을 구축하라’는 것도 그의 원칙이다. “주식거래를 하다가 컴퓨터가 다운됐다는 투자자들이 있어요. 남들은 대포를 들고 싸울 때 본인은 돌팔매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죠. 주식거래를 위해서는 컴퓨터 시스템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적성에 맞지 않으면 떠나라’는 것도 그가 제시하는 원칙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근무, 주5일 근무, 솔직히 전업투자자 얼마나 편합니까. 주식투자가 좋고 편하다고 해서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적성에 맞는다고 착각하는 것뿐입니다. 계좌에 수익이 나야 적성에 맞는 것이죠.”한관홍 전업 트레이더두달 사이 1억을 10억으로한화증권의 주식투자수익률게임 3회와 12회 우승자인 한관홍씨(45)는 16년 경력의 전업트레이더다. 12회에서는 356%의 수익률을 내며 원금 300만원을 1,060만으로 불려 고수 명단에 이름을 등록했다.당시 화제가 된 것은 다른 투자자와는 확연히 다른 그의 이력이었다. ‘내 힘 말고 성령으로’라는 필명이 그의 독특한 이력을 일부 나타내 주기도 한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3년간 장교생활을 한 직업군인이었다. 그러나 육사에 들어갈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에 지난 97년 과감히 전역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목회자 생활을 2년 가량 했다. “목회활동을 하다 보니 차라리 돈을 버는 것이 더 쉽고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선교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2년 11월 목사를 그만두고 직업 주식투자자로 나섰습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2000년 한화증권 3회 수익률게임대회 A그룹의 우승이다.“80년대 후반 미군부대에 근무해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저녁시간을 이용해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하며 주식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됐죠. 그 당시 대우증권 대구지점에 가서 근로자증권저축에 가입하며 100만원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1년이 지나 계좌를 살펴보니 거의 2배가 돼 있었다. 주식투자에 맛을 들인 그는 본격적으로 투자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증권회사의 일반 위탁계좌를 만들어 버렸다. “그때부터 한 10년 동안의 고생이 시작됐습니다. 초급장교 시절 월급의 90%를 저축해 저축왕상을 받을 정도로 검소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전부다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97년 전역할 당시 퇴직금 6,000만원과 그동안 주식으로 잃고 남은 저축금 1,000만원을 합친 7,000만원이 투자 원금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수천만원을 벌었죠. 그러나 2주가 지나자 7,000만원이 반 토막이 됐습니다. 두 달이 지나자 480만원밖에 남지 않더군요.” 모든 것이 종료된 것처럼 느낀 그는 콩팥을 팔기 위해서 장기매매를 알선하는 곳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39세인 저에게 35세가 넘은 사람의 콩팥은 노폐물이 많아서 거래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주식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그때부터 독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니던 신학교에 휴학계를 낸 후 매일 증권회사 객장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1년간 했다. 황씨의 아내는 “이제부터 내가 벌어서 먹일 테니 공부만 열심히 하라”면서 초등학교 영어 과외교사로 생활비를 벌었다.“그 누구에게도 주식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고, 그 어떤 책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가의 흐름만 쫓다 보니 어느 정도 주식의 흐름에 대해서 감이 오더군요. 1년 만에 480만원이 1,600만원 정도가 됐죠. 자신감을 얻은 후 이듬해 신학대학원에 복학을 했죠. 다음번 방학이 끝날 때가 되자 1,500만원은 두 달 만에 기적처럼 1억원이 돼 있었다. 다음 학기 방학 두 달 동안에는 1억원이 10억원 가까이 됐다. 한화증권 수익률게임에서 우승한 것이 이때였다.“최근에는 3,000만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월 40~50%의 수익률을 꾸준히 내고 있죠. 상한가 중심의 매매기법을 고수하며 한 번에 2~3개 종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가에 산 종목 외에는 상한가가 아닌 종목은 절대 다음날로 넘기지 않습니다. ”집 방 안에서 거래하는 그는 하루 매수액은 원금만큼만 하며, 손실액이 그날 이익금의 20%를 넘어서면 매매를 중단한다. 또 손해가 원금의 2%를 넘을 때도 거래를 중단한다는 매매준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유수민 동양종금증권 자산운용팀 직원200만원으로 909%수익률 “2차 상승 예상종목만 다뤄”‘고가노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유수민씨(27)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증권 전업투자자였다. 그러나 지난 3월17일부터 넥타이를 맨 금융인이 됐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의 자산운용팀 직원으로 채용된 것.지난해 12월3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열린 동양종금증권의 신전주식투자대회 ‘영 파워 랠리’(Young Power Rally)에서 1등을 차지한 결과다. 영 파워 랠리는 1974년 1월1일 이후 출생한 젊은층과 대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펼쳐졌다. “영 파워 랠리의 3위 입상자까지 특별전형을 통해 채용우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참가하기로 결심했어요. 지난 5년간 전업투자를 하다 보니 사회에서 단절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돈을 무작정 버는 것보다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었죠.”유씨는 특히 대회 중반에 참가했음에도 3주 만에, 매매일수로는 18일 만에 200만원으로 909%의 수익률을 거둬 1등을 차지했다.유씨는 지난해 12월 동원증권의 투자대회에서도 1등에 오른바 있다.“주식투자는 제대 직후인 99년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입대 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 1,000만원과 형님에게 빌린 돈을 합쳐 1,500만~2,000만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깡통을 세 번이나 차 이 돈이 180만원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손실이 나면서 공부가 많이 되더군요. 주식투자에 묘미를 느끼게 된 거죠.” 주식투자가 적성과 성격에 맞다고 판단한 그는 본격적으로 주식공부에 뛰어들었다. 차트분석법 등의 서적과 증시 관련 인터넷 사이트도 참고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터득해 나갔다. 매일 A4용지 1장 정도의 매매일지를 꼼꼼하게 썼다. “2년 내내 모니터 앞에서만 살았다고 보면 됩니다. 마침 주식을 시작한 시점이 대세하락장이어서 대처방안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결국 형에게 빌린 돈을 다 갚고, 생활이 될 정도로 수익을 내게 됐습니다.”낮에는 전업투자자 생활을 하며 밤에는 인천 재능대 컴퓨터학과를 다니는 주경야독 생활을 하며 고수가 돼 갔다. 입사 전에는 1,000만원 정도를 투자하며 월 수익률 100% 정도를 내 왔다.“단타는 오르는 종목, 특히 2차 상승이 예상되는 종목만 다뤘어요. 급락주는 절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배당주를 3~6개월 전에 미리 사서 배당을 받지 않고, 배당을 받기 일주일 전에 팔면 백발백중 수익이 났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역이용한 거죠.”영 파워 랠리에서 받은 700만원의 상금은 영등포구청 소년소녀가장에게 전달했다. 주식시장의 눈먼 돈을 사회 소외계층에 분배하고 싶다는 소망에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었던 그는 기회가 된다면 고아원과 양로원을 차리는 게 꿈이기도 하다.“어릴 적부터 소외 계층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소외된 개미투자자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팍스넷 홈페이지의 ‘고가노리의 주식투자 연구방’인 증권동호회를 200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매매일지와 투자 노하우를 900여명의 회원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투자 기법을 담은 책도 집필 중이다.